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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구축 아파트, 보이지 않는 바퀴벌레

보이지 않는 불안과 마주치다.

by 정호재
제목을-입력해주세요_-001 (2).png 바선생에 대한 공포는……


고등학생 때부터 집에 바퀴벌레를 달고 살았다. 온 가족이 반지하에 살 때는 돈벌레와 꼽등이도 한 가족이었다. 누워 있는데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서 이불을 들춰보면 다리가 수십 개 달린 벌레가 빼꼼, 하고 인사를 할 정도였다.


반지하뿐만 아니라 주택에 살 때도 임대 아파트에 살 때도 집에 바퀴벌레, 돈벌레 같은 해충들이 있었다. 그중 바퀴벌레에 대한 민감도가 유독 심한 편이었다. 수십 개의 다리와 누리끼리한 색깔과 다다다다, 벽지를 누비는 소리를 듣다 보면… 정신이 나갈 것만 같다.


이렇게 오랫동안 벌레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레이더’ 같은 게 생겨났다. 어떤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여기는 바퀴벌레가 좋아하겠구나, 여기는 돈벌레가 좋아하겠구나, 하는 직감을 느끼는 것이다.

폐가를 연상시키는 듯한 목조식 주택과 벽돌로 지은 단독 주택 사이에 골목으로 들어가자 오십 년은 넘어 보이는 아파트가 나왔다. 각 호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는 구조였다. 복도에서는 비 오는 날에 나는 듯한 습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집 내부는 화장실과 거실과 침실이 여닫이 문으로 나뉘어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화장실에는 바닥이나 벽면에 검은 때들이 보였고, 곳곳에서 곰팡이 냄새가 풍겨왔다.


캐리어를 대충 정리하고, 거실에 있는 딱딱한 소파에 누웠다. 등이 간지러웠고… 뭐지, 하고 소파를 주의 깊게 들여다봤지만, 바퀴벌레는 없었다. 이후에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서 먹고, 멍하니 유튜브를 보며 첫째 날을 보냈다. 어떤 불길한 ‘예감’ 비슷한 것을 느끼면서.


둘째 날에는 뒤늦게 여행에 합류한 여자친구와 집을 대청소했다. 거실에 먼지가 텁텁하게 뒤덮인 매트를 제거하고, 바닥을 청소기로 밀고, 걸레로 닦고, 에어컨 필터를 세척하고, 화장실을 청소했다. 이 정도면 숙박하러 온 게 아니고, 청소하러 온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진심을 다했다.


하지만 그렇게 청소를 했음에도 어딘가에서 넘어올 바퀴벌레에 대한 불안―각 호들이 가까운 데다 복도가 좁았기 때문에―이 가시지 않았고… 그대로 잠에 들었고… 설마 바퀴벌레가 나오겠어, 하는 순간에 스스스, 하는 소리를 내며 주먹만 한 바퀴벌레가 나타났고… 그걸 손으로 잡으려고 하는 순간에,


꿈에서 깼다.


손바닥에 있는 한 줌의 땀 같은 불안이 스쳐 갔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날 여자친구도 똑같이 바퀴벌레가 나오는 꿈을 꿨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우리가 사실 자다가 무의식적으로 바퀴벌레를 본 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갑자기 등골부터 소름이 좌악하고 돋았다. 인간에게는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바퀴벌레를 혐오하는 유전자가 있는 게 아닐까요?


우리가 머무는 5일 동안, 다행히도 바퀴벌레는 한 마리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구축 아파트 어딘가에 바퀴벌레가 살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여름에는 바퀴벌레가 종종 나온다고 한다.)


문득, 이 바퀴벌레처럼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필요 이상으로 내 삶을 통제하려고 했던 불안이 있었다. 회사에서 잘린 뒤, 비좁은 원룸에서 막연한 미래를 그릴 때가 그랬고… 그 막연한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리려 볼수록 더 막연해질 때 그랬다. 생각해서 될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에 움직이지 않고 생각만 했는 데도 금방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만큼 사람의 생각이란 에너지를 많이 쓰는 일이다.


살다 보면 언젠가 다시 바퀴벌레를 맞닥뜨리지 않을까? 예를 들어, 동남아로 여행을 갔는데 그 숙소에 바퀴벌레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어쩌면, 나에게 필요한 건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자세와 살충제가 아닐까? 삶의 모든 조건을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삶이란, 바퀴벌레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불안을 받아들이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여담. 일본은 아파트보다 주택이 많고, 목조식이 많다 보니, 원래 바퀴벌레가 많은 편이라고 하네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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