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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Aug 17. 2023

STOP



깊은 잠을 자지 못한 지 두 달이 넘어간다.

원래도 숙면을 취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두어 달 전부터 이것이 더욱 심해졌다.

밤에 누워 겨우 잠에 드는 시간이 새벽 2시 전후, 그대로 아침까지 쭉 잠에 든다면 그것도 큰 문제는 아니련만 문제는 새벽 3시 20분 정도부터 잠이 깨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거의 30분~1시간 단위로, 아침에 기어이 침대를 털고 나올 때까지 족히 대여섯 번은 깬다는 것.


카페인의 영향을 별로 안 받는 편이긴 하지만 커피를 줄여보기도 하고, 최대한 몸을 피곤하게 만들려고 하루에 10km~12km를 걷기도 한다.

핸드폰의 소리, 알림, 알람은 진동 상태로 둔지 이미 오래인데 거부할 수 있는 알림은 모두 받지 않고 카톡, 브런치 등 무음 모드가 가능한 알림은 전부 무음으로 바꿔 폰을 보지 않고는 온 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태로 만들기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왜 기계처럼 어김없이 새벽 3시 20분에 눈을 뜨는 건지.

두 달쯤 되니 조금씩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오전은 내내 정신이 들지 않고, 피로는 사라지지 않았다.

혈액 순환이 되지 않아 하루종일 몸이 저리고 다리가 붓기 시작했다. 손을 하늘 위로 쳐들어 강하게 흔들어 줘야 하는 일도 잦아졌다.

좀 웃기긴 하지만 술에도 자꾸만 졌다. 애초에 술을 이기려고 마시는 건 아니지만, 이만하면 적당하다 싶은 양에도 만취한 기분이 들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실수할까 봐 두려워졌다.


그보다 더 괴로운 건 생각을 하는 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널브러진 생각은 많은데 그것을 정돈할 힘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한 가지 생각에 몰입할 수 있는 에너지도, 책상에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근육도 사라졌다.

잠을 못 자서 생각을 못하는 건지, 생각이 많아서 잠에 못 드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일에도, 생활에도 불성실해졌다.

무언가를 매일 하고 어딘가를 매일 가고 있었지만 정신은 언제나 공중 위를 둥둥 떠다녔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살고 있는 것인지, 내가 나에게 실망스러운 날들이 많아졌다.

매일 밤, 내일은 이러지 말자. 내일은 정신 차리자. 내일은 좀 제대로 살자. 하고 다짐하지만 잘못은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젯밤, 묵은 숙제 하나를 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묶여있었던 매듭을 내 손으로 풀어헤쳤다.

그것을 풀어헤쳐서 의미 없던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고 버리기로 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내 삶을 소모적으로 소비할 순 없다고 생각했다.

남아 있는 알맹이에 집중해야 한다. 내가 가야 할 길을 걸어야 한다. 남의 의지로 흔들리지 말고 나의 의지로 행동해야 한다. 가치 없는 것을 버리고 가치 있는 것을 향해야 한다.

일도, 사람도, 생각도, 행동도 마찬가지다.

설득되지 않는 것을 이해해 보려고 나를 쓰는 일, 이만하면 그만해야 한다. 이만해도 설득되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결론에 이르자 행동했다. 우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가장 빠르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어쩌면 그것은 이미 알고 있던 결론이었을 것이다. 다만 행동으로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그리고 잠에 들었다.

일찍 잠든 것은 아니었지만 눈을 떴을 때, 아침이었다.

시간으로는 길지 않은 4시간 40분 동안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한 번도 깨지 않고 쭉- 잘 수 있었다.

그리고 일어났는데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어쩐지 맑았다.

정말 오랜만이었다.

마음이 무겁지 않았다. 조바심이 나지 않았다. 붕 떠있던 영혼이 땅 쪽으로 반쯤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핸드폰을 들어 지난밤의 내용들을 확인하는데 그때 소리 없이 알림이 들어왔다.

브런치였다.


그래, 내 할 일을 하자.

잊진 않았지만 잘 안되기도 했고 잘 안하기도 했던 일.

부채처럼 쌓아두지 말고 개운하고 신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자.

갑자기 브런치에 할 말이 생각났다.

그래 너, 오늘, 말 좀 하자.


침대에서 일어나 음악을 틀고 노트북과 책들을 챙겨 거실로 나간다.

창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커피를 내리며 생각한다.

오늘 커피, 참 맛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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