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감독 May 30. 2023

경력의 재정립.

나는 경력이 많다고도 볼 수 있고, 적다고도 볼 수 있다.


나처럼 영화일을 한 사람들은 (다른 문화계통의 일도 비슷하지 싶다.) 경력이라는 정의에 입각한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분명히 영화일을 쉬지 않고 하고 있었지만 돈을 받거나, 이력서에 기재할 수 있는 타이틀이 없다. 나는 단편 몇 편과 장편 다큐멘터리 한 편을 만든 것이 전부다. 영상화 작업의 특성상 한 편이라는 그 '1'(일)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는 굉장히 크다. 다른 문화계통에 종사하는 분들께는 죄송하지만, 품을 들이는 것에 영화를 따라올 분야는 없다. 그러니까 혼자 하기가 무척이나 힘든다는 뜻이다. 물론 혼자서 각본 쓰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무명의 배우들 섭외해서 해외 영화제도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그 사람들이 대단한 것이지 영화작업이 마음만 먹으면 혼자 할 수 있어서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도입이 주절주절 길었다. 최근 나는 나의 경력의 재정립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일이 있었다. 

나도 뭐 감독이랍시고 아는 연예인들이 있다. 오늘 그 아는 연예인 중에 한 명과 sns로 개인적인 안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폰으로 열심히 메시지를 입력하고 있는데 아들이 옆으로 다가왔다. 보통은 내가 메시지를 주고받는 내용을 보여주기 싫어서 멈추거나 폰을 끈다. 오늘은 귀찮기도 하고 그냥 안부를 주고받는 내용이라 옆에서 읽게 두었다. 아들은 상대방의 이름을 보고 오~~~ 하며 탄성을 질렀다. (참고로 초딩이다. 그 텐션을 입체적으로 느끼시기 바란다.)


나 : 왜?

아들 : 오~ 아빠 XXX 랑 메시지도 주고받는 사이네? 와~ 이것이 감독의 위엄인가!!

나 : 야. 너 어디 가서 아빠 감독이라고 굳이 떠벌리고 다니지 마, 때를 기다려.

아들 : 어? 벌써 떠벌리고 다녔는데?

나 : 아... 뭐라고?

아들 : 영화 한 편 찍고 쫄딱 망한 감독이라고.


이 상황이 시트콤의 한 장면 같았다. 장편 영화라도 한 편 찍었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찍지도 못한 영화가 망하기까지 했다. 후... 


나는 '잘했네'라고 답하고 아들이 틀어 달라는 아이돌 음악을 틀어줬다. 음악이 재생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영화를 찍었고 극장에 걸렸는데 쫄딱 망했다면 아직 영화를 하고 있을까? 망한 시점, 그러니까 나이가 몇 살인지도 중요하고, 얼마큼 망했는지도 중요하겠지만 한 편 망할 걸로는 포기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무튼 아들에게 잘 못된 정보를 수정할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상황을 주관적인 기준으로 놓고 나의 경력을 봤을 때, 10년 정도는 경력이 단절 됐다. 이제 정말 경력을 재정립할 때가 됐다.



아래 영상은 위에서 언급한 장편 다큐멘터리입니다. 시간 나실 때 봐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만든 지 수년이 지났지만, 영상 속의 등장인물들의 전성기가 이제 시작되었으므로 보시는 재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9xIRM4pfhmI


작가의 이전글 정리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