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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도 슈사쿠 문학관, 드디어 가보다

나가사키를 가다.

by 정호재
엔도 슈사쿠(1923년 3월 27일~1996년 9월 29일). <침묵>으로 유명한 소설가. 인간의 나약함과 신을 향한 고뇌를 탐구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숙소에서 나왔다.

텐진 버스터미널에서 나가사키 버스 정류장까지는 세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었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나가사키행 버스에 탈 때까지 빗소리가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후 1시가 넘어 나가사키 평화 공원에 도착했다. 버스를 갈아타야 했는데, 정류장 위치가 헷갈려서 헤매다가 마을버스 1번을 탈 수 있었다. 한참을 산을 넘고 좌우로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올라가자 기사가 어떤 항구에서 버스를 멈춰 세웠다. 친절한 인상의 기사가 일본어로 무슨 얘기인가를 했다.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라는 말인 듯했다. 조금 더 명확히 듣고 싶어서 파파고를 킨 휴대폰을 그의 입 근처에 갖다 댔다.


기사가 흥분해서 다시 말하기 시작하는데, 번역기에는 ‘브라운 씨의 목구멍’이라는 황당한 글자가 보였다. 엥, 이게 무슨 말이지, 싶었다. 그는 우리와 의사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는지 친절하게 서투른 영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인즉슨, 문학관까지 가는 버스가 곧 올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는 거였다. 잠시 거센 바람을 맞으며 항구를 구경하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간판을 보며 기다렸다.


우리는 기사가 말했던 ‘브라운 씨의 목구멍’이라는 말에 한참을 웃으며 즐겁게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다. 옅은 검은빛의 항구를 지나 우거진 숲에 당도했고, 그 너머로 나가사키 소토메의 쓸쓸한 풍경이 펼쳐졌다. 하늘도 바다도 마을의 집들도 저마다 슬픔을 머금은 듯 검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렇게 조금 더 나아가자 엔도 슈사쿠 문학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10시쯤 숙소에서 나와 3시 반쯤에 도착했으니 다섯 시간 이상이 걸린 긴 여정이어서 지쳐 있었지만, 입장 마감이 코앞이라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우리는 문학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일본은 대표하는 작가답게 본관과 별관 모두 관리가 잘 되어 있었다. 본관에는 엔도 슈사쿠가 쓴 방대한 책들과 연표가 정리되어 있었고, 곳곳에 유쾌하게 웃고 있는 엔도 슈사쿠의 사진들도 보였다. 별관에는 방문객들이 쉴 수 있는 라운지룸도 있었다. 넓은 창가에 소토메의 쓸쓸한 바다가 펼쳐지는 곳이었다.


우리는 네 시 반 전에 입장 마감에 임박해 도착했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별관에서 나와 문학관 옆에 붙은 작은 규모의 마트에서 도시락을 사 먹었다. 평범한 초밥 도시락이었는데 달걀 초밥이 정말 달고 맛있었다. 밥을 먹고 일어나는데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듯했다. 다음 행선지는 ‘침묵의 비’였다. 비도 내리는 데다 바람도 세차게 불어서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가보기로 했다.


엔도 슈사쿠 문학관 근처에 있는 침묵의 비.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 푸릅니다.’ 라고 쓰여 있다.


‘인간은 이렇게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 푸릅니다.’


이 문구를 볼 때마다 마음의 뿌리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인간의 비극과 자연의 광대함과 그 속에 침묵하는 듯한 신의 언어가 모두 담겨 있는 그 문장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삼십 분이 넘게 걸어 ‘침묵의 비’에 도착했다. 길을 걸을 때마다 다리 밑으로 펼쳐지는 마을은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것처럼 고요했다. 가끔 무심하게 도로를 지나치는 마을버스와 몇 대의 차들만 보일 뿐이었다.


침묵의 비 앞에는 누가 밟고 뭉갠 흔적처럼 글씨들이 적혀 있었다. 그 앞에 나가사키의 바다가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바다가 푸르다는 엔도 슈사쿠의 말과 다르게, 나가사키의 바다는 비를 잔뜩 머금은 듯 검은빛이었고, 파도가 별로 안 치는데도 흐느끼듯 떨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조금 시간을 보낸 뒤에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우리는 고된 여정으로 녹초가 되어 있었다.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도착한 시점에 설상가상으로 휴대폰 배터리까지 방전되어 버렸다. 일단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마침 근처에 중식집이 있었고, 그곳에서 하얀 짬뽕을 먹었다. 나가사키 짬뽕이라 해서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짜서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무척이나 배가 고팠기 때문에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이 난다.


식당에서 나와 정류장을 찾기 시작했다. 배터리가 방전되어서 정확한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내린 곳에서 반대쪽으로 걸어가자 정류장이 나왔다. 하지만 정확히 텐진까지 가는 버스인지 알 수 없어서 주변에 물어봤다. 다행히 어떤 분이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무사히 탑승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눈을 감는데, 아직 떠나지 않은 나가사키의 바다가 생생하게 펼쳐졌다. 그 검은빛 바다에서, 엔도 슈사쿠가 소설에서 포착하고자 했던 인간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그 검은빛의 파도가, 흐느끼듯 떨리는 바다가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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