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좋아하는 게 있으신가요.
여행 가기 전에 내 야심은 컸다. 21인치 캐리어에 러닝화와 데카트론 트레이닝복 상하의 세트를 두 벌을 넣고 다짐했다. 매일 오전에 글 쓰고, 오후에 달리기를 하고, 여행도 하자고… 맨션의 주인아저씨에게 러닝 공원 위치까지 확인해 놓았다. 하지만 미나미 맨션에 도착해 짐을 풀고, 아저씨가 알려준 히바루 자쿠라 공원을 가보니 실망감이 바람처럼 불어왔다. 아이들이 노는 공터 느낌이랄까… 공원 크기가 생각보다 작았다. 실제로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들도 몇몇 보였다. 그렇게 야심 찬 꿈은 단 하루 만에 산산조각 났다.
물론 다른 공원들도 있긴 했다. 하지만 대부분 공원들이 숙소에서 걸어가기에 먼 거리에 있었다. 러너들이 추천해 준 오호리 공원이 도보로 30분이 넘게 걸리는 데 반해… 히바루 공원은 숙소와 거리가 10분 이내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또, 갔다 와서 씻어야 될 텐데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면 여행을 할 시간이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곳에서 뛰기로 했다. 여행 다음 날부터, 러닝화를 신고, 데카트론 트레이닝복을 입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게 후쿠오카 여행에서의 마지막 달리기인 것도 모른 채……
작심 하루란 말이 있다. 단단히 먹은 마음이 하루를 못 간다는 얘기다. 한때 이것저것 배워보는 시기가 있었다. 클라이밍 학원을 세 달 끊고 한 달도 안 나간 적도 있고… 기타를 친다고 중고로 사놓고 두 번 정도치고 장롱 위에 때려 박은 적도… 수영을 배운다고 한 달 이용권을 끊고 세 번 나간 적도 있었다…
클라이밍, 기타, 수영이 재미없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무지막지하게 재밌던 것도 아니었다. 아… 할만한데? 정도인 게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 아… 할만한데? 를 재미로 알고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끈기 있게 무언가를 해내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진짜 좋아하는 걸 찾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서른 살이 되기까지 그걸 찾지 못하다가 서른 살이 되어 진심으로 좋아하는 걸 찾았다. 소설과 달리기였다. 소설은 대학원 창작 수업 때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고, 달리기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처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다가 이후에 몇 번 달려보니 달릴 때의 기분과 달리고 나서의 기분에 뽕을 느끼면서… 좋아하게 되었다.
아… 달리기를 좋아하신다면서? 여행 가서 하루밖에 안 달린 게 말이 되나?라고 반문하신다면, 할 말이 없지만… 구차한 변명 거리가 하나 있다. 그건… 여행이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오전에 소설을 쓰고 오후에 여행을 하면… 할 일을 했다는 뿌듯함과 함께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소설을 쓰고, 달리기를 하고, 여행까지 챙기는 건 시간상 무리한 일정이었다. 그럼 왜 진작 계획을 무리하게 짠 것인가…라고까지 묻는다면 이제 정말 할 말이 없어진다.
사진에 보시다시피, 그래도 여행(3월 5일부터 18일)에서 돌아온 다음 날 19일부터 21일까지 달리기에 대한 갈증 때문에 연속으로 달린 게 보일 것이다. 다음 주부터 주춤하긴 했지만… 일주일에 5km씩 세 번 정도 달리면, 달리기 좋아하는 거 맞지 않나?
여행을 갔다 온 지 세 달이 흘렀지만, 지금도 계속 달리고 있다. 최근에 규칙적인 생활을 시작하면서 매일 달리는 걸로 습관을 잡고 있다. 달리기를 하면서 불면증, 소화불량 등 만성적인 고질병이 좋아지는 걸 느끼고 있다. 하지만 이건 부수적인 거고, 달리는 거 자체에 나름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작년에 하프 마라톤을 두 번 완주했으니, 올해는 하프 마라톤 한 번에, 기회가 된다면 풀마라톤을 완주하고 싶다.
여담. 좋아하는 걸 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기분 좋은 일인 듯해요. 여러분들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 뭔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