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번의 퇴사 시뮬레이션, 결국은 감정이었다

때로는 감정이 정답에 가까운 직관적인 신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by 퇴사한노랭이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나는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수개월에 걸친 시뮬레이션,
하지만 결정의 순간, 모든 계산은 의미가 없었다.
처음으로 감정이 내게 주는 경고를 받아들였다.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고 인사를 드릴 때면 사람들은 종종 다음 계획을 물었다.


충분한 계산 끝에 퇴사를 결정했을 거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나는 내 인생 모든 결정의 순간에 있어서 늘 수백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결정이 내게 가져다 줄 기회와 리스크를 따져보며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퇴사 역시도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수없이 경우의 수를 나눴고, 확률이 낮은 이벤트까지도 빼놓지 않고 상상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계산도 내게 명확한 결론을 주지 못했다.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불안이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지금 당장 그만둘 이유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연봉은 안정적이었고, AI 시대에 직무 자체도 시장에서 사라질 직업은 아니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퇴근 후 남는 시간에 작게 시작을 해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았다. 이 모든 걸 종합해 보았을 때, 퇴사라는 위험한 선택을 굳이 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에서는 계속 같은 신호가 올라왔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과연 나중에는 내가 선택이란 걸 할 수는 있을까?


이 불안한 신호는 숫자로 표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명확한 답을 얻기 위해 계산하고 또 계산했다. 이 모든 과정들은 내가 더 경직되도록 붙잡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라 믿어왔기 때문에 매번 결정을 미뤘다. 리스크를 정확히 계산할 수 없다는 사실이 결정을 더 어렵게 만들었다. 확신이 없으니 더욱 지금 상태를 유지하면서 더 기회와 리스크를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 하나의 리스크가 보이기 시작했다.


결정을 미루는 것 역시 선택이 아닐까?
그리고 그건 또 다른 리스크가 아닐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환경이 대신해서 선택지를 골라준다. 그리고 경험적으로 그 선택들은 대부분 내게 유리하지 않았다. 내가 만든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택이 당장은 가장 편안하니까.



결국 마지막 결정은 감정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지막 결정을 내린 순간에는 어떤 시뮬레이션도 없었다. 다만 하나의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금 네 모습이 마음에 들어?


빠르게 발전하는 AI에 적응하기 위해, 그리고 업무에 적용하기 위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을 붙잡고 씨름하고 있었다. 한숨으로 시작하는 출퇴근, 모니터에 집중하지 못하고 수시로 자리를 비우는 모습, 회의 시간에 점점 의견을 내지 않는 모습, 그렇게 나 스스로를 신경 쓰지 못하는 하루들의 반복.


나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에 선뜻 그렇다고 답할 수 없었다. 그리고 기껏 몇 개월에 걸쳐 도출해 놓은 기회와 리스크에 대한 메모들을 무시한 채 내 결정을 밀어붙였다. 더 이상의 시뮬레이션은 무의미한 시점이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때로는 감정이 내게 주는 경고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감정은 비이성적인 오류가 아니라, 때로는 가장 정답에 가까운 직관적인 신호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던 것 같다.


퇴사하겠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퇴사를 선택한 내게, 누군가 시키는 일을 하는 일상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AI와 함께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만들어가야 했다.


그렇게 나는 현실을 마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