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난 지 28주 차
아가야,
이제는 아가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전해져 온단다. 아가는 새벽 5시부터 움직이기 시작해. 태아는 뱃속에서 반수면상태라고 하던데, 너는 계속 자다 깨다 반복하고 있는 걸까?
거울 속에 엄마 모습을 보면 봉긋한 배는 여전히 낯설어. 잘 보면 르네상스 시기 그려진 그림 속 여인의 모습 같고, 다시 보면 아기 코끼리 같아.
몸이 무겁지만 더 자주 스트레칭을 하려고 해. 골반 스트레칭과 다리 스트레칭을 하고 나면 붓기도 조금은 사라진단다. 이제는 몸이 무거워져, 발꿈치와 무릎이 많이 아파. 설거지를 할 때면 커진 배 때문에 점점 상체가 숙여져. 그렇게 서 있다 보면 발꿈치가 땅에 구멍을 내어 아래층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아마 곧 설거지는 아빠의 몫이 되겠지.
아가는 지금부터 2배 정도 더 무게가 는다고 했으니 엄마가 살을 전혀 찌우지 않는다 해도 앞으로 몸무게는 더 늘게 될거야. 엄마는 앞으로 얼마나 더 무거워질까? 매일 갱신하는 몸무게의 끝이 궁금해지기도 해.
비 오는 토요일 아침, 아빠와 병원에서 제공하는 원데이클래스에 참여했어. 복잡한 병원의 주차장에 겨우 주차를 하고 수업에 참여했지. 수업은 네 개의 퀴즈로 시작했어. 사지선다인 퀴즈를 한 문제도 맞히지 못했어. 나름 출산에 대해 성실히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것들은 전혀 몰랐던 거야.
출산 가방을 어떻게 싸야 하고, 아기 침대는 필요한지, 역류방지쿠션이 필요한지, 분유포트는 어디 제품이 좋은지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어. 엄마는 너무 몰랐지 뭐야. 엄마는 엄청난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지나 방법에 대해서는 하나도 공부를 안 하고 짐만 열심히 싸고 있었던 거야.
아가가 태어나자마자 우는 이유가 무서워서라는 걸. 임신 32주에 뇌세포가 가장 많이 만들어진다는 걸, 모국어 뇌라는 게 있다는 걸, 몰랐어. 그리고 출산 시에는 5분마다 진통이 올 때 병원을 가야 하고, 그때부터 자궁이 1시간당 1cm 직경씩 열리는데, 10cm는 열려야 하니까 10시간은 진통을 한다는 것도 몰랐어. 어쩌면 가장 중요한 건데 말이지. 엄마가 무지해서 아가를 고생시킬까 봐 겁이 났단다. 겁을 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엄마와 아빠가 이 클래스를 들은 가장 큰 이유는, 르봐이예 분만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어. 병원에서는 그 방식을 선택할 기회를 주는데, 아기의 정서적인 안정에 초점을 맞춘 분만 방식이 참 인상적이었거든.
르봐이예 분만 방식은 어둠 속에서 분만을 하고, 아기가 태어난 후 5-10분 동안 엄마 품에 안겨 심장소리를 들으며 차츰 탯줄호흡에서 폐호흡으로 적응하는 시간을 충분히 준 후에 탯줄을 자르게 해. 그다음에는 엄마 양수의 온도와 비슷한 물로 아빠가 목욕을 시켜 주는 거야. 아빠가 뱃속에서부터 불러주었던 노래를 부르면서 말이지. 아기는 엄마와 분리되었다는 공포감과 불안감을 해소하고 세상에 안온한 방법으로 적응을 하기 시작해. 매일 같은 노래를 불러주며 적응하게 만든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빠와 엄마는 이 방법을 아가를 위해 선택하기로 했어.
공부를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많아. 자궁구의 열림 정도에 따라 분만 시기가 3단계로 나뉘고 아기는 엄마의 골반을 타고 회전하며 나온다는 것, 세상에는 다양한 분만방식이 존재한다는 것, 아기는 말랑한 머리뼈가 겹쳐지도록까지 고생하며 엄마의 골반을 통해 나온다는 것, 분만은 아기와 엄마의 팀플레이라는 것. 두렵지만 정말 잘 해내고 싶구나.
요즘은 아가가 엄마 말을 알아듣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나직이 아가에게 나중에 함께 가고 싶은 것을 읊었단다. 엄마는 아가랑 미술관도 가고 바다도 가고, 엄마가 좋아하는 고래도 보러 가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을 다 알려주고 싶어. 아가에게 엄마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
얼마 전에 보건소에서 하는 부모교실 수업이 끝이 났어. 마지막 수업은 디데이 달력 만들기였는데, 새삼 헤아려보니 며칠 남지 않았더구나. 그 날들 이후엔 엄마 인생이 엄청나게 달라지겠지. 두려운 마음보다 설레는 마음이 더 커. 엄마는 아가를 만나며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겠지.
너의 모든 게 나의 처음일 테고, 엄마는 그 순간들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거야. 알 수 없는 바닷길에 배를 타고 떠나는 기분인데, 표류가 아니라 신나는 모험의 항해였으면 좋겠어. 우리 멋진 한 팀이 되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