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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Sep 15. 2023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 with_좀머 씨 이야기 >





W- 트레이더스 언제 갈래요? 오늘 갈래?

  

E- ... 아니. 가기 싫어

    그리고 육포도 하기 싫어.

    컨디션이 계속 안 좋아서 에너지가 없어.

    기운도 없고, 기분도 별로야. 날씨도 안 좋고.


    밤에 비 안 오면 걸어야 해요.

    며칠 또 비 오면 못 걸으니까, 안 오는 날은 걸어야지.


W- 좀머 씨인가?


E- 좀머 씨가 왜요?


W- 계속 걷는 게 생각나서.

     좀머 씨 같네.




추석 전에 육포를 만들려고 2주 전부터 고기를 사러 가자고 남편에게 말했었다.

해마다 두세 번쯤 집에서 육포를 만드는데, 이번에는 좀 넉넉히 만들어 주변에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 간단한 일은 아니라서 미리미리 해야 한다고 당부도 하고 스스로도 마음을 다잡고 있었는데, 막상 오늘 시작하겠냐는 그의 말에 나는... 거절을 했다.


어쩌면 올해 육포 선물을 못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육포를 만드는 것보다, 그것을 선물하는 것보다, 걷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집에 있던 <좀머 씨 이야기>를 꺼내었다.

오래되고 낡은 책에 쌓인 먼지를 후- 불어내고 책장을 넘겼다.    





세상에... '97212'이라니...

그리고... '희진이 생일선물'... 이라니...?

희진이?... ! 희진이.

...... 그 희진이...


육포 덕에 뜻하지 않은 기억이 소환되었다.

무려 26년 전의 기억이고 추억이다.


97년 내 생일 즈음에 그가 나에게 주었던 선물이구나.

그 사람, 희진이. 나를 사랑했던 남자.

바보같이도 줄곧 오래도록 나만 바라보고 나만 사랑했던 남자.

그랬구나... 그가 이 책을 사준 것이었구나... 잊고 있었네...


잘 살고 있을까?

착한 사람이니 어디서든 잘 살고 있겠지.


그렇게 잊고 있었던 추억을 잠시 곱씹다 메모가 적힌 첫 장을 앞표지 날개 사이에 끼워 넣었다.

추억은 기억 속에 남겨 두는 게 더 아름다울 때가 많으니까.


몇 페이지를 넘겨 듬성듬성 문장을 읽는다.

띄엄띄엄 흐릿한 내용을 더듬어 본다.



 
어린 <나>가 사는 마을에는 텅 빈 배낭을 짊어진 채 기다랗고 이상한 호두나무 지팡이를 쥐고 바닥에 탁탁 소리를 내 가며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길을 걷는 아저씨가 있다.
그의 이름은 <그냥 좀머 씨> 이거나 <좀머 아저씨>이다.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걷는 이유를 '죽음으로부터의 도망'이라거나 '폐소 공포증'으로 인해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죽음으로부터 도망을 친다던 그는 결국 호수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죽음으로써 죽음으로부터의 고통을 피하게 된다.

피아노 학원에서 건반에 묻은 코딱지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건반을 제대로 치지 않아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던 어린 <나>는 그 사건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하고 나무 위에 올랐다가 빵과 물을 먹고 조용히, 천천히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좀머 아저씨>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그가 쓰고 다니던 모자만 둥둥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지켜보며 기껏 이 정도로 죽을 결심을 한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다시 살기 위해 나무 위에서 내려온다.
그리고는 이 사실을 함구한다.

<좀머 씨>가 걷는 동안 단 한마디 온전한 문장으로 말을 한 것이 있었는데, 비가 오는 날, 차를 타고 가던
<나>와 <나의 아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며 여전히 걷고 있는 <좀머 씨>를 보게 되었다.
차를 세우고 "그러다 죽겠다"며 "어서 차에 타라"던 <나의 아버지>에게  <좀머 씨>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그는 과연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걸었던 것일까?

살기 위해? 죽기 위해? 무엇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무엇을 잊기 위해?

스스로를 벌하는 것일까. 스스로를 구원하는 것일까.

견디기 위해 걸었을까? 견디기 힘들어 걸었을까...

그의 마지막은 생을 포기한 것일까?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생을 갖기 위해 죽음을 이용한 것일까.

그것이 그에게는 도피였을까? 안식이었을까...


나를 좀 제발 놔두라는 그의 말은, 절규일까. 호소일까. 신호일까.





다른 일을 버리고 걸어야 한다는 나에게 좀머 씨 같다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걷는 것일까.

왜 이렇게 걷는 것이 중요한 일이 되었을까.

조금만 걸으라 말려도 왜 병이 날 때까지 멈추기가 싫은 것일까.

스스로를 '걷는 사람'이라 칭할 만큼 그것이 나를 설명하는 수식어의 하나가 되었을까...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걷는다.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걷고, 걸을 것이다.


<좀머 씨 이야기>를 보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그래, 비 오는 날도 걸을 수 있지. 왜 못 걸어?

비옷을 입거나, 우산을 쓰면 되지.

그걸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 이제는 비 오는 날도 걸을 수 있겠다.


어쩌면 올해는 육포 선물을 못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나는 육포를 만드는 것보다, 그것을 선물하는 것보다,

컨디션을 회복하고, 그 회복한 컨디션으로 걷는 것이 더 중요하다.


걸어야 회복되고, 또 회복되어야 걸을 수 있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글 쓰는 일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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