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UNJIN Apr 20. 2023

나의 자전거 도둑님께_2page



< 나의 자전거 도둑님께_1page에서 이어집니다. >






나의 자전거 도둑님.


나는 요즘도 가끔 자전거를 탑니다. 

새 자전거를 타면 반드시 다시 잃어버릴 것 같아서, 잃어버릴까 봐 조마조마해할 그 마음이 싫어서 차라리 낡은 자전거를 탑니다.

그때 도둑님의 가르침으로 새로운 물건에 대한 욕심은 사라졌으나 있는 물건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까지 사라지지는 못했나 봅니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생각합니다. 

잃어버려도 괜찮다. 잃어버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것은 내 의지가 아니다. 도둑의 의지이다.


가끔 TV나 유튜브에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겪는 신기한 일들, 이해 안 가는 일들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습니다. 

그중 단연코 1위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혹은 가방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어느 누구도 그것을 가져가지 않고, 또 어느 누구도 그 물건들을 두고 자리를 비우는 것에 불안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요. 

사실이 그렇죠. 우리는 대부분 그렇게 남의 물건에 손을 대지 않습니다. 주인이 있어도 없어도,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어느 날은 한국에 오래 산 또 다른 외국인이 얘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카페에서 노트북이나 가방은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다. 

그런데 카페 주변에 세워 둔 자전거는 훔쳐간다. 

자전거를 통째로 가져가기 힘들 땐 안장만 빼 가기도 하고 손잡이만 가져가기도 한다.

도대체 그건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노트북이 훨씬 비쌀 텐데.


한참을 웃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통찰력이지 않습니까.

나도 길가를 지나다니면서 또 살고 있는 아파트 내에서 손잡이나 페달이나 안장이 없는 자전거들을 많이 보았거든요. 

왜 도둑님들은 남의 비싼 노트북이나 휴대폰보다 타고 다니던 낡은 자전거에 더 관심을 보이는 걸까요? 

자전거가 훨씬 더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물건인 걸까요?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곧바로 주니까 그런 걸까요? 


도둑님에게 제 자전거는 어땠나요? 어떤 의미였나요?

가져가서 잘 탔나요? 오래오래 행복했나요?

혹은 절박했나요? 간절히 필요했었나요?


어찌 됐든 원래의 주인인 나보다 당신에게 더 필요했고, 

그래서 당신이 이전의 당신보다 더 행복해졌다면 나는 그걸로 된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새 자전거를 사주며 말했습니다.


간수를 잘해야 한다. 

타고 다니다 어디다 세워둘 땐 꼭 잠그고. 

새 자전거는 특히 더 잃어버리기 쉬우니까.


그러자 아이가 묻습니다.


잠그고 잘 놔뒀는데도 누가 가져가면요? 훔쳐가면요?


그럼...

그냥 가져가게 놔둬야 해. 그 사람에게 줘야 해.

이렇게 잠겨 있는 자전거를 그렇게 힘들게 끊어서 굳이 가져가겠다면 그건 그 사람 거야.

그만큼 절박하거나 그만큼 필요한 걸 거야.

우리는 이 자전거 없이도 살 수 있잖아?

자전거를 아끼고 잘 간수하고 잘 챙기는 것 까지가 너의 몫.

그다음 일어나는 일은 네 몫이 아니야.

그러니 혹시 자전거를 잃어버리게 되더라도 그것에 너무 연연하지는 말자꾸나.





< 영화_자전거 도둑 / 감독_비토리오 데 시카 / 이탈리아 / 1948년 작_1952년 개봉 >



자전거를 타기 좋은 계절이 되었습니다.

한강변을 따라 길게 난 자전거 도로를 달리면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기분이 아주 끝내 주죠.

막힘없이 탁 트인 전경에 눈도 덩달아 시원해지고 머리는 맑아집니다. 

달리다 힘들면 한강 공원에 들러 잠시 쉬어갑니다. 

잔디밭에 퍼질러 앉아 물을 마십니다. 좀 누워 하늘을 봐도 좋고요. 

그러다 한 숨 잠이 들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꿀 같은 잠이란 그럴 쓰는 말이 아닐까 합니다.

자다 깨어 출출해지면 편의점에 들러 라면을 끓여 먹습니다.

보글보글 한강에서 끓여 먹는 라면은 왜 원래의 것과 맛이 다른 걸까요?

라면 대학이 있다면 '라면의 활용' 편에 '한강 라면을 먹어본 자 vs 안 먹어본 자' 혹은 '한강에서 먹는 라면, 왜 집에서 먹는 것과 다른가'에 관한 분석이 꼭 나오지 않을까요?


생각난 김에 이 번 주말, 자전거 라이딩을 해볼까 봐요.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모자는 꼭 써야겠지요.

저는 낡은 자전거로 한강변을 달리고 잔디밭에 누워 하늘 좀 보고 돌아오겠습니다.

생각난 김에 도둑님께서도 어느 한적한 강가를 좀 달려보시는 건 어떨까요?


그럼, 나의 자전거 도둑님.

건강하시고요.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서울에서, 이제는 꼬마가 아닌 어느 여인이 -





PS.

아. 도둑님께 편지를 쓰려고 검색을 좀 하다 보니 우연히, 정말 우연하고도 신기하게 오래전 영화인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자전거도둑'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게 무려 75년 전 영화인데 말이죠. 엄청나네요.


곧 개봉이라고 하니 저는 또 생각난 김에 이 영화를 찾아서 봐야겠어요.

도둑님도 시간이 나시면 보셨으면 좋겠어요. 

아. 도둑님께는 어쩜 기억하기 싫은 추억일 수도 있겠군요...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그럼 진짜 이만.

안녕.







이전 06화 나의 자전거 도둑님께_1pag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