너를 만난 지 37주 차
아가야,
요즘은 부쩍 줄어든 태동에 걱정이 되어 자주 깨곤 해. 막달이 되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갑자기 찾아오는 무서운 생각에 심장이 급하게 뛴단다. 그러면 아가는 옅게 뱃속을 유영하고, 엄마는 심장소리를 아가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곤 해. 아가가 조금 강하게 움직일 때면 배가 뭉쳐 와. 급격하게 배가 단단해지면 통증도 함께 몰려온단다. 아주 잠시 말이야. 아기가 다행히 뱃속에 잘 있구나 안심을 하지만 잠은 어느새 더욱 멀리 날아가버려.
엄마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아.
태어날 때쯤이 되면 태동이 줄어든다든데, 이 정도면 태동이 줄어든 건가?
자주 뭉친다는데 이 정도 아픈 건 단순한 배 뭉침인 건가?
도대체 진진통은 얼마나 아픈 걸까?
가진통을 매일 밤 며칠정도 겪어야 진진통이 오나?
아가가 내려올 수 있는 운동은 과연 효과가 있는 건가?
분비물이 많은데 이 색깔이어도 정상인가, 이 정도 양이어도 정상인가?
오늘 나의 움직임은 무리였을까, 분만 촉진을 위한 도움닫기였을까?
왼쪽 옆으로 눕는 게 좋다던데, 아기 등이 오른쪽으로 있으면 오른쪽으로 누워야 하는 거 아닌가?
질문만 한 가득이야. 초록창에 물으면 탱탱볼처럼 이리저리 다른 방향으로 튀는 답변들이 가득한 질문들.
육아준비를 너무 빨리 한 걸까? 출산은 멀었는데 육아는 이미 시작한 것 같아. 깨끗하게 닦고 빨아놓은 육아용품들을 사용할 날만을 목 빠지게 기다려. 기분이 그래서 더 조급해지나 봐. 어쩌면 안 좋은 이야기들을 너무 많이 듣고 읽었을까? 마지막에 엄마의 아둔함 혹은 무모함으로 아가를 위험에 처하게 할까 봐 엄마는 그게 가장 걱정이야.
출산은 과연 어떨까? 해 본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는 거라, 어떤 설명도 공감할 수가 없어. 가진통은 배만 아픈 거고, 진진통은 다리까지 아프다는데 고통은 생생히 글로 담아질 수 있는 게 아님을 다시 실감해.
그렇게 긴 밤을 보내고, 또 마지막일지 모르는 주말을 맞았단다.
엄마와 아빠는 좋아하는 산사를 오랜만에 찾았어. 거대한 산의 넓은 허리에 자리 잡은 아늑한 곳에 펼쳐진 넓은 절. 골짜기를 따라 들어가면 위치한 그곳. 주차를 하고 평지를 걸으면 닿는 절이라 가고 싶은 맘을 선뜻 먹은 것이기도 한 곳이야.
그늘 없는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작은 샘이 있어. 시원한 물이 솟는 연꽃모양의 샘 안에는 한쪽 뒷발 일부가 깨진 돌로 조각된 거북이 있단다. 샘의 물로 햇볕애 잔뜩 익은 목 뒤를 식히고, 조용히 대웅보전에 들어갔어.
만삭의 몸으로는 엄마는 합장밖에 할 수가 없었단다. 아빠와 함께 깊게 합장을 하고 모퉁이에 방석을 깔고 앉았어. 마음속으로 순산을 기원하는 기도를 했단다. 그리고 늘 하듯 할머니의 소원을 다 들어달라고 기도를 했어. 엄마는 늘 그렇게 기도한다.
“관세음보살님, 우리 엄마 소원 다 들어주세요.”
할머니의 소원 속에 엄마가 바라는 게 늘 담겨있단다. 언제부턴가 그렇게 기도하게 되었어.
습관처럼 배 위에 손을 얹고 조용히 눈을 감고 주변을 느껴 보았어. 적당히 더운 공기, 가끔 시원한 산바람이 스쳐왔어. 적당히 어두운 공간, 감은 눈앞에 펼쳐진 어둠 위로 옅은 빛이 덮여있었단다. 코 끝에선 거대한 나무기둥과 마룻바닥이 품었던 향초의 향을 다시 뿜어내는 듯 나무 향이 덧입혀진 은은한 꽃향이 느껴졌어. 얼마 전 연꽃밭에서 맡았던 꽃향이 스치는 것 같기도 했단다. 눈을 감고 완벽하게 무욕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어. 그 공간은 적당히 부족하고 적당히 충만했단다.
그곳에서 엄마는 상상을 했어. 언젠가 이곳에 아가와 함께 오는 때를 말이야. 그때 아가는 아마 잘 걷고 어설프지만 절도 곧잘 따라 하게 되겠지. 아가를 데리고 여기 와서 왼발이 깨진 거북이 있는 샘에서 물을 떠 뒷목도 식히고 부처님 앞에서 절도 하는 상상을 해 보았어. 그렇게 예쁘게 절도 드릴테니 순산하게 해 달라는 그런 기도를 결국 마지막에 하고야 말았단다. 인간의 욕심이 어리석으나 이 기도는 부처님도 귀엽게 봐주시지 않을까.
엄마는 오늘도 가쁘게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우리 너무 늦지 않은 좋은 날, 건강한 너와 건강한 나로 무탈하게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