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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Apr 19. 2023

나의 자전거 도둑님께_1page



내 자전거 도둑님.


안녕하세요.

잘 살고 계시나요?


기억하시나요?

약... 그러니까 음...

약 삼십여 년 전, 경상남도 어느 시골의 시장에서 오락실 앞에 세워 둔 제 자전거를 훔쳐 가셨잖아요.

그것도 구입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자전거를 말이에요.

아마 기억하실 거예요.

프레임은 검은색이었고, 그 당시 드물게 5단 기어까지 달린 최신식 자전거였거든요.

제가 오늘 그 얘기를 들려 드릴게요.

이미 오래전 이야기니 나나 도둑님이나 기억이 가물가물할지도 모르는데 아무튼 생각을 잘 긁어 내 볼 테니 가만히 들어보세요.


그 자전거는 내가 가진 첫 보물이었어요.

사실, 이전에 학습용이긴 해도 흔치 않게 바이올린을 갖고 있었는데, 그 바이올린은 내가 갖고자 해서 가진 것이 아니었기에 나에게 보물이라고 할 만한 것은 아니었죠. 나중에 조카에게 서슴없이 줘버리기도 했고요.

하지만 자전거는 달랐어요.

내가 의지하여 '내 것, 내 거'로 소유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물건이었거든요.


그 자전거가 내게로 오던 날이 아직도 선명해요.

그 장면 사이사이 햇살이 반짝- 하고 들이치거든요.

내가 살던 곳은 자전거 가게가 없었죠.

그래서 큰 일을 치를 때마다 나가곤 하던 인근 도시에서 그 자전거는 배달되어 왔어요.

지금의 이성으로 생각해 보면 그럴 리가 없을 것 같은데 당시의 기억으로만 생각하자면 그 자전거는 5톤 트럭에 실려왔어요.

있잖아요. 트럭의 오른쪽이거나 왼쪽의 한 면이 거대한 문이 되어 위로 열리고 아래로 닫히고 하는 그런 트럭이요.

그때, 오른쪽 문이 마치 굴착기의 포크 모양 손처럼 하늘을 향해 쩌억- 들어 올려지더니 그 안에서 영롱한 자태의 자전거가 나왔죠. 그걸 들어 내려 줄 자전거 가게 아저씨도 덩달아 위풍당당히 서 계셨고요.

그 아저씨의 오른쪽 머리 위 쪽에서 빛나던 해를 기억해요. 정말 뽀얗고 눈 부셨어요.

그 해를 뚫고 아저씨가 자전거를 내려 나에게 건네주었을 때, 정말이지 얼마나 기뻤는지...

그때만큼은 온 우주가 영롱한 별이 되었어요.


그도 그럴만한 것이, 그 자전거는 내가 엄마에게 두 달 동안 조른 것이었어요.

그때 왜 그렇게 그 자전거가 갖고 싶었는지.

그렇게 무얼 사 달라고 졸라본 게 내 삶에 딱 두 개 있었는데, 첫 번째는 그 당시 유행하던 분홍색 스펀지 슬리퍼였고 두 번째가 바로 그 자전거였어요.

슬리퍼는 친구들처럼 학교 실내화로 신을 요량이었는데 사실, 그렇게 값이 비싼 것도 아니었는데 시장에서부터 집까지 아무리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징징대도 결국 사주지 않으셨죠.

고집을 있는 대로 부리는 내가 기가 막혔던 것인지 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마당에 널브러져 있던 아무 슬리퍼나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들어 휘둘렀고, 나는 기어이 그 슬리퍼에 등짝을 얻어맞은 후에야 고집을 버릴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그 값이 몇 십배 혹은 백배쯤 차이가 날 법한 자전거는 큰 언쟁 없이 사 주셨는데, 그때는 그 이유 같은 건 몰라도 상관이 없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져요.

이틀이 아니라 두 달을 졸라서였을까요? 아니면 전략을 바꿔 졸졸 따라다니지는 않고 넌지시 한 번씩 툭- 툭- 말을 흘려서였던 것일까요?

어쨌든 이제는 영영 그 이유는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답니다.



< 영화_자전거 도둑 / 감독_비토리오 데 시카 / 이탈리아 / 1948년 작_1952년 개봉 > 



더 신기한 건 뭔지 아세요?

받는 순간에 그렇게 영롱했던 별이 생각보다 오래가지는 않더라고요.

하루, 이틀, 사흘...

기쁨은 점점 줄어들고 관심도 점점 줄어들고...

왜 그랬을까요? 그토록 원했던 자전거였는데.


본인도 가져보지 못한 자전거를 동생인 내가 먼저 갖게 되자, 언니는 쉼 없이 그 자전거를 노렸어요.

잠깐만 타면 안 되겠냐며 끈질기게 나를 설득하고 회유했죠.

내 흥미가 점점 떨어지기도 했고, 언니의 끈질김이 꼴 보기 싫기도 해서 어느 날은 알겠다고 했어요.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자전거를 타고 나갔던 언니는 시장 한복판에서 어느 아저씨를 만났고 그 아저씨의 아주 다급한 사정이 있으니 잠깐 자전거를 빌려 줄 수 있겠냐는 말에 순진하게도 그걸 덜컥 내어주고 말았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뭔가 이상함을 눈치챈 언니가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다행히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느라 멀리 달아나지 못하고 있던 아저씨를 붙들어 자전거를 다시 돌려받을 수 있었죠.

아! 혹시 그때의 그 아저씨도, 도둑님이었나요?


아무튼 그것이 1차 사기도난 사건이었어요.

그 사건 이후 심장을 쓸어내렸겠지만 언니는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나갔거든요. 이번에는 내 허락도 없이 나도 모르는 새 말이죠.

그것 보세요. 뭐든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부터는 쉬워진다니까요.

자전거를 타고 나갔던 언니는 그 자전거를 잠시 오락실 앞에 세워두었답니다. 그것도 열쇠도 채우지 않은 채 말이죠. 

그 당시 오락실이라 함은 지금과는 달리 대부분 불량 청소년들이 몰려드는 소굴 같은 곳이었는데 동네에서 난다 긴다 하는 쌈꾼들은 다 모여 있었죠.

청소년 나이이나 학교를 다니지 않고 뒷 엉덩이를 잔뜩 올린 오토바이에 여자 아이를 태우고 다니며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는 이도 많았고요.

그런 곳 앞에다 5단 기어가 달린 반짝이는 새 자전거를 열쇠도 없이 세워 두었으니 뭐, 사라지는 일이 이상할 것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채 두 시간이 지나지 않아 자전거는 행방불명되었고, 언니의 정신도 덩달아 거의 행방불명되어 버렸답니다.


그런데 그것도 참 이상하지요.

애타게 두 달을 조르던 자전거가 일주일도 안되어 먼지처럼 사라졌는데 나는 그것이 그다지 슬프지가 않았습니다. 물론, 화가 나지도 않았고요.

그냥 그러려니... 했다고나 할까요? 그 어린 나이에.

어쩌면 뭔가... 무거운 돌을 들어낸 기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차라리 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그 상황이 좀 우스웠던 것 같기도 하고...


왜 그랬을까요?

진짜 왜, 마음이 동요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후 나는 어느 것도 소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무언가 사 달라고 조르는 일도 당연히 없었고요.

물건이 주는 감흥이 생각보다 크지도, 오래가지도 않는다는 것을 도둑님으로 인해 깨달아버렸거든요.

그런 마음은 근 삼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한 것 같아요.

명품 가방이나 명품 옷에도 고가의 보석이나 그 외 고가의 물건에도 그다지 동요하지 않는 편이거든요.

아니, 이미 나에게 명품이나 고가품이 많았다면 또 달라졌을까요?

어차피 소유는 더 소유를 낳고, 무소유는  다시 무소유를 낳게 되니까.


아무튼 나의 자전거 도둑님 당신은, 일찌감치 나에게 물질의 허무를 알려 주었어요.

내 일주일의 환희는 그렇게 장렬히 끝이 났고, 정작 자전거를 소유했었던 일주일의 시간보다 조르고 기대하고 기다리던 두 달의 시간이 더 행복하고 기뻤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럼, 당신에게 그 자전거는 무슨 의미를 주었을까요?





< 나의 자전거 도둑님께_2page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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