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페어 대작전

너를 만난 지 25주 차

by 맘고래

아가야,

한 사람이 맨몸으로 이 세상에 나와서 자라는데 얼마나 많은 것이 필요할까?


SNS를 들여다보고 있자면 이것도 필수이고, 저것도 꼭 필요하다고 하는 광고가 끊임없이 올라왔어. 엄마가 아가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이 알고리즘이 어떻게 알았는지, 신기하게도 육아용품 광고가 계속 뜬단다. 준비는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엇을 언제 준비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어.


주변에서 귀동냥하기로, 아기용품은 긴 기간 동안 사용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당근마켓에서 중고거래를 해도 된다더구나. 그래서 몇 개월 전부터 어플을 깔았는데 무얼 검색해야 할지 몰라서 들여다보기만 했단다.


그러다 베이비페어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어. 어플을 깔고 무료입장 티켓을 다운로드할 수 있었지. 그 말로만 듣던 혼돈의 베이비페어를 드디어 가보게 된 거지. 아무것도 모르니 가서 무엇이 필요한지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더니, 주변 사람들이 다들 말리더구나. 최악의 상황으로, 얇은 귀를 팔랑거리며 필요하지도 않은 것까지 다 사버리는 그런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고 말이야.


그래서 목록을 만들어 보기로 했어. 다행히 얼마 전에 보건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부모교실 수업을 들으며 필요한 용품들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었어. 더불어 산후도우미 교육을 받으신 할머니의 조언을 추가해서 간단한 목록을 만들 수 있었지. 작은 메모지에 볼펜으로 꾹꾹 눌러썼단다.


1. 살 것 : 천기저귀, 젖병, 딸꾹질 모자, 속싸개,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 수유패드, 손수건, 옆잠베개, 아기 로션, 건티슈, 아기 욕조

2. 구경할 것 : 카시트, 유모차, 폴딩매트


비가 부슬부슬 오는 주말, 베이비페어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을 했어. 복잡한 주차장에서 주차를 하고 입구로 향하니 이미 사람들이 가득했어. 한편에는 쿠폰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단다. 부스에 찾아와서 설명을 들으면 샘플을 사은품으로 주거나 할인을 해 준다는 쿠폰이었어. 관심 있는 쿠폰들을 챙겨서 입장을 했지.

엄마랑 아빠가 가장 처음 간 곳은 대한적십자사 부스였어. 영아 하임리히법과 CPR 법을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곳으로, 오기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곳이었어. 엄마의 팔뚝보다 조금 큰 아기 인형을 마주하고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단다.


하임리히법은 아가가 먹으면 안 되는 것을 삼켰거나 그 삼킨 것이 너무 커서 걸렸을 때 빼내는 방법이었어. 아가를 팔뚝 위에 엎어서 얹은 상태로 기도를 확보한 후, 날개뼈 라인이 수렴하는 등 부분을 아래에서 위로 쓸어주는 방법이었어. 가장 중요한 건 119에 신고를 먼저 하는 것이라고 선생님은 알려주셨지.


다음으로는 CPR도 배웠어. 정말 작은 아가에게 어떻게 그렇게 큰 압박을 줄 수 있는지, 그러다 갈비뼈가 부러지는 건 아닌지 우려 섞인 우문을 했어. 선생님은 CPR 자체가 갈비뼈 너머에 있는 심장을 강제적으로 다시 뛰게 해야 하는 것이니 당연히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시행해야 심장을 다시 뛰게 할 수 있다고 하셨어. 갈비뼈 골절보다 중요한 건 심장을 뛰게 해야 하는 일이니까 말이야. 그리고 여기서도 중요한 건 무조건 119 신고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었단다.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위급상황에 대비해서, 엄마와 아빠는 아가를 지키는 법을 배웠어. 우리는 언제나 너를 지킬 거란다.


교육이 끝나고 대한적십자사에서 진행하는 미숙아지원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어. 미숙아로 태어나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아가들을 후원하는 사업이었어. 우리 아가를 구하겠다는 마음으로 응급처치교육을 받은 후라 더욱 마음이 동해서 작게나마 후원을 하기로 했어. 엄마와 아빠는 아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누군가를 구해보려고 해. 후원신청서의 한 귀퉁이에는 선물로 제공하는 팻말의 문구를 적는 란이 있었어. 여러가지 양식 문구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을 택해서 ‘마음이 따뜻한 로마네 가족’이라 적었고, 얼마 후 집으로 그 문구가 새겨진 팻말을 받았어.


긴 목록에 적힌 것을 하나하나 체크하며 해당되는 부스 중 쿠폰 받은 곳부터 찾아가 보기로 했어. 나름 시간 계획을 하고, 아빠는 내부 부스의 배치도를 보며 효율적인 동선을 체크를 했지.


그런데, 예상치 못한 아주 큰 변수가 있었어. 바로 부스마다 서서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판매담당자들의 설명이었어. 아무것도 모르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귀한 강연이었지. 무엇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강연, 물론 강의의 결론은 언제나, 그들의 제품이 가장 적합하다는 광고로 귀결되었지만 말이야. 설명을 듣고 나면 선물처럼 샘플을 주었단다. 재밌어지기 시작했어. 그런 엄마를 아빠가 말릴 때쯤에는 이미 계획한 시간을 훌쩍 넘기고 떠나야 할 때가 되었지. 다음 일정에 겨우 시간 맞춰서 갈 수 있었단다. 목록에 적은 살 것들은 다 샀지만, 구경할 것들은 결국 하지 못했어.


두 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한 사람을 키워내는 데 참 많은 것이 필요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선사시대 때부터 아기는 태어나고 자랐을 텐데 말이야. 어쩌면 이 모든 게 ‘육아는 아이템빨’의 오류이지 않을까 하는 냉소적인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챙겨보면 다 필요해 보인단다. 아마 불필요하다는 판단은 아가가 태어나고 엄마가 직접 육아를 해보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선사시대 육아와 지금을 비교할 수는 없지. 하지만 그 아이템들로 아가를 더 안전하게, 더 잘 키울 수 있다면 엄마와 아빠는 팔자에 없던 맥시멀리스트가 될 수도 있어.


그래도 감사한 일인 게, 주변에서 아기침대, 카시트, 유모차를 물려 받을 수 있었어. 아가가 금방 자랄테니 사길 주저했던 예쁜 옷들도 물려받았단다.


그리고 당근마켓도 드디어 해보았어. 아기체육관을 나눔으로 받는 것으로 시작해, 기저귀갈이대와 폴딩매트를 괜찮은 가격으로 구입했단다. 처음 시작할 때는 혹시나 사기를 당하지 않을까 겁이 났는데, 이제는 괜찮은 가격으로 나와 있는 괜찮은 상태의 물건을 발견할 때면 꼭 보물을 찾은 기분이 들어.


갑자기 아가 짐이 늘어나서 집 안 공간배치를 바꿔야 할 때가 왔어. 두 사람이 살던 공간에 한 사람 분의 공간을 더 만들어 내야 했어. 엄마와 아빠의 취미공간을 옷방으로 쓰던 구석진 방으로 옮기고 볕이 잘 드는 방을 아기방으로 꾸미기 시작했단다. 집 안 배치를 바꾸는 건 엄마의 취미이자 스트레스 해소법인데, 엄마의 몸이 무거우니 아빠가 고생이 많아.


아가야, 이렇게 하나씩 준비해가다보니 엄마랑 아빠는 너와의 꿈같은 만남이 점점 실현되어가는 것 같아 기대가 되는구나. 우리 아가 예쁜 옷도 입혀주고, 목욕도 시켜주고, 노란 캐노피 달린 유모차에 태우고 나들이 갈 그 날이 기다려져. 우리 좋은 날 곧 만나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