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구상할 때 뉴스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통과시킨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고, 오늘 아침에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미국이 방어하겠다는 바이든의 발언이 뉴스로 나왔다. 이에 중국 외교부장이 발끈하고 나섰다는 소식이다. 미중 패권 전쟁이 점입가경으로 나아가는 조짐이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정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정학적, 경제적 차원에서 한반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무역수지적자이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지만 전세계 공급망 문제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서 무역수지 적자가 6개월 째 계속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달러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달리고 환율은 하락하고 있다. 한국 수출의 효자노릇을 하고 있는 제조업은 중국의 기술 격차 추격으로 LCD를 포함한 디스플레이 사업은 경쟁력이 사라진지 오래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업과 2차전지 등 고부가가치 기술력을 가진 산업만이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조차도 중국으로부터 언제 역전 당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이런 뉴스가 어제 오늘 회자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년 전에도 중국 제조업이 한국 제조업을 따라잡을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고, 이를 극복하려면 한국 제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빨리 전환해서 초격차를 이룩해야 한다는 대안이 제기되었다.
2017년에 출간된 <축적의 길>에서 이정동 교수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려면 남의 것을 베끼는 관행을 벗어나 독자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개념설계”를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개념설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방법론을 다룬 후속작은 나오지 않았다. <축적의 길>은 산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설파한 총론에 해당한다. 제도권 학자가 이런 문제제기를 한 것은 마땅히 할 도리를 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2017년보다 더 어두운 안개 속으로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엄중한 사태에 직면해 있다. 제도권에서 후속작이 나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 없으니 제도권 바깥의 연구자라도 부족한 처지이지만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미·중 패권 전쟁과 같이 양립 불가능한 두 세계가 긴장된 상태로 불균등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으로 평형을 유지하는 상태를 ‘준안정성'이라고 정의하고, 과대하게 포화되어 있는 에너지들이 비대칭적이고 아직 분화되지 않은 상태 혹은 구조를 ’준안정적 시스템‘이라 규정한다.
준안정적 시스템은 안정적 상태도 아니고 불안정적 상태도 아닌 그 중간 상태로서 그 내부 환경이 불안과 안정, 정지와 운동 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라도 외부 조건이 변화하면 곧바로 내부 상태가 변화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다.
이 책은 현재 당면한 국제 질서와 국제 공급망 구조를 준안정적 체제라 보고, 이런 긴장 관계 속에서 한국의 수출 경쟁력을 주도하기 위한 전략을 어떻게 설계해 나가야 하는가에 관한 논의를 심층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점에서 가장 주목한 것이 ‘인식의 전환’ 문제이다. 오늘날 미국 및 중국과 같은 양대 강국으로부터 우리 산업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단순히 기술적 차원이 아니라 정신적 차원의 인식 전환이 핵심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는 두 힘들이 동시에 참여하는 하나의 긴장된 환경이 조성될 때, 두 세력 사이에서 수동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 에너지로서의 역량으로 새로운 구조를 발생시킬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또는 둘 사이에서 의미 있는 관계를 산출시킬 수 있는 연합을 형성하는 작동 원리를 ‘변환(變換)’이라고 한다. 변환적 사고는 불일치한 것들의 새로운 소통 관계를 창조하며 통일성을 획득한다.
요컨대, 이 책에서는 변환적 사고가 무엇이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원리를 설명하고 기업, 국가, 도시, 개인의 차원에서 다양한 사례들을 분석하여 그 이면에서 작동하는 변환적 사고를 소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