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민낯을 들여다보다.
오전에 소설을 쓰고, 나카스로 향했다.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걸어갔다. 처음에는 리버크루즈를 탈까 하다가 야경이 펼쳐질 때 타야 한다는 말이 있었기에 그 계획을 잠시 미루기로 했다. 우선 평소 가보고 싶었던 넷카페로 향했다.
도쿄 여행 때 가보긴 했지만, 다시 와보니 새로웠다. 두 다리를 뻗고 눕기도 어려울 정도로 협소했지만, 대신 무료 카레와 밥 그리고 무료 드링크가 제공되는 여러 모로 특이한 공간이었다. 메이플랜드를 하려고 하다가 한국 서버가 접속이 되지 않아, 여행 유튜버 영상을 보며 시간을 때웠다.
한 시간 있다가 나왔는데, 반바지 차림의 남자가 문을 빼꼼, 열고 복도를 주시하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이외에도 잠옷 차림의 여자가 카운터에서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편한 옷차림으로 봤을 때, 그들은 넷카페 난민처럼 보였다. 일본 사회에서 넷카페 난민은 골칫덩어리라고 한다. 취약계층이기는 하나 정식으로 주거지 등록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사각지대로 자리 잡고 있다는데, 도쿄에만 수천 명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저들을 사회적 골칫덩어리로 보면 볼수록 저들은 발을 뻗기 힘들 정도로 작은 방 안에서 더더욱 안 나오지 않을까 싶다. 저렇게 살아가는 방식도 삶의 한 방식이라고 인정하면 어떨까? 저들에게 필요한 건 주거가 아니라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기를 보호해 줄 제도일 지도 모른다.
넷카페에서 나와 나카스 포장마차 거리로 향했다. 한껏 꾸민 사람들이 포장마차 앞에서 웨이팅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포장마차 주인들은 대개 호방한 미소를 띠우며 사람들에게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포장마차가 작고 자리마다 간격이 좁아서 붙어 앉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나 같은 극 내향인에게는 모르는 사람과 10cm 내로 붙어 있는 모습이 여간 불편해 보였다.
동시에 저들 사이에 내가 확실히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종종 관찰자로서 걷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은 걸어 다니고, 나는 그저 그들을 관찰하는 존재가 된 느낌. 하지만 나는 관찰하는 주체이지만, 관찰당하는 객체이기도 하다. 최근에 와서는 이런 관찰이 소설가에게 필요한 덕목이지만, 반드시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관찰하는 사람은 섞일 수 없다. 관찰하는 사람에게는 늘 거리가 있다.
나카스 강 포장마차 거리를 왕복으로 걷고 찾아간 곳은 빠칭코. 전부터 너무나 가보고 싶었다. 도스토옙스키의 <도박꾼>과 후쿠모토 노부유키의 <도박 묵시록 카이지>를 봐서 그런지, 이런 도박장의 풍경에 일종의 환상이 있었다. 사람들의 생생한 욕망과 민낯을 볼 수 있는 곳이랄까. 소설가에게 이만한 장소는 없다고 생각했다.
빠칭코에 들어가자마자 이런 환상은 무너져 내렸다. 내부는 크고 높고 기계들과 사람들도 많아서 정신이 없었다. 바닥은 이성급 호텔처럼 저렴해 보이는 카펫이 깔려 있었고, 사람들은 휴대폰을 하거나 딴짓을 하는 등 화면을 대충대충 보며 슬롯머신의 버튼을 무심하게 누르고 있었다. 아무도 제대로 집중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들은 그저 무료해 보였고, 그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끝도 없이 돌아가는 숫자들의 향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떤 자극에도 별다른 주의를 끌지 않는 그들의 얼굴을 보자 도박장에 대한 허망한 환상 같은 게 연기처럼 사라졌다. 내 예상과 다르게 그들은 도박장에서도 얼굴을 감추고 있었다. 더는 있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곳을 황급히 나왔다.
아까부터 내리는 비가 나카스의 밤거리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카스는 매우 화려했다. 내 경우도 그 점에 매료되어서 직접 찾아온 것이었고. 그러나 막상 민낯으로 마주한 나카스의 얼굴은 내가 기대한 그것과는 달랐다. 관찰자로 머물렀기 때문일까? 신주쿠 가부키쵸를 구경했을 때도 느꼈지만, 나는 이런 환락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있으면서도, 막상 그 민낯을 보면 참을 수 없는 거리감 같은 걸 느낀다. 그건 내가 일상에서 숨기고 있던 어떤 욕망을 자극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자제시킨다.
버스를 탔다. 일본인들은 특유의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거나 앉아 있었다. 저들 중에 오늘 내가 마주친 사람이 있었을까? 창밖을 바라보는데 화려한 나카스의 밤거리가 연기처럼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