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기억에 남는 일본 편의점 음식은 무엇인가요.
삶이 그렇듯이, 여행도 예상과 다르게 흘러간다. 이전 화에도 말했듯이, 이 주 동안의 여행 내내 달리기로 했던 계획이 허무하게 끝났다. 달리기 말고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은 많았다. 폐장된 마리노아 시티를 봤을 때 그랬고… 괜찮은 숙소인 줄 알고 갔는데 바퀴벌레가 출몰한다는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된 때도 있었고… 어떻게 보면 여행 자체가 전부 ‘예측하지 않음’으로 이뤄진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 예측하지 않은 일의 반복에도 작은 위안이 있었다. 편의점이었다. 배고플 때도, 힘들 때도, 비가 올 때도 일본에서는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를 편의점과 함께했다. 시원한 공기가 맴도는 진열대에 빵이나 도시락들이 나란히 놓여있는 걸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일정한 가격에, 일정한 형태를 띤 것들은 어딘지 마음의 불안을 줄여준다.
여행 내내 식당에서 사 먹기는 부담스러울 때가 많다. 그럴 때 점심을 근사한 걸 먹고, 아침과 저녁을 편의점 음식으로 때웠다. 주로 숙소 근처에 세븐일레븐이나 패밀리 마트에 갔는데, 도시락들이 상당히 괜찮은 퀄리티였다. 기억나는 도시락을 꼽자면… 냉우동! 기대 안 하고 먹었는데 생각보다 맛있어서 놀란 기억이 있다.
편의점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디저트류를 꼽는다면, 로손의 모찌롤. 떡처럼 쫀득한 식감이 입안을 감싸는 롤케이크였다. 사실 맛있다기보다는 특이했던 디저트였달까… 한국 케이크류 디저트와는 어딘가 달랐다. 달고 꽤나 느끼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외에 세븐일레븐에서 파는 블루베리 믹스 스무디는 맛있었다. 생과일을 그대로 갈아 넣어서 신선한 맛이 입안에서 펑, 하고 터지는 느낌이었다. 이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의 스무디를 먹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약, 본인이 싸고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다면 마트에서 도시락을 사고, 디저트는 편의점에서 사는 걸 추천한다. 마트 빵은 맛있는 경우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본에 처음 편의점이 등장한 건 1974년이다. 미국 텍사스주의 세븐일레븐 본사와 제휴하여 세븐일레븐 재팬 1호점을 개점했다. 초기 편의점은 간단한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 하지만 1980년대 버블 경제기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뒤바뀐다. 도시의 불빛이 꺼지지 않으면서 24시 편의점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도시락, 주먹밥, 샌드위치 등 음식 퀄리티의 폭이 대폭 증가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빵과 도시락득도… 이러한 역사의 구성물일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우리나라 편의점은 일본에 뒤쳐진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가끔 어딘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빵 종류가 적고… 잘 나가는 상품들 위주로 진열하다 보니 다양한 도시락이나 빵을 볼 수 없어 아쉬울 때가 있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게 있어서 편의점에 가면… 재고가 없는 경우도 많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험자로서 말하자면 폐기가 날 것을 대비해 발주량을 조절하기 때문이겠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아쉬움으로 남는 건 사실이다.
우리나라 편의점 만의 장점도 존재한다. 한국 편의점은 간단히 한 끼를 편의점에서 때우는 경우도 많아서, 테이블이 대부분 구비되어 있다. 또, 1+1, 2+1 등 행사 상품이 정말 많다. 하지만 역시 상품의 다양성에 있어서 아쉬움이 남는다. 경제 규모의 차이인지, 문화에서 기인한 차이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편의점은 우리나라의 얼굴과 닮았다. 잘 나가는 상품들은 건재하게 남지만… 그렇지 못한 상품들은 짧은 시간에 역사 저편으로 사라져 버리는… 효율성을 극단으로 추구하는 한국 사회의 축소판 같은 느낌이다. 요즘 우리나라 편의점도 마트처럼 큰 규모들로 변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이것도 옛말이 될 수도 있겠다.
여담. 일본 미니스톱을 안 가봤는데, 미니스톱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