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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에서 본 후쿠오카, 회전목마처럼 펼쳐지는 풍경들

내면의 풍경을 마주하다.

by 정호재
후쿠오카 타워 전망대에서 바라 본 도심 풍경.


후쿠오카 타워에 도착해… 입장권을 끊고… 직원에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탔다. 총 234m 높이라고 하는데 정말 전속력으로 올라갔다. 점점 도심 풍경이 멀어지면서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63 빌딩이 249m라고 하니까, 그보다 조금 작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정말 멀리 올라왔구나 싶었다.


전망대를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았다. 모모치 해변과 후쿠오카 도심의 차들, 정신없이 서 있는 건물들까지, 모든 풍경이 회전목마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햇빛과 강 빌딩이 한눈에 들어왔음에도, 그것들은 어느 도시의 풍경처럼 무미건조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후쿠오카에 대해 내가 아는 게 딱히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 온 지 이틀째였고, P답게 어떤 계획도 없이 왔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주간의 여행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후쿠오카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될 줄은…


세이난 가쿠인 대학

엔도 슈사쿠를 좋아했기에 ‘일본-기독교’라는 코드에 관심이 있었다. 그에 의하면, 일본은 범신론적 풍토가 있어서 유일신을 믿는 종교가 안착하기 어렵다. 엔도 슈사쿠는 일본인의 ‘체형’에 맞는, 서양식 양복을 일본식으로 개량한 것과 같은 기독교를 고민했다. 이 고민을 바탕으로 <침묵>, <깊은 강> 등 여러 소설들을 펴냈다. 소설을 읽으며 일본인에게 기독교라는 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궁금증이 들었다.


세이난 가쿠인 대학이 1961년 침례교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기독교계 사립학교라는 사실만 알고 무작정 찾아갔다. 학교 규모는 장난 아니게 컸다. 우리나라 제일 큰 대학이 서울대학교라고 하는데, 내 생각에 땅 크기로는 서울대에 비비지 못하지만, 전체적인 규모랄까, 그런 것들은 서울대학교보다 웅장한 맛이 있었다. 그중에 ‘기독교 박물관’이 제일 좋았다.

처음 갔을 때는 덧니가 있는 선량하게 생긴 대학생이 나를 맞아주었으나, 아쉽게도 박물관 운영을 안 한다고 했다. 며칠 뒤, 다시 발걸음을 한 박물관은 박물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고, 볼 게 많지 않았다. 일본에서 기독교가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간략하게 알 수 있었달까?


후쿠오카 미술관

미술을 보는 걸 좋아한다. 여행지에서 가는 미술관은? 훨씬 더 좋다. 오전에 소설 작업을 하고, 여러 미술관을 전전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꼽자면 단연코 ‘후쿠오카 미술관’이다.


후쿠오카 미술관은 오호리 공원 내부에 위치했으며, 1979년 개관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이 건물이 50년 정도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세련되었다. 아마 내부 공사를 했겠지만, 그럼에도 건물 내부는 근사하고 멋졌다.


내가 갔을 때는, 세 개의 전시를 하고 있었다. 너무 많은 걸 짧은 시간 안에 봐서 그런지, 뭘 봤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 기억나는 건, 부드러운 모래밭에 설치된 대형 컴퍼스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원을 그리는 설치물이 떠오른다. 인간이 그리는 어떤 이상적인 시간관을 조형으로 표현한 듯해서 신기해하며 한참을 바라봤었다.


전시들을 보고 2층의 테라스로 나오니 오호리 공원의 인공 호수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닿아 조각처럼 깨져서 그 위에 빛의 산란처럼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어냈다. 구름이 몇 점 없는 하늘 아래 러너들이 관광객들을 지나치며 뛰어다녔고, 관광객들은 뭉쳐서 때로는 흩어져서 공원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인상적인 풍경을 보며 여행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미술관은 몇몇 특별전을 제외하면 입장료가 비싸지 않다. 200엔 정도의 저렴한 입장료로 이토록 풍요로운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식당

여기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야, 이름을 의식하지 않은 채로 밥을 먹고 나와서 이름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여행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스타벅스에서 작업을 마친 뒤, 오후 2시가 넘어 배가 고파서 찾아간 곳이었다. 이곳을 찾아간 이유는… 가정식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구글 맵스에 평점이 좋은 식당을 발견했고, 주택가의 골목길을 삼십 분 정도 가로지르자 일어로 된 식당이 하나 나왔다. 메뉴판에는 영어가 없었고, 전부 일본어로 되어 있어서 파파고를 돌렸다. 점심 특선을 시키자 연근, 가지, 고구마 등 채소튀김이 고봉밥과 함께 나왔는데, 정말 게눈 감추듯 먹었던 게 기억난다. 신발 끈도 튀기면 맛있다는 얘기가 있지 않나… 당연히 채소도 튀기니까 맛있었겠지…라고 한다면, 여기는 얘기가 다르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갓 땅을 뚫고 나온 채소를 그대로 뽑은 다음 바로 튀긴 맛이었다. 그 정도로 입에서 활어처럼 뛰노는 싱싱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 구글 맵스에 기록을 보면 알 수 있긴 할 텐데… 모르겠다. 왠지 이 식당만큼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식당’으로 남기고 싶은 기분이 든다. 이름이 남지 않음으로써 다른 것들이 더 기억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 모르겠다.


혼자만 다니지 않았다. 일주일은 혼자, 남은 일주일은 여자친구랑 함께 여행했다. 돌이켜보면, 혼자서 돌아다닌 곳이 더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었다. 혼자서 마주했던 장소들을 통해 내 내면의 풍경이-그것을 언어로 명확히 정의하기 어렵지만- 반응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여행이란 어떤 면에서 내면의 풍경과 감응하는 곳을 찾아다니는 여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고, 삶 자체가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이번 후쿠오카 여행이 내게 준 건 바로 그러한 깨달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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