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에는 어떤 스타벅스들이 있을까?
후쿠오카의 스타벅스에는 이주민들이 종종 보였다.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가방에 싸들고 와서… 몇 시간 동안 뻐기고 가는 사람들…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숙소에서 작업을 하기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다. 덕분에 후쿠오카에 있는 여러 스타벅스들을 가볼 수 있었다.
내가 가본 지점은 세 곳이었는데(생각보다 우리나라만큼 스타벅스가 많지 않았다), 오호리 공원점, 롯폰마츠점, 나머지 하나는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후쿠오카 주택가 외곽에 있는 지점이었다.
오호리 공원 점은 한국 사람이 많았다. 일본에 가본 사람들은 공감하겠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같은 한국 사람끼리는 눈치를 챈다. 비슷비슷한 옷차림도 있거니와, 어딘가 여유가 없는 표정과 말투까지. 아 저 사람 한국 사람 같은데,라고 생각하면 어지간하면 맞은 것 같다.
그런 이유로 오호리 공원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가게 규모도 좁고, 한국 사람들도 많고… 내가 생각하는 로컬한 분위기와 좀 달랐달까… 여자친구 말에 의하면, 작업을 오래 하면 가게 규모가 작고 회전율이 빨라서 직원들이 째릿, 하고 눈치를 주었다고.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아메리카노 한 잔 시키고 네 시간 동안 앉아 있는 건 아니니까… 덕분에 여자친구는 라테 한 잔과 베이글을 추가로 먹었다고 한다.
염치가 없고 뻔뻔한 편인 나조차도 오호리 공원점에서 오래 버티는 건 힘들었다.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 있었나? 일단 자리도 별로 없었고 옆에 앉는 사람이 자주 바뀌고 심지어 옆 사람이 한국어로 대화를 했기 때문에 신경 쓰여서 작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일본말은 뭐라고 하는지 대부분 못 알아듣기 때문에 백색소음처럼 귀에 크게 거슬리는 건 없는데, 한국말은 너무 선명하게 들리니까… 자꾸 그들의 대화에 주의를 빼앗겼다.
내가 가장 선호했던 곳은 롯폰마츠점이었다. 여기는 롯폰마츠역 근처에 있는 곳으로, 서점 츠타야 북스와 같은 층을 쓰고 있었다. 덕분에 책 구경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작업도 할 수 있었다. 이곳의 장점은 정말 눈치를 1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아르바이트생이 놀랍도록 친절하다.
기본적으로 카페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친절한 편이지만, 여기 롯폰마츠 점 아르바이트생들은 친절함의 농도가 달랐다. 매뉴얼 대로 대하는 게 아니라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친절함이랄까?
한 예로, 내가 토피넛 라테를 사려고 보노보노가 그려진 빵빵한 지갑에 있는 동전을 하나하나 맞춰서 간 적이 있다. 1엔짜리와 10엔 짜리도 많았고 일일이 세기 불편했을 텐데도 아르바이트생이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하나하나 동전을 세서 친절하게 인사까지 해줬던 게 기억난다.
그 아르바이트생이 유독 친절했던 거 아니야?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롯폰마츠점을 적어도 다섯 번 정도는 갔던 것 같은데 그때마다 아르바이트생이 바뀌었는데도 정말 친절했다. 어쩌면, 이 지점의 점장이 직원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줬던 게 아닐까? 친절함은 전염된다고 하니까… 그런 이유 말고는 딱히 설명이 안 된다. 아무튼 신기했다.
세상에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만 있다면… 조금 더 살만해질 텐데. 역시 그게 쉽지 않겠죠?
또 하나의 장점은 서점이 바로 옆에 있어 책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거다. 내가 가장 놀랐던 점은 책값이 생각 이상으로 저렴하단 거였다. 일본 서점의 책들은 대부분 페이퍼백 형태로 값이 500엔에서 600엔 사이였다. 한화로 5천 원에서 6천 원 정도 하는 건데, 책 한 권에 이 정도면 꽤 사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작가들 중 무라카미 하루키와 엔도 슈사쿠,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한다. 2000년도에 아사히 신문사에서 서기 1000년에서 1999년까지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순위를 매겼는데, 나쓰메 소세키가 1위, 다자이 오사무가 7위, 하루키와 엔도 슈사쿠가 각각 12위인가 13위를 했었다. 그런데 이 설문은 표면적인 결과이고, 직접 이들의 위상을 확인해보고 싶어서, 서점 직원에게 이들의 서가를 알려달라고 물어서 일일이 찾아보았다.
놀랍게도, 그중 하루키의 서가가 책장 세 개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비율이 컸다. 다른 작가들의 서가도 작지 않았지만 하루키만큼 방대하지는 않았다. 일본인들의 하루키 사랑을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루키가 1991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객원 교수로 있을 때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젊은 독자들을 위한 단편 소설 안내서'를 620엔에 구매했다. 일본어로 된 책을 사서 뭐 하냐고 묻는다면, ‘젊은 독자들을 위한 단편소설 안내서’는 한국에서 미번역된 것으로 전부터 꼭 번역되기를 바랐던 책이었다. 제3의 신인, 즉 전후세대의 문학에 대한 하루키의 입장과 태도 같은 것이 상세히 들어 있고, 하루키의 문학관을 엿볼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후쿠오카 외곽에 있는 스타벅스에 대해 얘기를 하려고 한다. 내가 머물던 미나미 구에 있는 맨션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걸어야 나오는 곳이었다. 이곳의 특징은 나처럼 작업을 하러 온 사람들이 많지 않고, 대부분 스몰 톡(small talk)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직원들은 친절한 편이었지만, 어쩐지 눈치가 보였달까… 내가 작업을 하고 있으면 갑자기 다가와서 혹시 블라인드를 쳐줄까요? 하는 식이었다. 분명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데도… 어딘가… 이렇게까지 한다고? 하는 측면이 있었다.
그 외에도 작업을 마치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다가와서 버려줄까요?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다. 그 뒤에 쓰레기를 보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다 마신 플라스틱 물병을 지목하며 이것은 여기에 버릴 수 없다고 얘기했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왜 버릴 수 없다는 거지? 재활용 쓰레기라 그런가… 싶다가도 여기에 이 물병 말고도 재활용 쓰레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
조금 더 생각한 끝에 아! 하고 무릎을 탁, 하고 쳤던 기억이 난다. '외부 쓰레기'라 버리지 못한 것이다. 과연 FM의 나라답다…라고 해야 할까 한국 사람 입장에서 이런 FM은 좀 심하지 않나요? 라고 반문하고 싶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고 했으니 별 할 말이 없긴 하다.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민폐'에 대해 아주 예민한 편이다. 메이와쿠 문화라고 해서 디폴트 값이 '남한테 민폐 끼치면 안 돼!'라는 인식이 뼛속 깊이 박혀 있다. 그런데 그 민폐의 가이드라인이랄까, 선이 너무나 확실해서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서 쉬이 납득되지 않는 측면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다.
스타벅스들을 몇 군데 다니면서 느낀 건, 어떤 곳에도 그 나라의 문화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은 일본 만의 스타벅스가 있고, 한국은 한국 만의 스타벅스가 있다. 뭐가 옳고 그르고 따질 수는 없다. 참 신기한 것은, 미국적 자본주의를 대표적으로 상징하는 스타벅스가 그 나라만의 문화를 일정 부분 흡수하면서 자리를 잡는다는 사실이다. 거품 같은 것을 쏘오오옥, 하고 빨아들이는 묵직한 스펀지가 떠오른달까? 다른 나라의 스타벅스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담. 호치민에 있는 스타벅스를 가봤는데, 상당히 넓고 좋았지만, 한국 스타벅스와 큰 차이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음, 이건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