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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Apr 28. 2023

위로

명사 :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

< 작품명 : 부드러운 휴지를 갖고 다니자 >



위로를 받으려고 쓴 글이 아니었다.

그 글이 위로를 부르게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밥에 대한 글이 올라가고 얼마 안 있어 댓글이 달렸다.

토닥토닥. 고생 많으셨어요.

당황스러웠다. 혼란스러웠다.

내가 글을 잘 못 쓴 걸까...?

왜 위로를 하지? 위로받고 싶지 않은데? 나 괜찮은데?


다음 날 또 다른 댓글이 달렸다.

자신의 지난날이 생각 나 글을 읽으며 아팠다는 말.


그 댓글을 보는데...

바보같이 눈물이 주르륵 흘러버렸다.

순식간에, 말릴 틈도 없이, 이유도 모른 채.

그것도 사람들로 가득 차고 숨소리만 공유하는 도서관 한가운데 앉아서 말이다.


커다란 테이블 위로 물방울이 툭. 투둑.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 가방을 뒤적여 휴지를 꺼냈다.

눈치 없는 콧물부터 스윽- 닦고 눈물을 마저 닦았다.

화장실에서 뜯어 와 쓰고 남은 거친 휴지가 까슬까슬하게 얼굴을 쓸어댔다.

아... 부드러운 휴지 좀 갖고 다닐걸... 젠장. 아파라.

눈물이 멈추지 않게 될까 봐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울은 것이 창피해서 재빨리 휴지를 감추고 고개를 들어 주위를 보았다.

아무도 모르겠지?





맞은편에 앉은 젊은 엄마와 나란히 앉은 남자아이가 다정하다.

얼핏 봐도 초등학교 4학년쯤으로 보이는 저 꼬마는 아까부터 '중1 수학' 문제집의 '그래프의 활용' 편을 풀고 있다.

문제집 두 권과 연습장 한 권, 그리고 한쪽 모서리가 너덜너덜한 모눈종이 한 장까지 펼쳐 두고서.

똘망똘망한 것은 스스로 책을 꺼내어 혼자 풀고, 빨간 볼펜을 들어 혼자 답을 매기고, 다시 풀기를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전혀 싫지 않은 표정으로 유쾌하고 담백하게. 그리고도 진중하게.

(아, 볼펜으로 매긴 것은 지금까지 다 동그라미이다.)

녀석, 흐흐흐 기특하네. 아니 특이한 건가?


조금 전, 그러니까 내가 위에서 말한 댓글을 보기 전, 바보같이 울기 전에 아이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찰칵찰칵 소리가 나길래 고개를 들어보니 그 엄마가 무언가를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그게 못내 궁금하여 티 안 나게 고개를 빼꼼히 들어 올려 훔쳐봤더니 아이가 연습장에 무언가 써 놓은 것을 찍고 있는 것이었다.


저게 뭐지? 뭐라고 쓴 거지?

사시 같은 눈을 하고 열심히 노려봤더니,

엄마, 나 화장실 다녀올게. 였다.


사진을 찍던 엄마는 다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지극히 평온한 표정으로 계속 책을 읽어 나갔다.

히가시노게이고의 살인사건에 관한 책을 말이다.

무시무시한 여자네...


아니, 엄마, 나 화장실 다녀올게. 라니...

아니, 저 말을 찍고 있다고? 찰칵찰칵?

아니, 둘 사이 얼마나 사랑이 많으면 저 사소하고 의미 없는 말조차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거지?


그랬던 두 모자는 내가 눈물을 감추고 고개를 들었을 때, 들리듯 말듯한 크기의 소리로 짧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행이다. 내 눈물을 보지 못했군. 하마터면 창피할 뻔했네.



- 라볶이 어때?

- 아... 라볶이는 좀...

- 그럼 뭐 먹을까?



그러면서 핸드폰을 내밀어 아이에게 보여준다.



- 이거 어때? 맛있어 보이는데.

- 좋아요.



젠장, 또 밥 얘기군.

쳇, 밥은 역시 따뜻해.

그래, 맛있는 거 먹어라. 맛있는 거.

그게 다 아이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영혼이 될 것이다.

물론, 당신에게도.





위로를 받으려고도 위로를 하려고도 쓴 글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위로를 받고 또 위로를 하게 되었다.

위로를 하는 과정은 생각해 보면 단순하지만 위로가 담긴 말 한마디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위로를 받음에도 위로를 건넴에도 자존감과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위로는 공감, 즉 같은 감정을 느끼고 공유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같은 경험이 없더라도 같은 감정을 나눌 수는 있다. 결이 같은 사람이면 된다. 결이 같은 사람.

세상에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이 있다는 건, 그걸 내가 알고 있다는 건, 참 든든한 일이다.

결국 누구에겐가는 이해받을 수 있을 테니.


언젠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며 하루를 살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담백한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안부를 전하는 하루, 혹은 글을 씀으로 스스로에게 안부를 전하는 하루가 되셨음 한다고 글을 남겼다.


같은 날 그는 글을 썼다.

그 글에서 그는 타인을 위한 안부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을 챙기는 하루를 시도하려고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주변의 사람들에게 이쁜 병에 담긴 사탕 하나하나를 주면서 감사를 전하려 한다고 했다.


나의 짧은 위로와 안부가 그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었던 것일까?

어쨌든 그는 사탕을 고르는 그 하루의 짧은 순간만이라도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을까?

내가 건넨 말이 그의 하루에 또 다른 감사와 안부를 낳은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날 글을 씀으로 본인 스스로에게도 안부를 전하게 되지는 않았을까?


위로에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

아주아주 꼭꼭 잘 눌러 담아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그에게로 가 온전하고 투명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로 온 그 모든 온기의 말들에 깊고 짙은 감사를 보낸다.






ps 1. 

아이는 두 시간 뒤, 가슴팍에 빨간 양념을 묻히고 나타나 다시 열심히 '중1 수학'을 풀었다.

역시 라볶이를 먹었던 걸까? 아... 물어볼 수도 없고, 참...


ps 2.

다시 한 시간 뒤, 아이는 가방을 싸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면서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맨 손으로 수 없이 쓸었다.

혹시나 지우개 가루 한 톨이 남았을까 쓸고 또 쓸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앉았던 자리와 엄마가 앉았던 자리의 의자를 '들어' 밀어 넣으며 1 데시벨의 소리도 남기지 않고 떠나갔다.

(엄마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이미 짐을 들고 먼저 사라진 뒤였다.)

역시... 기특한 녀석이군. 영특한 건가?


ps 3.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댓글을 주신 분을 탓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그걸 받아들이는 제 마음이 많이 모자라고 부족했다는 뜻입니다. 아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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