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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리 Apr 05. 2020

엄마가 되는 길에 들어서다

내 삶에 들어온 임신

#1. 엄마가 되는 길의 시작, 임산부가 되다.


 누군가 아무리 자신의 상황을 주저리 이야기 하든 기쁨 혹은 불만을 토로하든, 사실 100% 타인의 말과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아니 힘들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이번 나의 임신 경험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임신을 하지 않았을 때의 내가 임신한 친구,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들을 진실로 이해하지 못했고,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가 아직 태어나지 않아 일명 ‘엄마의 마음 온전히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태동이라는 방법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아가를 생각하면 엄마가 되는 길에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고 믿는다.


“Cho 우리 아가들이 지금 엄청 움직였어!”

(바로 나의 배에 손을 올리는 Cho)

 

 엄마가 되는 길 그 초입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임산부가 되어야 한다(당신은 임산부다)는 큼지막한 이정표이다.

임신을 하게 되면 곧 장 임산부가 되고, 임산부는 정해진 이정표처럼 열 달이라는 임신 기간을 잘 헤쳐나가며 엄마가 되는 길을 가꾸고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나는 2019년 8월 중순쯤 임신테스트기로 임신임을 작게 확인하고, 8월 말 병원에서 피검사와 초음파 검사라는 명확한 의학적 방법으로 엄마가 되기 위한 길의 시작인 이정표를 받았다.


 임신이라니, 내 삶에서 임신을 제대로 상상해 본 적은 있었나?

2017년 Cho와 결혼이라는 새 삶을 시작하고 그동안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생각해 보지 못했던 임신.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기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계획을 하고 임신을 한 것이지만, 그 이후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정말 임신을 했고, 임산부가 되었다. 이것이 현실이었고, 엄마가 되는 길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여기에 나를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되는 길이 아니라 두 아이의 엄마가 되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초음파 검사를 하던 도중에 아기집이 두 개인 것을 확인했다.

“네? 그럼 쌍둥이예요?”라며 놀랄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

 예전부터 쌍둥이를 가지고 싶었던 터라 기쁨이 가득했지만 그 당시는 놀라움이 기쁨을 앞섰다.

두 개의 아기집을 확인한 순간


 명이래!”

정말??”


그리고 그 놀라움은 어느새 설렘과 기쁨이라는 감정 앞에 자취를 감추었다.

 어린이집 교사, 유치원 교사로 일하며 많은 아이들을 만나왔고 난  참 아이들을 예뻐한 교사였다.

'남의 아이도 이렇게나 예쁜데 내 아이는 어떨까?', ' 얼마나 귀여운 아이가 나올까?' 그것도 두 명의 아이가 동시에 찾아오지 않았는가. 이런저런 긍정적인 생각들만 하며 '임산부가 되었어요' 이정표를 엄마가 되는 길 앞에 기쁜 마음으로 꽂았다.


#2. 엄마가 되는 길, 시작부터 흔들리는 이정표?


두둥-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대략 임신 6주 차부터 임신 초기 증상이라고 알려진 증상들이 하루하루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로 가던 연기자들의 임산부 연기는 특정 소수 임산부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아. 니. 었.다.

입덧에는 토덧이니 먹덧이니 양치덧이니 입덧의 종류에 따라 다양한 이름들이 붙어있었고, 입덧을 겪은 이들이 나름 자신들의 입덧 대처 방법을 SNS를 통해 공유하고 있었다. 입덧이 없는 이가 소수였고 대부분의 임산부는 입덧을 겪고 있었다.

6주부터 15주까지 나를 힘들게 한 입덧. 사실 토를 많이 한 것도 아니었고 음식을 못 먹지도 않았다. 나의 임신 초기 증상을 대표하는 단어들을 나열해 보자면 ‘두통’, ‘이명’, ‘양치덧’, ‘냄새 예민’ 등으로 줄 세워 볼 수 있을 것 같다.

 

 머리가 아프니 모든 일에 의욕이 없었고, 괴로웠으며 우울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이런 하루가 시작이야’라며 눈물이 나기도 했다. 두통에서 벗어나고자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보기도 했고, 타이레놀을 먹어보기도 했다 (물론 병원에 약 섭취에 대해 물어보고 난 뒤의 행동이다). 그러나 효과는 없었다.

 

 이명은 주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없었는데 왜 나에게는 나타난 증상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이비인후과에 가보았다. 임신 때문이라는 말을 들을 걸 알면서도, 특별히 처방받을 의학적 소견이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갔다.

 말을 할 때마다 울리는 내 목소리를 잠재우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병원을 찾았지만 역시나 답은 없었다. 임신을 하게 되면 피가 아기한테 가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증상이 이명이라고 들을 수 있었을 뿐이다.


 음식은 곧 잘 섭취했지만 양치질을 하는 과정에서 헛구역질이 나오며 구토를 할 때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양치덧이다. 심하게 구토를 하면 피가 섞여 나오기도 하고, 코피를 동반하기도 했다.


 냄새에 예민해졌다. 대부분의 임산부가 경험하는 가장 첫 번째 임신 초기 증상이 바로 냄새 때문에 괴로워하는 증상 같다. 밥하는 냄새가 싫다는 사람, 다른 사람이 먹는 음식 냄새가 싫다는 사람, 심지어 남편의 냄새가 싫다는 사람까지 있었고 나는 특히나 냉장고 냄새가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남편이 냉장고를 열 때면

“빨리 닫아 줘” 라며 나의 외침이 울렸다.


 차라리 출근하는 것이 나았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있다 보면 그나마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주말에 하루 종일 집에서 쉬는 것은 임신의 증상들을 더 강하게 느끼도록 했고 내가 기쁜 마음으로 세운 이정표를 뽑고 싶게끔 만들었다.

임신 초기가 이렇게 힘든 줄은 정말 몰랐다. 아니, 원망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거야?”


#3. 엄마가 되는 길, 다시 한 걸음 나아가다


고통의 임신 초기를 이미 겪은 친구는 공감의 말들로 나를 위로해주었다.


조금만 있으면 지나갈 거야 15주까지만 참아봐!”

제발 나아졌으면 좋겠어

아가들이  크고 있다는 증거야


친구는 보통 15주부터 입덧이 사라진다고 했고 실제 여러 임신 관련 서적이나 넘쳐나는 인터넷 정보들도 친구의 말을 신뢰할 수 있도록 나를 달래주고 있었다. 거기에 시간의 흐름이 나를 엄마가 되는 길로 어떻게 해서든 끌고 가고 있어 하루의 일부만큼은 좋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가들이 건강하고 잘 크고 있다는 증거래 조금만 더 참자”


 두통에 내 감정과 컨디션을 조절하기 힘들어하며, 목소리가 울려 들릴 땐 손바닥으로 두 귀를 막아대며, 자동차 안, 냉장고, 음식 냄새들이 풍겨 올 땐 숨을 참아대며 ‘15’라는 숫자를 기다렸고 드디어 ‘15주 차’에 접어들었다.


 이때 느낀 나의 기대감이란. 정말 높고도 높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막달까지도 입덧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던 터라 ‘나도 그러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높은 기대감에 뿌연 안개처럼 드리워졌다.

다행히도 나는 평범한 임산부에 속했던 것 같다. 15주 1일, 15주 2일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컨디션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말 임신 초기 증상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마법처럼. 깔끔하게. 그동안의 고통이 무색 해질 만큼 말이다. 하 말 그대로 누군가 마법을 부린 것 같았다.

샤랄라~!


임신 초기를 겪으며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임신을 여러 번 반복한 이들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아이를 3명이나 낳았어요? 이렇게 힘들었는데

“1~2년만 지나 .  잊어버려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지금 나는 이 시기를 잊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하지만 아기를 낳고 키우다 보면 정말 잊힐까? 예쁜 아가들 모습에 또 낳고 싶어 진다는데 정말일까?

확신이 조금은 무뎌지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선 지금 아가들부터 예쁘게 잘 키워보자’이다. 혹 셋째 생각이 든다면 그때 가서 생각하는 걸로.


 임신 초기는 임신을 했다는 행복함과 내 몸안에 또 다른 생명이 있기에 나타나는 증상으로 인한 힘듦을 동시에 전해주었다. 특히 쌍둥이 임신이기에 증상들이 심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임신 초기의 힘듦을 알지 못했던 나의 무지함이 임신을 계획할 때 즐거움을 주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출산의 고통뿐 아니라 초기의 고통까지 알았다면 임신이 무서움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임신 초기를 잘 견뎌왔고 내가 아닌 것 같던 내가 나로 돌아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엄마가 되는 길에 분명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단단한 바위가 흔들릴 뻔한 이정표를 잡아주었고, 나는 버티고 서 있었다.

흔히들 말한다. 엄마가 되는 길이 쉬운 줄 알았냐고.

겪어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 계속 겪을 것 이기 때문에 지금은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요. 엄마가 되는 길이 쉽지 않네요. 그래도 조금씩 천천히 가볼게요. 그대들의 엄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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