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마음을 놓아선 안돼

너를 만난 지 30주 차

by 맘고래

아가야,

이제는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아도 너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수 있구나.


이제는 꽤 더워졌어. 너를 품고 맞이하는 여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단다. 낮에는 점심을 먹고, 커튼을 뚫고 들어오는 여름의 열기에 달궈지는 남향의 집에서 벗어나 도서관으로 피신을 간단다. 90도의 의자는 이제 불편해서 도서관이 그리 편한 곳은 아니지만, 엄마는 도서관을 좋아한단다. 과하지 않게 욕심 없는 이들에게만 천국인 피서지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이 가득 꽂힌 책장은 늘 맘을 설레게 한단다.


엄마는 말이지, 언젠가는 책방주인이 되고 싶단다. 사서보다 책방주인이 되고 싶은 이유는 책을 너무 좋아하지만, 사람도 좋아해서 그래. 엄마는 우리 아가가 책을 좋아해서 가까이하고, 사람도 좋아해서 가까이하는 그런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언젠가 아가에게 그 기쁨을 알려주고 싶구나. 바퀴 달린 장바구니에 대출한 책을 싣고 골목길을 걷다 보면 아기 손을 잡고 도서관을 찾은 엄마들을 봐. 그 속에서 엄마와 아가의 미래 모습을 넣어 상상해 보곤 해. 언젠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갈 날이 오길 기대한단다.


솔직히 조금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사실이야. 아가가 태어나면 그때부터는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열릴 것처럼 느껴지거든. 그 이전까지 챕터를 정리해야겠다는 조급함이 들기도 해. 예를 들어, 미뤄뒀던 여행기나 미처 기록하지 못했던 것들이나, 앞으로 한 동안은 못할 것 같은 것들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미뤄뒀던 여행기도 적고, 육아일기도 적고, 협탁도 만들고 아가 가구도 디자인했어. 선풍기도 없이 더운 베란다에서 협탁을 오일칠 하다 보면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쉴 새 없이 흘렀어. 무얼 줍기 위해 아래로 숙이면 불편한지 아가는 기지개를 쭉 폈어. 그때마다 ‘아가 미안해’ 하며 서둘러 작업을 마무리했어. 하얗게 오일이 묻은 손을 빠르게 물에 씻으면서 이렇게 씻으면 괜찮겠지 하며 쓸데없이 용감했었어. 엄마는 임신을 안 한 듯 살려고 노력했어. 몸이 무겁다 느껴지면 더 움직이고 그랬단다. 그게 아가에게 더 많은 자극을 주고 건강하게 자라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거든.


그런데 화장실을 갔는데 피가 옅게 비쳤어. 순간 겁이 났단다. 바로 누워서 아가를 불러도 보고 태동이 있는지 확인도 했는데 괜찮은 것 같았어. 몇 시간 후 화장실을 갔는데 다시 피가 또 비쳤어. 겁이 나서 병원에 연락을 했더니 바로 오라고 했어. 엄마는 손이 덜덜 떨렸어. 괜히 배가 아픈 것 같고 그랬단다. 마침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셔서 할아버지 차를 타고 병원에 갔어.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진료를 받았는데 다행히 아가에게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어. 처음으로 태동검사를 했단다. 배에 소리 증폭기 같은 것을 대고 아가 심장소리를 들으며 누워있었어. 규칙적으로 뛰는 아가 심장소리가 양수를 거쳐 전해오니, 마치 깊은 바닷속에 아가고래를 품고 있는 엄마고래가 된 기분이었어. 아가고래는 엄마 뱃속에서 헤엄을 치고 말이야. 가끔 아가고래는 기지개를 폈어. 엄마고래의 배는 양 옆으로 늘어났지.


그렇게 심해 속을 이십 분 정도 헤엄치다 검사가 끝났다는 말과 함께 눈을 떴어.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는데, 엄마가 느낀 아가의 기지개가 자궁수축 증상이었대. 20분 동안 2번 수축이 일어났는데, 의사선생님 말씀이, 그 정도 빈도면 심각한 건 아니지만 푹 쉬어야한다고 하셨어.


엄마가 아가의 기지개라고 오해한 것이 자궁수축이었다니, 무지한 엄마가 아가를 위험하게 할 뻔 했어. 이제라도 너무 많이 움직이거나 용감하게 움직이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미안해 아가야. 엄마가 이제는 조금 더 조심할게. 우리 꼭 좋은 날, 건강한 너와 건강한 나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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