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

너를 만난 지 32주 차

by 맘고래

아가야.

더운 여름이구나. 뱃속의 여름은 지낼만하니?

그곳의 여름은 엄마도 한 번 지내본 적 있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괜스레 에어컨 앞에서 이불로 배를 덮게 되는구나.


아가야, 그거 아니?

새들은 해가 떠오를 조짐이 보이면 울기 시작한단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지만 근래에 직접 확인을 하고 있어. 그 말인즉 엄마는 거의 매일 새벽 다섯 시쯤 눈을 뜬다는 거야. 새벽에 깨어서 한참을 다시 잠들려고 눈을 감은 채로 있으면 뱃속에선 아가가 꿈틀대고, 머릿속에선 잡생각들이 꿈틀대고, 마음속에선 슬며시 불안이 꿈틀대곤 해. 창 밖으로 여름 아침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새소리가 들릴 때면 결국 침대 밖으로 걸어 나와. 곧 데워질 새벽의 서늘한 기운이 들어오는 창가 옆에 다시 누워서 이렇게 아가에게 편지를 써.


누군가가 말하길, 지금은 나중의 육아를 위해 리듬을 알아서 만들어 가는 과정이래, 전혀 과학적으로 들리진 않지만. 갓 태어난 아가는 두 시간마다 케어를 해 주어야 한다니 미리 두 시간에 한 번씩 깨는 연습을 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면 원인 모를 불면의 이유를 찾은 것 같아 마음이 조금 편해져.


밤에 어둠 속에서 눈을 뜨면 온갖 생각이 들어. 일단 나의 현재 상황을 복기해. 내 나이는, 내 현 상황은, 지난밤 어떻게 잠들었더라, 여기서부터는 과거를 회상하는데 가속도가 붙어. 내가 이룬 것들, 내가 한 경험들, 그때 그랬어야 했는 데까지 이르면, 만약 그때 저랬다면 하고 상상의 영역으로 날아가. 이 부분은 후회가 덧발린 상상의 영역이라 속도가 더뎌져. 고개를 젓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차라리 생각하자 싶을 때 생각은 "내일 뭐 해야 하지?"로 넘어가. 내가 출산을 하기 전까지 며칠이 남았고, 그전까지 하려고 했던 것들을 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하면 침대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지.


지금처럼 이렇게 편지를 적다 보면, 그러다 잠이 오면 그 자리에서 다시 잠들기도 해.


왜 잠에서 깨는 걸까 생각해 봤어.


뱃속에서 점점 커져 가는 아가를 고스란히 느끼는 순간이 자주 찾아와. 잔뜩 눌린 방광의 자극으로 눈을 뜰 때가 가장 많지. 가끔은 제 때 온 자극을 무시하고 더 자려고 하다가 자극이 통증이 될 때쯤 겨우 걸어 나오기도 해. 그럴 땐 사람이 누워있다 혼자 일어나려면 몸을 반으로 접어야 하는 당연한 과정이 겁이 날 정도야.


그렇게 화장실에 다녀오고 바로 누우면 아가는 뱃속에서 헤엄을 치기 시작해.


이제는 어떻게 움직이는지 상상이 될 만큼 다양하게 움직이는 아가야. 상상 속 아가는 회전하며 헤엄치는 돌고래였다가 엄마의 자궁벽을 두드리는 날다람쥐였다가 뒷발로 도움닫기를 제대로 하는 산토끼가 되기도 해.


그러다 문득 무거운 바위를 배에 얹은 듯, 소화가 안 된 저녁식사가 기도를 막은 듯 속이 꽉 막혀 와. 이럴 땐 왼쪽으로 누우면 낫다 했던 게 떠올라서 왼쪽으로 누우면 조금 답답함이 해결이 돼. 그 자세로 있다 보면 바닥에 닿은 뱃속에서 아가가 바닥을 향해 발을 굴리면서 불편하니 다시 바로 누우라고 하는 것만 같아.


그래서 다시 바로 누우면 무게중심의 균형을 맞추고자 뱃속의 물풍선은 다시 위치를 잡고, 그 과정에서 유난스러운 고통이 찾아와. 이 고통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수경재배하는 딸기는 줄기 끝에 빨간 딸기가 공중에 열려. 딸기 대신 수박이 열렸을 때 그 수박을 공중에 붙잡고 있는 줄기의 고통이라고 할까. 때로는 심호흡을 하게도 만들어. 심호흡을 하면 고통이 줄어든다는 걸 엄마는 벌써 배웠단다.


바로 누우면 숨이 차고, 옆으로 누우면 때로는 아프지.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 보면 잠에서 깨어. 그렇게 생각의 강을 새소리가 들릴 때까지 헤엄을 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언제나 비슷한 지점으로 향해.

“지금 하고 있는 이 경험을 내가 앞으로 또 할 수 있을까. 아마 지금과 똑같은 상황은 다신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 시기, 내 생각, 내 감정은 지금밖에 느낄 수 없겠구나. 그렇다면 이 순간들은 나중의 나를 위해서 아가를 위해서 의미 있는 기록이 될 것 같다.”


그 마지막 지점에선 무한한 긍정이 만들어져. 그리고 다시금 세상의 경이를 느끼게 되지. 동시에 엄마의 맘 속에서는 가장 다정한 말이 샘솟기 시작해. 그 말들을 적어보고 있어. 이 모든 글들은 그렇게 시작되었단다. 언젠가 너에게 전하기 위해.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