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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 김초엽

by 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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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견자들

김초엽


김초엽이 그리는 세계는 마치 잔혹동화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단편들도 그러했지만, 장편들은 더더욱. 이전에 읽었던 <지구 끝의 온실>을 읽을 때 느꼈던 기시감이 <파견자들>을 읽으면서도 자꾸 맴돌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계.

<파견자들>의 세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범람체'로 뒤덮인 지상을 피해 지하로 도망친 사람들이 지상을 되찾기 위해, 그러나 지하에서의 삶은 그 삶대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태린'은 자신을 구해준 이제프처럼 파견자가 되어 지상을 탐험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태린에게는 갖가지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면서 사건이 발생한다.


인간이 떠난 지구는 평화로울까?


P. 56 인간이 떠난 지표면에서도 자연 현상은 변함없이 일어난다. 물이 순환하고, 공기가 움직이고, 구름이 끼고, 비가 쏟아진다. 라부바와에 있으면 인간이 지표면을 빼앗긴 일이 아주 큰 일처럼 느껴지지만, 고작 몇 미터 위 채광창에만 올라와 보아도 그건 착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상은 인간 없이도 착실하게 유지되고 있다.


범람체로 뒤덮인 지표면은 사뭇 인간뿐만 아니라 그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하는 환경처럼 느껴진다. 파견자들은 범람체와의 접촉을 두려워하는데 단순히 '미지의 생명'에 대한 두려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어떤 것이 더 있는 것만 같다.

그렇게 인간이 지표면을 떠나도 지구는 인간이 살던 때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공기의 순환은 계속될 것이며, 단지 범람체가 넘실거린다는 것 말고는 다른 점이 없는 것 같지만, 바로 이 탓에 많은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마치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의 풍경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오래전에 지구에 인간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인간이 사라지면 우선 인간이 키우던 동물들의 대부분이 자생능력이 없는 탓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했다. 인간의 손길 오래도록 닿지 않으면 부식되고 결국 폭발하고 말 거라는 연구소나 발전소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지구는 자정을 하게 될 것이고, 인간이 살았다는 '흔적'을 곳곳에 남겨둔 채로 계속 공기가 순환하고 비가 오고 식물이 자라고 동물이 번식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김초엽이 보여주려는 세계는 이와 같은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없어지면 큰일 날 것 같지? 하지만 사실은 별로 그렇게 문제는 없단다. 하고 속삭이는 느낌이었다.


전체이자 부분, 부분이자 전체


범람체에 대한 정보가 늘어나면서, 범람체는 마치 버섯과 같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되었다. 모두가 서로 연결이 되어 있어서, 유전정보가 동일한 군집. 그러나 개개의 조각조각은 조금씩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사실 태린이 범람체와 하나가 되는 장면은 조금 무섭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개인의 개성이 사라지고 전체에 흡수되는 것. 어떠한 전체주의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P. 298 전체가 있었고 부분이 있었다. 부분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동시에 전체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부분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과 전체가 동일하되 다를 수 있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가셨다. 오히려 '전체 중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이해가 더 쉬웠고, 오해가 적어질 수 있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 간의 흔한 갈등조차 쉽게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나를 버리고 군집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면서 전체와 하나가 되는 것. 어쩌면 복잡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가장 필요한 희망이 아닐까 싶었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P. 349 증오하는 것들이 처음부터 분리될 수 없는 자신의 일부임을 받아들이면, 더 멀리까지 올 수 있다고.

이따금 어떤 것에 '꽂혀'서 발작하듯이 혐오발언을 쏟아내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그 부분이 바로 그 사람의 약점이구나, 하고 깨달아지는 때가 있다. 누구보다도 여자를 갈망하기에 여성을 혐오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 누구보다도 자기 안의 퀴어성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퀴어들을 공격하는 사람들.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그런 두려움이 숨어 있는 것이다. '내가 갈망하는 것만큼 여자들이 나를 갈망하지 않으면 어쩌나', '나를 퀴어로 라벨링 해서 해코지를 하면 어떡하나'

이런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이들은 '공격성'을 택하곤 하지만, 그래서는 결코 제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저 내 안의 증오를 직시하고, 이것들이 또 다른 나의 모습인 것을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길이 보인다는 것이다.


<파견자들>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범람체를 두려워하다 끝끝내 증오하게 된다. 그리고 범람체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을 '광증'에 걸렸다며 격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실은 범람체는 이미 지하로 피신을 온 사람들 사이사이에 벌써 녹아 있었고, 뿐만 아니라 인간들 안에 이미 숨어들어 있었다. 이를 인지하고 직시하고 바라보고 다음 단계를 고민한 사람들은 한 발 더 나아갔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덜덜 떨며 범람체를, 범람체에 '당한' 사람들을 어떻게든 처리하고자 한다.


김초엽이 그리는 세상은 이런 것이다. 내 안의 혐오를 잘 살펴서, 전체이자 부분이고 부분이자 전체인 인간 사회를 조금 더 모두에게 친절한 곳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 세상.

그렇게 낯설고 아름다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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