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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IN May 03. 2023

저들은 어느 세계에서 만난 돌일까

with < Lee Ufan / 이우환 >



광장시장 내 순희네 빈대떡에서 빈대떡과 고기완자 그리고 장수 막걸리 한 병을 시키고 앉아 있을 때였다. 좁은 실내에 다닥다닥 사람들이 붙어 앉았다. 이인용 테이블 두 개를 딱 붙여 왼쪽 두 자리는 나와 그가 쓰고 오른쪽 옆 자리는 중년의 부부로 유추되는 커플이 앉았다. 넌지시 넘겨다 본 그들의 테이블엔 육회와 빈대떡, 소주와 막걸리가 각각 한 병씩 놓여있었다. 남자는 막걸리를 마시고 여자는 소주를 마셨다. 각자의 취향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얼굴이 제법 발갛게 달아올랐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누던 그들은 마지막 잔을 비우고 편안한 몸짓으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오래된 부부의 여유가 느껴진다.


펄펄 끓는 기름에 바싹하게 튀겨낸 빈대떡과 고기완자가 나오고 이윽고 병 표면에 물기가 이슬처럼 맺힌 막걸리도 나왔다. 한 잔을 따라 야금야금 마시는데 부부가 가고 빈 테이블에 젊은 남녀가 들어와 앉았다. 무얼 시킬지 한참을 고민하는 모양새다. 남자가 여자에게 묻고 여자의 고민이 제법 길어지고 남자는 눈을 반짝이며 듣고 테이블 옆에서는 빈대떡 집 직원 분이 짝다리를 하고 서서 기다리신다. 그 기다림에도 여자를 향한 남자의 배려와 인내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한 쌍이다.


왼쪽 옆에 또 다른 이인용 테이블이 비었다.

하늘거리는 긴 스커트를 입은 싱그러운 여인과 무심하게 청자켓을 걸친 거친 느낌의 남자가 들어왔다.

빈대떡과 고기완자를 시키고 술을 물어보는 직원에게 자신들은 술을 먹지 못한다며 잔에 가득 물을 따라 벌컥벌컥 마신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고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없다. 일종의 핫플 도장 깨기를 실천 중인 의무감이 느껴진다.

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듯, 어쩐지 뭔가 맞지 않는 옷을 두르고 있는 느낌.

물론 이것은 백 퍼센트 나의 편견일 수 있고, 잘못된 느낌일 수도 있다. 내가 저들의 사정을 다 알지 못하니.


아. 참고로 내가 오른쪽, 왼쪽의 이야기를 몰래 훔쳐 들은 것이 아니다. 식당 내부가 워낙에 작고 테이블이 다닥다닥이라 그냥 가만히 있어도 들리는 것이었다.


야금야금 마시던 막걸리를 한 잔 비우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어느 세계에서 만난 돌일까.

각자 어느 세계를 살다 굴러 내려와 부딪히고, 많고 많은 돌들 중에 다른 돌이 아닌 바로 내 앞에 앉은 '너'라는 돌을 만났을까.

각자의 돌로 살다 각자의 쇠사슬이 포개지고 그 돌은 키스를 나누고 서로의 세계를 일정 부분 공유하게 되고... 그 공유를 허락하고 받아들이고...

짚신도 제 짝이 있다고 하던데, 그 짝은 어떻게 만나게 되는 것일까?

짝은 정말로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일까?



< Relatum - The Kiss / Lee Ufan / 2023 >




이제 우리는 망령된 ‘인간’을 넘어서
‘개체로서의 나’와
외부와의 관계적인 존재로 재생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만남이 중요한 것이지요.

나의 작품은 지극히 단순하지만 독특한 신체성을 띠고 있으며,
대상 그 자체도 아니고 정보 그 자체도 아닌,
이쪽과 저쪽이 보이게끔 열린 문, 즉 매개항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타자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장소가 작품이고
이것은 새로운 리얼리티의 제시입니다.


< 작가 이우환 / Lee Ufan >






'개체로서의 나''외부와의 관계적인 존재'



전시회를 다녀온 직후여서 그랬을까.

저들의 관계보다는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 그들이 가지는 세계성, 각자성, 그리고 운명, 인연.

뭐 이런 것들에 대한 근원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저들은 대체 어느 세계에서 살다, 어느 세계에서 운명처럼 만나, 관계를 맺고 키스는 나눈 돌들일까.


내 짝이어서 '나'는 '너'를 만나게 된 것일까?

'내'가 '너'를 만나지 않고 내려오던 길에 삐끗하여 다른 돌과 부딪혔다면 그렇다면 나는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었을까? 혹은 그 삐끗함 마저도 운명인 것일까?



< Relatum - Dialogue / Lee Ufan / 2021, 2023 >



규정지을 수 있는 '관계' 대신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가 유동적인 관계에 놓이도록.



이우환의 Dialogue 작품을 보면 어느 정도 거리에 떨어져서 자신의 세계를 지키며 그 세계를 일정 부분만 공유 한단 말이지. 전부를 포개지 않아. 그게 관계항이고 그게 대화라는 건데...


빈대떡을 젓가락으로 잘라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저 돌들은 키스를 나눈 돌들일까? 아니면 키스를 나누기 전의 돌들일까? 관계? 관계항?

그 각자의 돌들은 자신의 세계를 지키며 대화를 나누고 관계를 이어가고 있을까?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관계에서도 조금 더 주체적이고 개별적일 필요가 있는 거 아닐까?


생각 지옥에 빠져서 생각을 먹고 먹다 보니 그만 막걸리 한 병을 채 비우기도 전에 배가 불러졌다.

느린 젓가락질로 중얼거리는 나를 보고 마주 앉은 그가 말한다.


"그만 가자, S돌!"

(참고로 S는 내 성씨)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잠이 쏟아졌다. 

돌들이 산 꼭대기에서 우르르 굴러 내려오는 꿈을 꾸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돌들에 맞았으면 나는 어찌 되는 거지?







[ 이우환의 개인전 _ Lee Ufan ]


국제 갤러리는 이우환의 198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선보인다.

그의 조각들은 그가 1956년 일본으로 이주해, 전위적인 미술운동인 모노하를 주도하기 시작했던 1968년, 첫 제작 이후 오늘날까지 꾸준히 작업을 이어 온 '관계항(Relatum)' 연작의 연장선에 있다.

 

국제 갤러리는 '관계항(Relatum)'을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

"규정지을 수 있는 '관계' 대신 '관계를 맺고 있는 주체'를 의미하는 작품의 개별 요소들이

끊임없이 맥락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관계에 놓이도록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깔려 있다"

라고 설명했다.


www.kukjegalle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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