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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r 27. 2023

당신의 카카오 톡은 안녕하십니까?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무례함



말은 인품이요, 글은 영혼이다.

말은 입으로 뱉지만 귀고 들어오고, 글은 손으로 쓰지만 눈으로 들어온다.


그럼 카카오 톡은 뭘까?

말일까 글일까, 말글일까 글말일까?


카카오 톡은 말을 글로 옮겨 놓은 것이다.

그러니 카카오톡은 말글(말을 글로 쓴 것)도 되고 글말(글로 쓴 말)도 될 것이다.

그 안에는 나의 인품영혼이 같은 시공간으로 존재한다.


카카오 톡이 전 국민의 필수 앱이고 게다가 요즘은 콜 포비아(call phobia 전화로 음성 통화를 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카카오 톡의 편리성과 약간의 은둔성으로 인해 거의 매일 이 카카오 톡을 사용하게 된다. 문제는 이로 인해 이 전에 겪지 못한 많은 경험들을 하게 된다는데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이 바로 필요 이상의 감정 소모이다.


아무래도 글로만 전해지는 언어라 감정의 전달이 온전하지 못한 것은 맞다. 그러므로 우리는 글자를 적을 때 더 신중해야 하고 정중해야 하는데, 간혹 이 것을 놓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도 그들 중 하나가 아니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감정이라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 모두 다르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나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또 다른 모양이 될 수도 있는 것이므로.


다만,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기본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본,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기본.





나는 최근에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되어 카카오 톡으로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이 있었다.

아주 가깝다고는 할 수 없으나 공통의 관심사로 매일 한 번씩은 짧게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다.

주로 저 쪽에서 말을 걸고 나는 말을 받아주고 하던 패턴이었는데 종일 연락이 없던 어느 날, 내가 먼저 톡을 보냈다.



뭐 하시나요?

오늘은 조용하시네요.



저녁 6시 반쯤 보낸 그 톡은 자정이 되도록 1이 지워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바쁜가 보다. 바쁘겠지. 했다.

그러다 스멀스멀 걱정이 올라왔다. 

무슨 일이 생겼나? 어디 아픈가? 하루 종일 연락이 없네. 매일 연락 오던 사람인데.

그렇게 자정이 넘고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1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아...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구나. 다행이네 뭐.


그러나 답은 없었다. 

너무 늦은 밤이어서 그러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 답은 다음 날에도 하루 종일 없었고, 

내가 톡을 보낸 지 정확히 29시간 15분쯤 지난, 밤 11시 45분쯤 돌아왔다.

짧고 간결하게.



궁금한가?ㅋ



나는 확인하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는 불 다 끄고 자려고 누운 상태에서 막 폰을 들어 시각을 보던 참이라 실시간으로 톡이 들어오는 걸 확인했다.

기가 찼다. 어이가 없었다. 궁금한가? 거기다 ㅋ라고? 29시간 45분 만에 답장을 하면서 라고?

철없는 아이도 아니고 나이도 먹을 대로 먹은 어른이, 미안해. 사정이 있어서 답을 못했어. 한 마디면 될걸.

이해가 안 됐지만 그 기가 차고 어이없는 마음을 그 늦은 시간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좋은 말이 나가지 못할 것이 분명했고 또 한 편으로는 이 불편한 마음을 이런 사람에게 드러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그래서 확인하지 않은 채 잠에 들었다.


다음 날, 서둘러 출근을 하는데 운전 중 신호 대기에 잠시 핸드폰을 확인하니 30분 전에 다시 톡이 와 있었다.

바빠서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그제야 어젯밤에 온 톡과 아침에 온 톡을 확인하게 되었다.



톡 안하는건가?



운전 중이라 답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임상 심리학자이며 버지니아 대학교 교수, 또 TED의 명강사인 멕 제이는 그의 책 슈퍼노멀 에서 말했다.



최고의 복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옹졸한 나는 순순히 그럴 수 없었다. 그의 예의 없음에 잔뜩 독이 올랐다.

나도 당신과 똑같이 해줄 테니 너도 느껴봐라. 라는 복수의 마음과 그래, 그냥 말을 말자. 말해 뭐하겠나. 라는 체념의 마음. 또 한 편으로는 어떻게 말을 해야 가장 효과적이고 세련되게, 치명적이고 단호하게. 너의 잘못을 인지시키고 나의 불쾌함을 해소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출근을 했고 자리에 앉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톡이 왔다.



톡 무시ㅎ 차단한다.



헐...

겨우 1시간 남짓이었다. 아침에 그쪽에서 톡을 보낸 지는 1시간 남짓이었고, 내가 그걸 확인한 것은 30분쯤 지났을 때였으며, 확인하고도 답을 못한 것은 40분쯤 지난 시점이었다.

6시간 동안 내 톡을 확인하지 않았고, 확인하고도 24시간가량 답을 하지 않았던 사람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시쳇말로 안읽씹, 읽씹, 둘 다 한 사람 아닌가. 적반하장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든 말일까?


최대한 감정을 눌러 짧고 간결하게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었다. 몇 번의 설전이 오가고 난 후 사과할 생각이 없으면 그만하자고 했다. 그 말에 그쪽에서 뱉은 말은 이거였다.



몰 사과하란거지

내가 너에게 톡을 주기적으로 해야하는 사이인가?

우리 사겨?ㅋㅋㅋㅋㅋ



......???

이 무슨 쓰레기 같은 멘트지?

지금 이걸 농담이라고 하는 걸까? 진담이라고 하는 걸까?

정신이 제대로 뇌에 박혀있긴 한 걸까?

아니, 사귀는 사이가 아니면 이렇게 대놓고 막- 무례해도 된다는 말인가?


그리고 톡 확인을 안 한 본인 보다 톡을 읽고 무시한 내가 더 잘못이라고 했다.

본인이 한 짓은 정말 진짜 대체 왜!!! 기억이 안나는 거지?

하......





또 다른 지인은 본인이 필요할 때만 나의 카톡을 확인하는 이도 있었다. 본인이 할 말이 있을 때만.

심지어 본인이 나에게 질문을 해놓고도 그 대답을 5시간이든 6시간이든 12시간이든 확인하지 않는 거다.

친절하게 답변을 한 나는 그 시간 동안 정말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그 사람의 패턴을 이해하고 적응해 보려고 했지만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신기한 건 그런 사람 대부분이 사과하지 않았고, 더 문제는 왜 사과해야 하는지 조차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그 사람들을 잘라내었다. 너무 다른 기준을 가진 우리는 진실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고, 그들과의 억지 연은 나의 정신을 너무 소모시키기 때문이었다.


나와 나의 지인의 부끄러운 말싸움을 고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한 때 지인이었던 이의 잘잘못을 만천하게 드러내 벌을 받게 하겠다는 의도도 전혀 아니다.


내가 유독 예민한 걸까? 아니면 내가 알던 이들이 유난히 모자란 걸까?

혹은 내가 운 없게도 그런 사람만 골라서 만나게 된 것일까? 우리의 관계는 과연 시작부터 삐걱거렸을까?


카카오 톡에서 이뤄지는 지극히 사적이고 은밀한 무례함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연락의 수단이 전화나 문자가 아니라 카톡으로 넘어온 순간 암묵적으로 둘 사이는 조금 더 사적인 관계로 넘어오고, 조금은 더 가깝다고 느껴서인지 오히려 더 예의를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난다.


절대적인 가치에는 보편적인 기준이라는 것이 있다. 예의도 그러하다. 그건 초등학교에서 모두 배우는 내용이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가 무상 교육에 의무 교육이다. 그런 거 배우라고, 살아가면서 꼭 필요한 기본 지식, 기본 가치, 기본 소양, 기본 도덕. 그런 거 배우라고 전 국민이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함부로 굴어서는 안 된다.

누구라도 그렇다. 누구에게라도 그렇다. 인간이 인간에게 그렇게 무례해서는 안된다.


말과 글은 본인의 인품과 영혼이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건 그걸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다.

품위 있게 빛날 것인가 벌거벗고 까발려질 것인가는 본인의 선택이다.

빛나기로 택했으면 우리는 조금 더 신중하고 조금 더 정중할 필요가 있다. 


일단... 우선, 나부터 반성 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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