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난 지 20주 차
아가야,
나의 밤은 아마도 너의 아침인 걸까? 맛있는 저녁식사를 한 숟갈 뜨는 일곱 시 반부터 너는 뱃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해.
식사를 마치고 저녁 산책을 다녀온 후 씻고 누우면, 이제야 편안한지 너는 그 속을 유영하는구나. 몸 속에서 엄마의 의지와 상관없는 활발한 움직임은 아직 적응이 잘 되지 않아. 처음에는 이상했지만 이제는 신기하게 느껴지는 단계가 되었어.
제법 나온 배 안에 생명을 품었다는 사실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단다. 아가는 이제껏 계속 뱃속에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크기가 작아서 느끼지 못했던 것이고, 앞으로는 크기가 커지면서 움직임을 더 감지하기가 쉬울 거라고 해.
아가의 큰 움직임은 엄마에게 느껴지고 있단다. 그럴 때마다 아빠를 서둘러 불러. 아빠는 엄마 배에 귀와 손을 가져다 가만히 대고 있어. 아가의 꿀렁거림을 아빠가 얼마나 느끼고 싶어하는지 아니? 엄마에게 느껴지는 움직임을 아빠는 한참을 느껴보지 못했단다. 그 때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몰라.
오늘은 아가가 꼬물거리는 부분을 손가락으로 건드려봤어. 그랬더니 아가가 마치 대답을 하듯 그 부분을 다시 꼬물거렸어. 그 순간 엄마는 아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단다. 오랜 시간 미지의 세계에 신호를 보내다가 마침내 답장을 받은 기쁨을 느꼈어.
아가가 클수록 감각되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어. 잘 자라고 있다는 신호처럼 느껴져. 바로 누웠다가 옆으로 누울 때면 꼭 불편하다고 발차기를 하는 것만 같아. 맛있는 과일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고 말야. 아빠가 아가 이름을 부를 때면 알아들은 것처럼 주먹 쥔 손을 들었다가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 모두 다 엄마의 상상이지만 때마다 너는 다양하게 움직이고 있단다.
얼마 전에는 드디어 아빠가 아가의 움직임을 느꼈어. 그 때 아빠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단다. 생명의 신비를 느낀 사람의 표정이, 꼭 새로운 생명의 종을 발견한 탐험가 같았어. 그 이후로는 퇴근하고 돌아와서 꼭 아가에게 말을 건단다. 아가가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발차기를 해 주기를 바라면서 말야. 엄마가 자려고 누우면 아빠는 슬그머니 손을 배 위에 얹는단다. 엄마의 몸이 가장 편할 때 그래서 아가가 가장 활발할 때, 아빠는 한 번 더 그 신기한 경험을 하기 위해 따뜻하게 데운 손바닥을 슬며시 가져온단다.
책읽기에 취미가 없는 아빠는, 처음으로 동화책을 읽기 시작했어. 아마 올해 그가 손에 잡은 책 중 가장 두꺼울 그 책은 도자기 토끼인형의 모험담을 담은 책이야. 처음 읽어줬을 때 평소와 다르게 활발했던 너의 움직임을 이야기하니, 아무리 늦어도 알아서 꼭 챙겨 읽어주기 시작했단다. 아빠의 목소리에 발차기를 하는 아가가 엄마도 신기했어.
어색하게 책을 읽던 아빠는, 매일 밤 점점 틀리거나 더듬거리는 부분이 줄어들고 있어. 다양한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에서 목소리도 바꿔가며 재밌게 읽어주고 있단다. 엄마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그 시간이 은근히 기다려질 정도야. 언젠가 아가에게 직접 동화책을 읽어 줄 그 날을 위해 아빠는 열심히 연습하고 있단다.
엄마는 언젠가 아가와 집 근처 도서관에 가는 것을 꿈꿔. 그곳에 바퀴 달린 장바구니를 끌고 가서 책들을 잔뜩 빌려서 읽고, 오래도록 읽고 싶은 책을 잘 골라 사서 우리의 책장에 꽂는 그런 날을 보내고 싶어. 한 권의 책으로도 백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아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 아가가 세상에 대해 자신만의 시각을 가지도록 기르고 싶어. 다정한 시선은 유지하면서 말이야.
아가야,
익숙해지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너는 자라고 있구나. 엄마는 아가와 매 순간 함께 하고 있지만, 여전히 궁금한 아가를 엄마는 꿈에서 만날 만큼 그리워하고 있단다. 꿈에서 엄마는 맑고 동그란 눈을 가진 참 예쁜 아가를 품에 안고 있었어. 엄마는 이미 알았어. 언젠가 만날 우리 아가라는 걸 말야.
아가가 보고 싶을 때, 엄마는 초음파검사 영상을 보곤 해. 낮은 화질의 흑백 영상 속에서 엄마와 아빠는 동그란 눈과 봉긋한 이마, 동글동글한 코, 조그맣고 통통한 입, 포슬포슬한 볼을 보았단다. 아마도 엄마와 아빠에게만 보이는 모습일거야. 우리 아가는 얼마나 예쁠까? 오늘도 기원해. 아무 일 없이 건강한 너와 건강한 내가 좋은 날에 만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