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평범한 나
지난 이 년은 내 삶에서 격변의 시간이었다. 대학원 석사 과정 수료했고, 고민 끝에 석사 논문을 포기했다.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문예지에 등단해서 소설가가 되었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예고도 경고도 없이 불어오는 태풍처럼, 많은 일들이 들이닥쳤다.
닥쳐온 변화 앞에서 그때그때 감정적으로 반응하기에 바빴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두려움도, 불안도, 어떤 모종의 희망조차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내 반응이었다. 그것들은 때론 뒤죽박죽 정리된 수납장처럼 복잡하게 느껴졌다.
후쿠오카로 떠난 것은 그때였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경비가 저렴한 나라를 고르다가 가까운 나라 일본을 떠올렸고, 그중에서 부산과 인접한 후쿠오카를 가기로 했다. 여행을 가게 된 큰 이유는 ‘한국’을 잠시 떠나보는 것이었다. '나'를 식물로 비유한다면, 전혀 다른 문화와 환경에 심어보고 싶었다. 그 속에서 내가 온전히 자라날지 어떨지 관찰해보고 싶었다.
후쿠오카에서 이 주 동안 한국에서는 좀처럼 느끼기 힘든 편안함을 느꼈다. 오죽하면 여자친구가 여기에 거주하는 사람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큰 불편함을 겪지 않았다. 번역기 어플과 약간의 영어와 손짓과 눈빛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철저히 이방인으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며칠이 흐르자 일본에 속한 구성원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언어를 쓰는 일본인들이 낯설게 느껴졌지만, 또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척이나 즐겁고 편안했던 나날로 기억한다. 그렇게 이 주일 동안 후쿠오카에서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나는 이 '편안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고, 편안함의 근원이 무엇인지 파헤쳐 보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한국에서 어땠을까, 를 떠올렸다.
고등학생 때는 좋은 학교로, 대학교 때는 취업으로, 취업을 하고서는 그곳에서 버티기 위해 끊임없이 몰아붙여졌다. 무언가를 읽거나 보았다. 공부하고, 읽거나 보지 않을 때조차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쉬는 날조차 이렇게 여유롭게 살아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떻게 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한국의 경쟁적 분위기가 문제인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자유로울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한국행 비행기는 예고 없이 출발할 예정이었고, 나는 항공편을 취소하지 않았다.
그대로 비행기는 이륙했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인천 공항에 내렸을 때, 전처럼 마음이 쫓기듯 괴롭지 않았다. 마치 카스텔라 빵 같은 부드러운 편안함이 내 안에 안착하는 기분이 들었다. 전에는 길가에 다니는 사람들이 뭔가에 쫓기듯 보였고, 분노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지독한 슬픔에 몸부림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제 지나가는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다. 내 안의 감정이 정리되자 그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쫓기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슬퍼하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들 속에 나도 그들과 비슷하게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동안 나는 ‘나’에만 집중했다. 혼란스러운 감정 앞에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내 감정의 주관성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을 덮어버렸다. 그만큼 감정이란 나에게 강력했다. 슬퍼지면 모든 게 슬퍼 보일 정도로. 하지만 그것들은, 결국 사람들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을 막았던 것 같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조금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나’ 일뿐이고, 그들 또한 그저 ‘그들’뿐이라는 걸.
지금도 나는 때때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빠진다. 끊임없이 요동치는 배에 타고 있는 것과 같다. 파도가 세질 때가 있고, 약해질 때도 있지만, 파도는 친다. 일종의 순리 같은 것이다.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태어나는 것처럼.
그럴 때마다 편안함, 에 이르렀던 후쿠오카에서의 순간들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걷고, 나도 그 속에 걷는다. 그들과 나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그때 느꼈던 편안함을 다시 단단한 돛대처럼 붙잡는다. 그러면 조금 더 나아진다. 그들 속에 있는 이토록 평범한 나를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