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th_좀머 씨 이야기 >
어린 <나>가 사는 마을에는 텅 빈 배낭을 짊어진 채 기다랗고 이상한 호두나무 지팡이를 쥐고 바닥에 탁탁 소리를 내 가며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길을 걷는 아저씨가 있다.
그의 이름은 <그냥 좀머 씨> 이거나 <좀머 아저씨>이다.
사람들은 그가 그렇게 걷는 이유를 '죽음으로부터의 도망'이라거나 '폐소 공포증'으로 인해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죽음으로부터 도망을 친다던 그는 결국 호수 안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죽음으로써 죽음으로부터의 고통을 피하게 된다.
피아노 학원에서 건반에 묻은 코딱지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건반을 제대로 치지 않아 선생님께 크게 혼이 났던 어린 <나>는 그 사건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하고 나무 위에 올랐다가 빵과 물을 먹고 조용히, 천천히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 <좀머 아저씨>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결국 그가 쓰고 다니던 모자만 둥둥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지켜보며 기껏 이 정도로 죽을 결심을 한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다시 살기 위해 나무 위에서 내려온다.
그리고는 이 사실을 함구한다.
<좀머 씨>가 걷는 동안 단 한마디 온전한 문장으로 말을 한 것이 있었는데, 비가 오는 날, 차를 타고 가던
<나>와 <나의 아버지>는 비를 흠뻑 맞으며 여전히 걷고 있는 <좀머 씨>를 보게 되었다.
차를 세우고 "그러다 죽겠다"며 "어서 차에 타라"던 <나의 아버지>에게 <좀머 씨>는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