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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과여름 Jan 27. 2023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도록

<아픔이 길이 되려면>을 읽고

내 아이가 돌을 지났을 무렵, 도리스 레싱의 『다섯째 아이』와 오찬호의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을 읽었는데 관계없어 보이는 두 책을 읽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집에 태어난 다섯째 아이인 ‘벤’이 가져다준 뜻밖의 불행과,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을 하며 맞닥뜨리게 될 장벽에서 공포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유전학적으로 부모에게서 태어날 자녀의 형질은 선택이 불가능한, 그러니까 일방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속성을 지닌다. 나와 내 아이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세상 또한 그 속성이 변하지 않고 우리는 이 체제를 벗어나 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앞날이 암담하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는 어떤 유전 형질을 갖고 태어났는지 모르며(어떠한 특성이 언제 발현될지도 모르고), 자본주의 체제는 각자도생의 세상이라 생각했으므로. 그래서 나는 임신 소식을 알려주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너 임신 중에 이 책 두 권은 절대 읽지 마! 정신건강에 해로워!”

  김승섭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출간 뒤 몇 년 동안 지인들이 입을 모아 추천했었으나 선뜻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다. 제목에서 저항과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컵라면을 볼 때 구의역에서 목숨을 잃은 청년이 떠오르고, 지게차가 지나가면 사고로 세상을 등진 동생의 친구가 생각나고, 명주실을 내 아이 백일상에 올리다가 세월호에서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떠올라 울컥하는데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아픔을 다시 들여다보라고? 그 아픔이 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라고? 무언의 강요와 압박감이 나를 누르는 듯해 책을 펼쳐 들기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읽을 수 있었던 건 여전히 이 책에 별 네 개 이상을 주는 책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다섯 살이 된 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식이 놀이터 죽순이로 지내면 많은 아이를 보게 된다. 비슷한 또래, 아이의 언니 오빠뻘 되는 어린이들, 학원 차를 기다리며 잠깐 놀이하는 초등학생들. 세상의 아이들은 귀하고, 내 아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모두 저마다의 귀한 보물이란 걸 이제 머리로 아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며 난 좀 더 너그러워지고 강해지고 싶었다.

  저자 김승섭은 사회의 기득권을 가진 사람으로 살 수 있었으나, 명예와 부를 거머쥘 수 있는 의사라는 전문직으로부터 벗어난 길을 걷고 있다.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걸 넘어서 더 큰 사회 구조로부터 발생하는 질병을 분석하고, 더 건강한 사회로 만드는 씨앗이 되기 위해 보건의학 전문가이자 사회역학자의 길을 걷는 사람이다. 질병의 원인을 이해하는 역학자가 되고 싶었던 저자는 사회적 약자의 건강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다고 느끼던 중, 미국의 학자에게 들은 말 “데이터가 없다면, 역학자는 링 위에 올라갈 수 없다. 그러나 역학자가 적절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다면 싸움이 진행되는 링 위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p109)”을 지침으로 삼아 연구를 시작한다. 저자의 연구는 편안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과 적절한 비유, 과학적 합리성에 근거한 데이터 분석과 결합해 진정성과 울림을 안겨주는 한 권의 책으로 탄생했다. 나는 이 책을 두 번 읽으며 내 불안함의 근원을 바라보는 동시에 부끄러움을 만났다.

 p22. 사회적 폭력으로 인해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경험을 말하지 못합니다. 그 상처를 이해하는 일은 아프면서 동시에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나 우리 몸은 스스로 말하지 못하는 때로는 인지하지 못하는 그 상처까지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몸은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비늘에 바다가 스미는 것처럼 인간의 몸에는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새겨집니다.

  저자는 우리 몸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는다고 말했다. 나는 청소년기에 IMF라는 재난을 맞이해, 급격한 가정경제의 변동을 경험하고 실직자가 된 아버지의 한숨을 들으며 자랐다. 내 희망진로 1순위는 고용불안에 내몰리지 않는 공무원이었고, 자립한 내가 스스로의 밥그릇을 안전하게 품고 사는 게 인생의 중요한 과업이 되었다. 저자의 지적대로 우리나라 국민들은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쌍용차와 같은 대기업의 회계조작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더라도 생계를 보장받을 수 없고 재취업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얻기 어렵다. 위험한 노동은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담당하고, 질병을 일으키는 물질을 내뿜는 기계는 더욱 열악한 환경의 나라로 옮겨간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명목으로 화학약품의 규제가 완화되며 불특정 다수가 치명적인 질병에 노출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개인의 질병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동떨어질 수 없으며, 저자는 개인의 몸에 새겨진 아픔의 흔적과 사회 구조적인 문제와의 연관성을 직시해야 하고,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규제에서 개악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이 책을 읽으며 내가 가진 편견과 편협한 시각으로 ‘원인의 원인’을 바라보지 못한 과오를 깨닫게 되어 부끄러웠다. 게임중독에 빠졌던 남동생, 하루 두 갑의 담배를 피우던 아버지를 한심하게 여겼던 지난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개인의 의지가 약해서 중독에 이르렀다는 내 판단은 가난과 차별, 질병과 폭력의 원인 또한 개인에게 있을 뿐 개인이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을 바라보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면 돌보아줄 어른 하나 없이 방치되다시피 했던 환경, 하청업체 직원으로서 공사장에서 동료들의 부상과 죽음을 목격하면서 일해야 했던 근로 환경에 대해 나는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인지하게 되었고, 그렇게 돌봄이 부재한 환경과 위험한 작업환경이 개인의 정신과 신체에 질병을 가져다준 원인으로 작동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이 같은 상처의 원인이 개인을 넘어서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밝히는 동시에 상처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끔 한다.

 p176. 고통은 근본적으로 개인적인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나눈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사회구조적 폭력에서 기인했을 때, 공동체는 그 고통의 원인을 해부하고 사회적 고통을 사회적으로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고통은 개인적인 것이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건 어려운 과정이지만, 이 책은 역설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과 다른 사람의 상처를 본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희망이 피어날 수 있음을 밝힌다. 제인 엘리엇의 실험에서 상처받은 ‘소수자’가 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특권을 부여받았을 때도 약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태도를 보인 것,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보고 들으며 그 같은 일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재난의 기록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것, 연구자들이 비과학적 혐오에 대한 부조리를 일깨우고 위험사회에서 함께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 거미줄이 아닌 거미를 보도록 하는 사회역학자의 조사와 기록으로부터 우리는 앞으로 닥칠 재난을 방지하거나 줄여나갈 가능성을 본다.

  유전형질이 아이의 성장을 모두 결정한다고 단정하거나 사회체제를 바꿀 수 없으니 각자도생해야 한다는 체념은 양육환경과 사회 구성원 간 연대의 힘을 간과하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바꿀 수 있는 환경은 최선을 다해 바꿔보도록 포기하지 말자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당장 병상 수를 늘리는 게 아닌, 병원에 오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도록 문제의 근원을 해결해 보자는 것, 사회적 약자의 수를 줄이기 위해 우리 각자가 가진 작은 힘들을 모으자는 것, 그 작은 힘들이 모여 큰 위력을 얻을 가능성을 믿어보자는 것. 그 중요성에 대해 작가가 말하고자 한 게 아닐까. 저자는 20대에 ‘꽃이 필 것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이라는 기대 없이 어떻게 계속 씨앗을 뿌릴 수 있을까’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다다른 저자의 각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사회변화에 일조하자는 것이었다. 은행나무 씨앗 한 알이 아름드리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는 데 3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시간이 더디더라도 건강한 사회를 위해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발아해 열매를 맺도록 돌보아주는 사람들이 늘어나길 바란다. 나 또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약자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이자, 사회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개선을 위해 애쓰는 시민이 되어보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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