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우유가 없어서 아쉬웠다.
마리아노 시티에서 허탕을 치고 나미하노유 온천으로 향했다.
삼십 분 정도 걸어서 나미하노유 온천에 도착했다. 로비는 사람들로 꽤 북적거렸다. 조금 기다리자 내 차례가 왔다. 중학생 이상은 1,000엔이고, 타월까지 빌리면 1500엔, 얇은 수건처럼 생긴 오보리 타월은 별도구매로 350엔이었다. 입장료를 내고 오보로 타월을 산 뒤 탈의실을 거쳐 온천탕으로 향했다.
탕 내부에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나무 침대에 누워 있는 백인도 보였고, 주변 사람들이 신기한 듯 힐끗, 바라보는 아랍계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이 익숙해서 그런지 딱히 나를 주의 깊게 바라보거나 하지 않았다. 실내 탕을 즐기다 야외 노천탕으로 나갔다. 탁, 하고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나무로 울타리를 쳐놓은 건너편에 행인들이 드문드문 지나다니는 게 보였다. 노천탕은 생각 이상으로 뜨거웠다. 뼈가 저릿하다고 해야 할까, 기타 줄을 튕기듯이, 뼛속에서 징, 하고 울리는 진동이 느껴졌다.
온천의 역사를 간략하게 짚어보자면, 최초의 상업화된 온천은 로마의 공중목욕탕 ‘테르마이’다. 사교, 휴식, 치료의 복합 공간이었다고 하는데, 목욕탕 외에도 ‘라코니쿰’이라고 불리는 사우나, 운동 시설, 도서관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동물원도 그렇고, 콜로세움도 그렇고. 로마에는 참 최초가 많은 듯하다. 음… 근데 좋은 쪽으로도 최초가 많지만(법률 시스템, 공화정 등) 안 좋은 쪽으로도(성매매나 콜로세움 같은) 최초인 것도 많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국가가 아닌가 싶다.
이후에 중세 유럽에서는 흑사병 같은 역병과 금욕주의적 문화의 영향으로 목욕 문화가 쇠퇴했다고 한다. 16-17세기 근대 유럽에 들어서자 '치료'와 더불어 '요양'의 역할로 온천이 주목받기 시작했고, 오늘날의 '목욕 문화'가 보편화되었다고 한다. 참… 그러고보면, 우리가 누리는 많은 것들이 서양에서 건너온 것들이구나 싶다.
그렇다면 목욕 후에 우유를 마시는 문화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찾아보니, 19세기말 메이지 유신 때 서양식 대중목욕탕이 보급되면서 생겨난 문화라고 한다. 과연 이쪽에서는 서양보다 동양이 앞서 나가는구나 싶다.
온천을 삼십 분 정도 즐기고 나서는, 자판기에서 병 우유를 뽑아 마셨다. 우유는 냉탕처럼 시원하고 청량했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시원함과 함께 마리노아 시티에서 멈춰버린 관람차를 보며 느꼈던 씁쓸함도 깨끗하게 휩쓸려 내려갔다. 사실 난 우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장이 안 좋아지고부터는, 우유를 멀리한다. 그럼에도 온천 후에 마시는 우유만큼은 참을 수가 없다.
목욕탕을 그리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어렸을 때는 목욕탕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다. 솔직히 좀 부끄러웠다. 사람들의… 벌거벗은 몸이랄까… 당당하게 다니는 모습들이. 천하제일무도대회 같은 느낌이랄까… 성인이 되어서는 살이 많이 빠져서 사람들의 미묘한 이목을 끄는 게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싫고, 목욕을 하고 난 후에 두통처럼 오는 쨍함도 싫다. 하지만 나미하노유 온천은… 목욕에 대한 별로 좋지 않은 인식을 씻어줄 만큼 좋았다. 그날 아주 피곤해서 그런 걸까요?
게산을 마치고 나미하노유 건너편에 버스정류장에서 버스에 탔다. 한국인 커플도 버스에 같이 탔다. 저들도 온천을 즐기다 온 것일까? 버스가 출발하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도 온천물이 남긴 따뜻한 온기는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후쿠오카에 다시 가게 된다면 다른 온천도 한 번 가보고 싶다.
여담. 자판기에 흰 우유와 커피 우유만 있는 게 아쉬웠다. 목욕 후에는 뭐니 뭐니 해도, 바나나 우유인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