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난 지 26주 차
아가야,
이제는 입덧약을 먹지 않아도 괜찮아. 다행이지? 약이 아무리 안전하다 해도 마음 한편이 불안했었거든. 더 이상 두통도 없고 속도 편해졌단다. 그리고 약을 먹을 때면 늘 쏟아졌던 낮잠도 줄었단다.
속이 편해지면서 깨닫게 된 것이 두 가지가 있어. 첫째는 세상엔 참 맛있는 게 많다는 거, 둘째는 초콜릿을 먹으면 행복하다는 거야. 요즘 엄마는 스스로에게 새삼 놀라울 때가 있어.
“내가 이렇게 달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얼마 전엔 정밀초음파로 아가를 더 자세히 볼 수 있었어. 달콤한 것을 먹으면 아가가 더 잘 움직인다고 해서, 초콜릿을 먹고 갔어. 잘 자라고 있는 아가를 만났단다. 뇌도, 혈관도, 아가의 심장도 잘 만들어져 있었어. 마지막으로 손가락과 발가락을 확인해야 하는데 아가가 얼굴 아래 왼손으로 턱을 괸 채로 웅크리고 있는 거야.
“아이고, 이 친구야, 너 생각하는 사람이야?”
로댕의 조각작품처럼 웅크리고 있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웃음이 나왔어.
“얼굴을 보여줘 아가야.”
기다림 끝에 꼭 쥔 아가의 주먹을 마침내 보았고 손가락 다섯 개를 확인했단다.
여름이 깊어지고 수박과 복숭아를 맘껏 먹을 수 있어서 엄마는 정말 행복했어. 행복했지만 수박을 너무 많이 먹었을까? 거대한 당의 파도가 몰려오는 것을 몰랐어.
며칠 전 엄마는 임신성 당뇨 검사를 했어. 임신을 하면 아가에게서 분비되는 호르몬 때문에 엄마 몸속에서 당을 분해하는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진대. 그래서 당뇨증상이 생길 수 있어. 엄마는 임신중독증에 걸릴 위험이 있고, 뱃속의 아가는 거대해지거나 소아 비만, 소아 당뇨의 위험이 있대. 그래서 혹여라도 임신성 당뇨에 걸리면 식단관리를 철저히 해야 해.
검사날, 접수를 하고 간호사선생님 바로 앞에서 아주 단 음료를 한 번에 마시고 한 시간 후에 채혈을 했어. 다음 날 결과가 나왔는데, 수치가 기준을 넘겨 재검을 해야 한다더라고. 나흘 정도 후에 재검 일정을 잡았어.
머릿속에 그동안 먹었던 달달한 것들이 스쳐 지나갔단다. 초콜릿, 과자, 바닐라라테, 복숭아, 자두, 수박, 그리고 수박, 또 수박. 엄마는 갑자기 당뇨에 대한 걱정이 솟아서 서둘러 임신성당뇨를 대비하는 티백 차를 샀단다. 그 좋아하는 수박과 복숭아를 입에 차마 댈 수가 없었어. 나흘 동안 단 거를 피한다고 수치가 내려가지는 않는다지만, 재검의 통과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려고 했단다.
재검하는 날, 첫 검사 때보다 세 배 정도 더 많은 양의 시약을 마셔야 했어. 너무 달아서 먹기가 힘들 수 있는데 혹시 구토를 하게 되면 다시 받으러 오라는 안내를 받자 긴장이 되었어. 울렁거리면 바로 달려가려고 일부러 화장실 근처에서 선 채로 시약을 마셨어. 다행히 구토감은 없었지.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지만, 조금이라도 당을 떨어뜨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병원 근처 도서관까지 걸어갔어. 도서관에서도 한 번도 앉지 않고 돌아다니다가 다시 천천히 걸어서 돌아왔어.
시약을 마신 지 한 시간 정도 되었을 때, 첫 번째 채혈을 했어. 여전히 시약의 치명적인 달달함이 입안을 맴돌아 갈증이 났지만 아무것도 마실 수가 없었어. 그렇게 엄마는 오전 내내 병원에 있으면서 시간당 한 번씩 총 네 번의 채혈을 해야 했단다. 마지막 채혈을 할 때는 간호사선생님께 물었어.
“앞으로 이 검사를 또 할 일이 있나요?”
다행히 당뇨검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더구나. 네 번이나 채혈을 하고 나니 옅은 현기증과 엄청난 허기가 몰려왔어.
집에 오자마자 타이밍 맞춰 주문해 놓은 수제버거를 허겁지겁 먹었어. 탄산음료 대신 우유와 먹었지. 당뇨검사를 한 이후로 단 음식을 한 동안 피하게 돼. 달달한 것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렸어. 집에 있던 달달한 간식들을 다 먹어버리기도 했고 말이야. 다시 재워놓지 않으니 찾게 되지 않더라.
며칠 후 짧은 문자로 재검 통과 결과를 받았어. 총 네 번의 채혈 중에 두 번 이상 기준치에 적합하면 재검 통과인데,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기준치에 들어와서 통과되었어. 첫 번째 검사 때 수치가 높았던 건, 안내받은 금식 시간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허겁지겁 먹었던 점심이 미처 소화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까? 원인을 알 수 없지만 이제라도 통과되어 안심을 했어.
아가야, 아가를 품은 이후로,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노력해서 지금의 상태까지 왔어. 이번 검사를 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맘 편하고 몸 편한 게 최고라지만, 과하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거야. 입덧도 끝났으니, 이제는 부지런히 움직여봐야겠어! 임신의 황금기라는 중기에 접어들었으니 말이야. 아가야, 우리 남은 시간 건강하게 보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