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난 지 17주 차
아가야,
얼마 전부터 배가 꼬물꼬물 하는 걸 느끼는데 아가인 걸까? 초산의 경우엔 일반적으로 18-20주 정도부터 태동을 느낀다고 하던데, 엄마는 16주부터 느낀 것 같아. 아가가 활발한 걸까? 엄마가 예민한 걸까? 아가가 엄마를 닮았다면 활발한 게 맞을 거야.
엄마가 어릴 적에 험악한 별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걸어 다니는 흉기’였대. 호기심이 많아서 손에 잡히는 것마다 다 만져보고 부수고 그랬대. 조심성이 없어서 철퍼덕 잘 넘어지고 부딪치고 떨어지고, 응급실도 여러 번 갔었대. 아가가 이 모습을 닮는다면 소름이 돋을 만큼 신기할 거야. 그렇지만 별나도 괜찮아. 엄마와 아빠가 든든하게 너의 호기심을 지켜 줄게.
이십여 년 전에는 병원에서 아가의 성별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대. 그래서 엄마들은 아기용품을 무슨 색으로 사야 할지 유도질문을 던지거나, 비디오테이프로 주는 초음파 영상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다리 사이에 무언가 있는지 없는지를 찾아보곤 했었다고 해.
요즘은 16주 정도에 초음파 검사를 통해 의사선생님과 함께 성별을 확인해. 더 확실한 결과를 원한다면 11주에 니프티 기형아검사를 통해 성별을 정확하게 알 수도 있지만, 우리는 기본적인 기형아검사만 하고 그 검사는 하지 않기로 결정을 해서 성별을 이제야 알게 되었어.
이때쯤 임신을 축하해 주시는 분들이 엄마에게 늘 하는 질문이 있었어.
“딸이었으면 좋겠어?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그럼 엄마는 늘 묻는 사람들에게 되물었어.
“딸인 것 같아요? 아들인 것 같아요?”
그러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아들일 것 같다고 대답해 주었어. 엄마에게서 아들 엄마 분위기가 난다는 이야기부터, 엄마가 자매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 태몽이 이러해서 등등 다양한 이유들이 나왔지.
엄마에게 성별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어. 아가가 태어나기도 전에 무언가를 규정하고 예상하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원하는 성별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지. 나름 삐딱하게 말이야.
“아들이면 예쁘게 키우고, 딸이면 멋지게 키울 거야.”
마침내 검진 날이 되어 병원을 찾았는데, 초음파 영상 속 아가는 그 사이 부쩍 자라 있었어. 머리, 복부, 허벅지 길이를 확인하고, 선생님이 다리 아래 부분을 보여주셨어.
“자, 여기 다리 사이에 아무것도 안 보이죠? 우리 아기는 딸이네요. 축하해요!”
아가야, 주위 사람들 중 아가의 성별을 맞춘 사람은 이모 단 한 명뿐이었단다. 사람들에게 아가가 딸이라고 전하니까 다들 정말 기뻐해주셨어. 딸은 아빠의 기쁨이자, 엄마의 친구가 될 거라면서 말이야.
우리 아가, 우리 딸을 엄마는 멋지게 키울 거야.
자신이 여성이라는 지점에서 한계가 아닌 가능성을 발견하는 그런 사람으로 키울 거야. 세상은 험하고, 너를 잘 모르는 이들은 네가 진정으로 가지고 있는 힘보다 약하게 너를 보는 경우가 많을 거야. 그들을 놀라게 만들 원더우먼으로 키울 거야. 대단한 능력을 가진 그런 특별한 존재로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믿으며 다른 이들과 힘을 합칠 줄 알며, 그렇게 모은 힘으로 다른 이들을 도울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울 거야.
엄마는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을 해. 엄마와 아빠의 어떤 모습을 아가가 닮았으면 좋겠는지 말이야. 엄마는 아가가 엄마처럼 하고 싶은 것이 넘쳐서 늘 움직이며 무언가를 하는 모습을 닮았으면 좋겠어. 사람을 좋아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도 좋아하는 모습도 말이야. 그리고 엄마에게 아빠는 바다 같은 사람인데, 아가가 아빠처럼 착하고 너그럽고 다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처럼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사람이면 좋겠어.
요즘 엄마는 양육과 관련된 방송을 자주 봐. 그 방송엔 양육을 힘들어하는 부모와 금쪽같은 아이가 나와서, 멋진 헤어스타일을 가진 교수님께 조언을 구해. 몇 편을 보다 보니 한 가지 깨닫게 된 사실이 있어. 부모의 사랑을 원하는 건, 아이에겐 생존본능과 같다는 거야. 다양한 문제 행동들의 원인이 이 본능과 연결되어 있었어. 그래서 이 방송을 볼 때마다, 우리 아가를 정말 넘치게 사랑해 줘야겠다는 다짐이 들었어.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도록 아가와 눈을 마주치고 웃어주고 들어주고 그렇게 할 거야.
아가야, 엄마와 아빠는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할 거야. 엄마와 아빠의 울타리 안에서 원더한 우먼으로 마음껏 자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