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줄 수 있는 선물

너를 만난 지 34주 차

by 맘고래

아가야,

엄마는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꿈에서 너를 본단다.


꿈에서 엄마는 품에 이쁜 아가를 안았단다. 눈을 감은 채 입은 활짝 미소 짓는 배냇짓도 하는 아가였어. 언제 이 아가를 낳았지 싶다가, 문득 엄마가 아가 젖을 준 기억이 한 번도 없는 거야. 공부한 내용이 떠올랐지.


“어, 신생아는 두 시간에 한 번씩 수유를 안 하면 탈수증세를 보인댔는데...”


꿈속에서 엄마는 얼른 아가에게 젖을 물렸어. 가슴을 누르니 하얀 모유가 쏴악 소리를 내며 나와서 아가 입을 적셨지. 하나도 아프지 않고 잘 나왔어. 아가는 탈수증세로 지쳐있었다가 살짝 웃으며 생기를 찾은 것 같았어.


그러고 잠을 깨서 다시 못 들고 있네.

아가야. 엄마가 네가 많이 보고 싶은가 보다.


아가가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요즘. 임산부 생활을 공유하던 엄마 친구의 아기는 태어났고, 엄마 또한 아가와 몇 주 후 만날 거란 걸 실감하고 있어.


아가가 태어나기 전, 엄마는 스스로 몇 가지 숙제를 정해놓았었단다. 이제 이들을 마무리해야 할 때가 왔어. 그중 하나가 바로, 아가를 위해 세상에서 하나뿐인 가구 만들기였단다.


몇 개월동안 디자인을 고민하며 도면으로 붙잡고 있던 의자의 부재도면을 서둘러 맡기고 가공된 부재를 직접 가져왔어. 시골집 마당에서 조립을 했단다. 엄마가 힘을 못 쓰는 터라 아빠가 고생을 많이 했어. 여름날 햇빛이 강하니 밤과 아침에 작업을 해야 했단다. 이른 아침 작업을 시작하면 뱃속에서 네가 움직여. 힘든 순간도 있지만 이런 유난은 엄마가 너를 위해 평생이라도 떨 수 있을 것 같아.


요즘은 그런 생각을 많이 해. 너를 낳겠다고 하는 건 엄마와 아빠의 선택이었지만 너는 우리를 선택한 적이 없으니, 온 인생동안 우리는 너에게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걸 말이야. 드라마 대사였던 이 한 마디에 이토록 공감을 하는 순간이 올 줄이야.

아가야,

이제는 중력이 엄마한테만 두배로 작용하는 것 같아. 앉았다가 일어서는 거, 누웠다가 일어서는 게 참 힘들어. 엄마를 보는 어른들은 그래도 아가를 낳은 후보다 지금이 편할 때라고 말씀해주시는데 엄마는 사실 그 말에 위로를 하나도 받지 못한단다. 엄마는 조금이라도 몸이 가벼워져서 앉았다 일어서는 것도 쉽게 누웠다 일어서는 것도 쉽게 하고 싶어.


그리고 잠 좀 못 자면 어때, 아가가 엄마 눈앞에 있는 걸. 조심성 없는 엄마 몸속에서 아가가 혹시나 불편하면 어쩌나 그 걱정하는 것보다 아가 젖 먹이고 기저귀 갈아주고 마사지해 주고 그러고 싶어. 우리 아가 눈 마주치고 하루 종일 떠들고 싶어.

조립을 마친 가구의 사포질을 시작했어. 아빠와 마당에 작업대를 펼치고 모서리를 부드럽게 만드는 작업을 다 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 우리 아가 손이 닿을 곳이라 생각하면 부드러움의 기준이 계속 올라가고 사포질을 멈출 수 없단다. 늦은 밤까지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고 사포질을 마무리했어. 여름 비가 내려서 커다란 파라솔을 펼쳤지. 우리의 아담한 작업실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힘든지도 모르고 작업을 했단다.


뱃속에서 아가는 쉴 새 없이 움직였어. 때로는 신기한 소리에 반응하는 것 같았고, 큰 소음으로 느껴질까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엄마는 그 모든 과정이 정말 신나고 재밌어서 아가도 스트레스받지 않을 것 같았어.

새벽에 세찬 비가 시골집 지붕을 때리는 소리에 깨서 창문을 여니 오랜만에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이 빗소리와 함께 들어왔어. 에어컨을 끄고 마당에 면한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두고 방문을 열었지. 선선한 바람이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같았어.


단풍이 오기 전에 만날 아가, 너와 만날 날이 머지않았음이 피부로 느껴져. 아침나절 내내 비가 왔는데, 서서히 빗소리가 잦아들었어. 산 안개가 걷히고 있는 방향을 바라보니 깨끗하고 선명한 흰 구름을 안은 맑은 하늘이 다가오는구나.

건너편 집 지붕 위를 뛰어다니며 아기 고양이들이 놀고 있어. 엄마만 보기 아까운 풍경이 눈에 들어올 때면, 엄마는 "아가야, 저것 봐" 이렇게 말하고 싶어. 아가에게 보여주고 싶어. 마음속으로 말하며 배를 쓰다듬으면 아가는 대답하듯 움직인단다. 언젠가 이 시골집에서 재밌는 시간 넘치게 보낼 수 있게 되길. 우리 함께 고양이밥도 주고, 꽃도 보고, 빗소리도 듣고 꼭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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