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 성장기
막내가 태어나기 몇 달 전
갑자기 아이가 훌쩍 커버렸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특히 큰 아이 훈이를 지켜보면 어느 날 문득 정신적으로 크게 성장해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임신 5개월 정도 되자 배가 제법 불러왔다. 훈이에게 두 번째 동생의 존재를 알려도 좋을 시기가 된 것 같아 어느 날 입을 열었다.
"훈아. 이것 봐. 엄마 배가 커졌지?"
"응. 엄마 뚱뚱해졌어."
"아 맞아. 조금 살쪘어. 그런데 말이야.. 사실은 엄마 뱃속에 애기가 생겼어!"
"애기?"
"응 훈이 동생."
아들은 잠시 잠잠했다.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한 것일까? 좋은 걸까 싫은 걸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이윽고 입을 연 훈이.
"그럼 둘이나 키워야 되잖아~"
예상치 못한 반응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아 그렇구나. 훈이 입장에서는 오빠 또는 형으로서 부담이 느는 거였구나. 조그마한 여섯 살짜리가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러고 보니 훈이는 이미 오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우선 동생과 너무 잘 논다. 처음에는 애나와 약간의 갈등이 있었다. 애나는 오빠가 하는 놀이를 꼭 따라 하고 훈이의 자동차 장난감을 만져대고는 한다. 그럼 훈이는 그게 싫어서 '엄마~~ 애나 조옴~~!! 저리 가 애나!'를 반복해서 외쳐대곤 했다. 그런데 차츰 애나와 함께 노는 법을 터득한 모양인지 엄마를 찾는 횟수가 줄었다. 이제는 둘이 놀 때 엄마를 찾지도 않는다. 조용하다 싶어서 찾아보면 훈이와 애나가 숨바꼭질을 하는 중이다. "까꿍~" 하면서 숨이 넘어가도록 "꺄르륵~~"웃어 대고 재미있어서 죽는다. 동시에 남편과 나는 이런 우리 아이들을 지켜보다가 눈을 마주치고 행복한 웃음을 짓고야 만다.
그뿐인가 훈이는 어린 동생을 보호해주는 늠름한 오빠이기도 하다. 여섯 살 아이의 눈에 두 살 동생의 행동거지는 불안하기만 한가 보다. 넘어질 것 같으면 얼른 붙잡아주고, 위험한 곳에서 놀고 있으면 안아서 안전한 곳으로 옮기려고 한다. 애나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미처 들지 못하고 낑낑거리며 서있기는 하지만 그 마음은 참 예쁘다. 함께 하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내 동생'이라는 인식은 뚜렷해지는 듯하다. 엄마 아빠와 더불어 늘 "애나는?"하고 찾아대고 동생이 잠잘때는 토닥토닥 거려주고는 한다.
훈이도 '오빠와 동생'이라는 관계에서 일종의 책임감이란 걸 느끼기 시작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마냥 돌봄만 받았던 아이가 자신에게도 보살펴야 할 존재가 생기고 자연스레 관심을 갖고 안전하도록 도와주는 감정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사실 우리는 훈이에게 "오빠는 이래야 해, 동생보다 더 잘해야 해." 하는 식을 표현을 해본 일이 없다. 특히 나 같은 경우 맏딸로서 자라 온 경험 덕분인지 의무를 강조하는 언사는 아이에게 스트레스를 많은 준다고 생각하여 자제하고자 노력한다. 훈이에게 애나의 행동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설명하고 이해시키면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애나는 아직 표현하는 법을 모르는 나이라는 것을 이해한 듯하다. 한 번은 애나가 울고 있어서 달려가니 훈이가 옆에서 애나가 우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리고 "엄마, 이렇게 해줘."라고 애나를 대신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애나에게 참 든든한 오빠가 되어있는 훈이다.
둘째 애나가 자라고 셋째도 곧 뱃속에서 태어날 예정이다. 첫째 훈이도 의젓해지고 있다. 말도 안 통하면 떼쓰기 바쁜 애나를 보고 있노라면, 훈이도 이런 시절이 있었는데 언제 지나갔나 싶다. 이제는 기다릴 줄도 알고 대화하는 법도 발전하고 있다. 가끔 섬세한 감정표현과 대화에 서툴러서 삐칠 때도 있지만 아이가 성장해가면서 더 나아질 거라는 믿음에 큰 걱정은 접었다. 그만큼 아이는 성숙해져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