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난 지 23주 차
아가야,
엄마는 비바람을 맨몸으로 견뎌낸 기분이야.
2주 전 일요일에 사람 많은 곳을 갔을 때 마스크를 했어야 했는데, 아마 코를 계속 훌쩍거리던 이름 모를 뒷자리 꼬맹이한테 감기를 옮은 것 같지? 그래도 요즘 잘 먹고 잘 자니까 엄마는 절대 감기에 걸리지 않을 거라 근거 없이 확신을 했었어.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일이 생겨 화요일도 수요일도 외출을 했었지. 수요일 외출 때 컨디션이 떨어진 기분이 확실히 들긴 했는데 말야. 그 날부터 목이 아프기 시작했어. 따뜻한 물을 계속 들이켰지.
둘째 날도 목이 여전히 아파서 따뜻한 물을 더 자주 들이켰지. 이 날은 병원 검진을 가서 정밀초음파로 아가 만난 날이었네. 주먹 쥐고 턱을 괴고 있는 아가의 모습이 신기했는데, 손가락 확인을 하느라 의사선생님께서 고생을 하셨었지. 저녁에는 밤산책을 길게 했어. 다음 날부터 긴 연휴의 시작이라 계획이 많았어. 그런데 그날 밤부터 열이 났어. 뜨거운 것을 몸 속에 품고 있는 것처럼 눈, 코, 입에서 뜨거운 기운이 나왔어. 물수건을 머리에 얹고 겨우 잠이 들었지.
셋째 날, 원래 시골집에 가려고 했는데 가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어. 결국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는 지금 열이 안 난다고 현재 상황에서 먹을 수 있는 약한 약만 처방해주셨어. 그리고 이 약은 결국 그렇게 효과적이지는 않을 거라며, 푹 쉬고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구나. 열이 안 난다고 하는데 엄마는 온몸의 구멍에서 뜨거운 열기가 나는 것 같았어. 한기가 돌고 힘이 없어서 누워있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단다. 식은땀을 흘리며 지쳐서 쓰러져 자다가 다시 뜨거운 기운에 잠을 깨는 것을 반복했지. 아빠는 물수건을 계속 갈아주며 엄마 곁을 지켰단다.
넷째 날, 계속 누워만 있었어. 열이 오르는 것 같으면 물수건을 머리에 대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해열제를 먹었어. 열이 38도를 넘어가면 양수 온도가 올라가서 아가한테도 위험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체온계를 재며 열이 38도까지 오르는지를 확인했어. 열은 37.5도 언저리를 왔다갔다 했지. 열이 오를 때면, 물수건으로 목과 겨드랑이 주위를 닦으며 열을 내리려고 애썼어. 아가가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없던 힘이 나면서 열을 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
다섯째 날, 이 날부터 코가 엄청 막히기 시작했어. 목감기에서 코감기로 넘어간 것 같았지. 코가 너무 막히면 숨쉬기가 힘들어서 입으로 숨을 쉬게 돼. 그러면 코랑 입 속이 건조해져서 더 코가 막히는 악순환이 일어나.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얼굴 가까이에 대고 따뜻한 수증기도 마시고 물도 계속 마셨어. 그런데 물을 많이 마셔도 화장실이 자주 가고 싶지 않았어. 정말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거지. 평소에도 매년 감기는 꼭 한 차례씩 겪고 지나가지만 약 먹고 수액 맞으면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는데, 그게 안 되니 오롯이 견뎌내기만 해야했어.
여섯째 날, 할머니가 대구에 오셨어. 할머니 얼굴을 보니 조금 낫는 것 같았는데 열이 많이 올라서 다시 병원에 갔어. 이번엔 수액도 맞았어. 이후에 또 열이 나서 재진료를 받기도 했지. 집에 와서 계속 잤던 것 같아. 자다가 일어나서 할머니가 끓여주신 동태찌개와 배꿀차를 먹고 힘이 났어. 그렇게 긴 연휴가 끝이 났어. 긴 연휴 내내 누워만 있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만큼 온몸으로 감기를 맞았었지.
일곱째 날, 여전히 코는 막히지만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었어. 가끔 열이 날 때면 약을 먹고 가라앉혔지. 약을 먹으면 기절한 듯 잠에 들었는데, 그렇게 자고도 밤에 또 잘 수 있는 게 신기했어. 밤만 되면 코가 꽉 막혀서 앉아서 잠이 들곤 했지만 말야.
여덟째 날, 코가 더 이상 막히지 않았어. 잔기침은 여전했지만 말이야. 처방전으로 받은 약을 계속 먹었지만 지쳐 쓰러져 낮잠을 자진 않았어. 자는 것 말고 무언가를 다시 할 수 있는 힘이 생겨서 책을 읽었어. 가장 큰 고비를 넘기고 회복해 나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
아홉째 날, 병원에서 받은 약을 다 먹었어. 컨디션이 온전하게 돌아온 것도 아니고 목소리도 돌아오지 않았어. 여전히 가끔 기침을 하지만, 그래도 이젠 열이 나지 않아 다행이야.
아가야,
엄마는 이렇게 오래 감기를 앓은 적이 없어. 감기 걸리지 않게 더 조심했어야 했는데, 정말 큰 코를 다쳤어. 열이 날 때마다, 약을 먹을 때마다, 혹시라도 아가에게 해가 될까 겁이 날 때마다 괜히 몸을 뒤척여봤어. 엄마가 몸을 뒤척이면 아가도 움직이는데, 그럴 때마다 이기적이지만 엄마는 안심을 했어.
아가는 엄마가 감기랑 싸우는 사이에 태동이 더 선명하고 활기차졌더라. 엄마랑 함께 감기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앞으로도 감기 또 안 걸리게 엄마가 조심 또 조심할게. 엄마가 기침을 할 때마다 아가 집이 폭풍우 치는 바다 위 배 같지 않을까 상상했었어. 최대한 안 하려고 노력했지만 결국엔 해버릴 수밖에 없었지. 그 폭풍우도 잘 견뎌내줘서 고맙고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