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나랑 같이 밥 먹을래요?
나는 이 말이 참 좋다.
어쩐지 너무 좋다.
달고 따뜻하다.
열두 살 아이가 누텔라 한 스푼을 병째로 들고 퍼 먹는 기분이다.
말속에 온기와 습기가 가득가득하다.
마냥 뜨뜻하고 촉촉해진다.
어느 날에, 이 말을 듣는다면 나는 심장 한쪽이 심하게 말랑해진다.
말랑함이 지나쳐서 녹아버릴 지경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꾹꾹 눌러 참던 물음을 나도 묻고 싶어 진다.
"밥 먹었어요?"
"뭐 먹었어요?"
어린 날에 나는 밥을 먹지 못하고 자랐다.
밥을 먹지 못할 만큼 가난했다는 말이 아니라
밥을 챙기지 못할 만큼 나에겐 사람이 없었다.
모두 멀었고, 모두 바빴고, 모두 아팠다.
소풍 때, 한 번도 김밥을 싸 가 본 적이 없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마찬가지였다.
반장도하고 회장도 하고 앞에 나가 노래도 부르고 친구들과 춤을 추기도 했지만,
또 선생님들과 특별히 가깝게 지내기도 하고 끈끈하고 오랜 친구들도 많았지만,
예쁜 옷도 입었고, 운동도 잘했고, 공부도 못하지 않았지만,
내 도시락은 언제나 비어있었다.
그 시절 소풍 때 나는 무얼 먹었는지,
또 소풍이 아닌 날에는 무얼 먹고 자랐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기억할 것이 도통 없거나, 차라리 기억하고 싶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슬픈 건, 슬프지 않았다는 거다.
그냥 좀 씁쓸했을 뿐이다.
원래부터 그랬으니까.
언제나 그랬고, 쭉 그럴 것을 아니까.
소풍이나 운동회 같은 특별한 날 말고도 나는 도시락이 없었다.
줄곧 급식이 없던 시절의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냈는데
그 12년의 시간 동안 도시락을 싸 간 것은 딱 한 번이었다.
특히나 고등학교 때는 집에서 제법 떨어진 학교로 진학을 했고,
스쿨버스를 타고 새벽 6시 전에 등교해서 밤 11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였는데도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그 한 번의 도시락에는 고춧가루에 버무린 노란 단무지와 멸치 볶음이 들어있었다.
언니가 싸준 그 도시락은 평범했지만 특별했고, 짧았다.
아침도 먹지 못했던 내가 점심과 저녁은 어떻게 해결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떤 때는 초코파이 하나로 하루를 살았고 어떤 때는 매점에 파는 컵라면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것들이 지겹거나 혹은 주머니가 비어 그저 굶는 날도 태반이었다.
가난하지 않았지만 가난했던 날들이었다.
친구들이 싸 오는 도시락이 어느 날부터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퍼지기 시작했다. 자꾸만 눈물이 차 올라서 신경질이 났다.
저녁 식사 시간마다 운동장을 걸었다.
깜깜한 운동장을 두어 바퀴쯤 돌고 교실 쪽으로 오면,
아이들이 먹고 내놓은 분홍의 배달 도시락들이 불규칙하게 쌓여있었다.
그걸 보는 것조차 신경질이 났다.
난 왜 배달 도시락조차 사치처럼 느껴야 했을까...
왜 어느 누구도 나의 밥을 궁금해하지 않는 걸까...
애초에 내 생에 밥이라는 것이 대단히 특별한 운명인 것인지
먹지 못하고 살았던 어린 날의 일상은 혼자 있던 대학 생활과
불규칙한 방송일을 직업으로 가지면서 더 굳어졌다.
굶거나 몰아 먹거나 허겁지겁 먹거나 하는 일들은 지겹게 이어졌고
그 대가로 지독한 소화 불량과 위염,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위경련과 위궤양까지 얻게 되었다.
사람은 대부분 하루에 세 번씩, 비교적 정해진 시간에, 끼니라는 것을 먹는다는 걸,
그런 행위를 매일 반복한다는 걸, 아니, 해야 한다는 걸, 이해하는데 오래 걸렸다.
이해는 대략 했지만 흡수는 아직 못했으므로 여전히 나는 나의 밥을 잘 챙기지 못한다.
아침은 언제나 먹지 않고 점심도 거의 먹지 않는다.
음식 같은 음식을 먹는 건 하루에 한 끼 정도인데...
미식으로의 발전인지 퇴보인지, 못 먹는 것도 많고 안 먹는 것도 많다.
살아온 날들은 살아갈 날들을 지배했다.
밥을 못 먹고 자라는 건,
생각보다,
두고두고,
오랜 시간,
깊고 어둡게,
슬픈 일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 경험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지 않다.
누구도 그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다.
그 누구가 가족이라면 더욱 그렇고, 살아갈 날이 길 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를 위한 식사는 간소할 때가 많지만 누구를 위한 밥상에는 정성을 들인다.
인스턴트나 가공 식품, 통조림, 냉동식품은 되도록 먹이지 않고, 배달 음식이나 외식도 드물다.
가능한 좋은 재료를 구입해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요리법을 시도한다.
같은 반찬을 여러 번 먹지 않고 매 끼니 다른 요리와 반찬을 올리는 편이다.
요리를 즐기진 않지만 요리를 못하지는 않게 되었다.
따뜻한 밥 냄새가 나는 집을 주고 싶고, 주방의 분주한 소리가 즐거운 집을 주고 싶다.
같이 쿠키를 만들고 같이 수제비 반죽을 뜨고 같이 상을 치우고 같이 설거지를 하는 집을 주고 싶다.
둘러 앉아 먹는 밥, 둘러 앉아 나누는 이야기가 특별하지 않은, 일상이길 바란다.
그런 기억이, 오래오래 기억되길 바란다.
당연한 것들로 대접받고 살길 바란다.
그래서 당연하게 스스로를 아끼고, 자신도 남도,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나에게 있어 이 말을 건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밥 먹었냐고 뭘 먹었냐고 상대에게 묻기 전에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우리는 이런 사소한 것을 물어도 되는 사이일까.
그는 혹은 그녀는 나의 이런 사소한 질문을 성의 있게 받아들일까.
그래서 그것에 대해 기쁜 맘으로 대답해 줄까.
뭘 이런 걸 왜 물어? 귀찮게. 어이없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내가 심하게 소심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나에겐 많이 의미 있고 그래서 많이 쉽지 않은 질문이다.
어느 날에 나는 누군가의 물음으로 다시 살아났다.
아침 먹었냐는 말, 점심 먹었냐는 말, 저녁 먹었냐는 말.
그럼 무얼 먹었냐는 말, 무얼 먹을 거냐는 말.
맛이 있었냐는 말, 많이 먹었냐는 말.
그 말에 그렇게 강력한 힘이 있는지 뒤늦게 알았다.
절반쯤의 인생을 산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말이 얼마나 녹록지 않은지를.
얼마나 무겁고 얼마나 깊이 있는지를.
얼마나 따스한지를.
얼마나 사람다운지를.
이제 나는 나에게 밥 먹었냐고 묻는,
혹은 밥 먹자고 말하는 누구에게라도 상냥해질 수 있다.
그 사람이 정말 지긋지긋하고 지루한 꼰대 상사일지라도 말이다.
어쩜 내가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식사하셨어요? 뭐 드셨어요? 맛있었어요? 하고.
어느 날, 내가 당신을 만난다면 먼저 묻고 싶다.
초승달 닮은 눈을 하고서 당신의 눈을 마주 보며.
그때 당신,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대답해 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