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먹는 시간
어린이집에서는 오전 간식으로 다양한 종류의 음식들이 제공된다. 죽, 빵, 수프, 고구마, 감자, 시리얼 등등..
식사 대용으로도 가능한 음식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아마도 맞벌이 부모가 많아 바쁜 아침에 자녀의 식사를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보육의 개념으로 간식을 든든히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공립유치원의 오전 간식은 일반적으로 우유 한 개인 경우가 많다. 가정에서 아침을 먹고 왔다는 가정하에 간식은 정말 간식의 용도인 것이다. 고로 부모들이 아이의 아침 식사를 거르지 않고 챙겨주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실제 대부분의 아이들이 아침식사를 거르지 않고 먹고 오기도 한다.
자유선택활동 시간이 끝나고 정리 후에 우유를 먹는데, 우유를 먹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이때 화장실에서 모든 아이들이 손을 씻는 것이 어렵고, 볼 일을 보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를 구분하여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오늘은 남자 친구들 먼저 화장실 다녀오세요"
"네!"
남자아이들 먼저 화장실에 간다. 그동안 여자 아이들은 놀잇감 정리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정리를 마친 아이들은 매트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손을 씻고 온 아이들은 유유 상자 안에서 우유를 하나씩 꺼내 자기 자리로 이동한다.
우리 반에는 총 세 개의 모둠 책상이 있다. 책상 위 가운데에는 빨간색 동그라미, 주황색 동그라미, 초록색 동그라미 종이가 각 붙어 있고 이것이 바로 모둠 색깔을 상징한다. 빨간 모둠, 주황 모둠, 초록 모둠인 것이다.
현서는 주황 모둠으로 이동해 우유 입구를 열고 우유를 마시기 시작한다. 희주도 그 옆에 앉아 우유의 입구를 열기 위해 시도한다. 학기 초 그리고 1학기 대부분은 내가 아이들의 우유를 까주는 경우가 많았다. 아직 5살 아이들이 우유 까는 것을 어려워했기 때문이다.
우유를 열 수 있는 두 군데 중 화살표가 표시되어 있는 진짜 입구를 찾는 것부터 아이들에게는 하나의 미션이었을 것이다. 입구를 찾으면 열어야 하고 열고 난 뒤에는 가운데를 잡아당겨야 한다. 손가락 힘을 잘 조절할 수 없으면 우유는 하얀 속을 보여주지 않거나 과도하게 밖으로 튀어버리고 만다.
2학기에 접어들고 나서부터 한두 명의 아이들이 우유를 스스로 깔 수 있게 되었고, 그 모습을 본 다른 아이들도 혼자 우유 까기를 시도했으며 잘 되지 않을 때에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까보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학기 말에는 두 세명의 아이를 제외하고 모두 우유를 혼자서 깔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아이이기에 입구의 위치를 잘못 선택하여 우유가 입구를 쉽게 열어주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입구는 잘 선택했지만 손가락으로 우유 입구를 벌리는 과정에서 입구 여기저기가 찢어지는 상황이 되면 어김없이 나를 찾는 아이들이다. 충분히 노력해 보고 되지 않을 때 선생님의 도움을 찾는 아이들. 정말 많이 컸다.
우유를 자신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먹은 아이들은 우유를 정리한다.
남은 우유는 화장실 세면대로 가져가 버리고 우유곽의 윗부분을 눌러 접어 우유곽이 주사위처럼 네모가 되게 만든 다음 우유상자 안에 넣는다. 간혹 우유 속을 다 비우지 않아 우유곽 밖으로 우유가 세어 교실 바닥에 하얀 점들을 만들어 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이럴 때에도 아이들은 침착하다. 스스로 휴지나 물티슈를 사용해 우유가 만든 동그란 점들을 깨끗이 지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식이는 우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학기 초반에는 우유를 한 입도 대지 않았고 심지어 자신의 우유를 가지고 가지도 않았다. 집에서도 유제품을 즐기지 않고 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우유를 신청하지 않고 끊을 수도 있었지만 민식이의 엄마는 민식이가 유치원에서라도 우유를 먹길 바랐다.
그래서 점진적으로 '민식이 우유 먹이기'를 계획하였다. 그 첫 번째 단계는 '우유와 친해지기'. 간식 시간에 우유를 먹지 않더라도 우유 한 개를 가지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 앉아 우유를 까주고 우유를 함께 관찰했다. 우유의 색깔은 어떤지, 냄새는 어떤지 말이다. 먹어보는 것은 강요하지 않았다. 단지 우유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탐색만 해보았다.
두 번째 단계는 '우유의 좋은 점 알기'였다. 우유에 조금 관심을 가진 민식이에게 우유를 잘 먹는 친구들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그 친구에게 우유의 맛과 우유가 어디에 좋은지 물어보고 대답을 들었다. 이를 통해 민식이는 우유의 맛은 고소하며 우유는 키를 크게 해 주고, 뼈를 튼튼하게 해 줌을 알았다.
세 번째 단계는 '한 입만 먹어보기'. 다 먹지 않더라도 딱 한 입만 먹어 볼 수 있도록 제안했다. 거의 두 달이 지나고 나서 민식이는 우유 한입을 먹었다. 첫날은 정말 딱 한 모금만 먹고 남은 우유를 정리하였다. 그리고 지금은 절반 정도의 우유를 마시게 되었다. 공부던 기본생활습관이던 급하게 시키려고 하기보다 아이들 개별 성향에 맞추어 도움을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되었던 에피소드이다.
민식이 뿐만 아니라 우유 먹기를 싫어하는 아이는 몇 명 더 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다양한 핑계를 삼아 우유 안 먹는 날을 만들기 위해 나름 고군분투한다. 배가 아프다고 하거나 엄마가 우유를 먹지 말라고 했다거나 등등 많은 이유를 내세우는 아이들이다.
유치원에 오기 전 어린이집 생활을 했던 지환이는 학기초 "왜 유치원에서는 간식이 우유만 있어요?"하고 묻곤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어린이집의 간식은 다양함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에 어떤 아이들은 간식으로 무엇이 나올지 기대하며 등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치원에서는 우유가 간식의 전부이고, 지환이는 유치원 간식이 우유뿐이라는 것을 인지 했을 때 매우 실망하는 눈치였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은 그 이유를 아이에게 설명해 주는 것과 부모와 소통하는 것이다.
오전 일과 중간에 우유를 먹음으로써 우리 몸의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우유를 마신 다는 것, 우유가 우리에게 주는 이점을 이야기해주었다. 그리고 집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등원할 수 있도록 어머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환이는 간식을 기다리면서 배고프다는 이야기를 종종 했기 때문이다.
"지환이가 아침을 먹지 않고 어린이집 간식으로 아침 식사를 했던 적이 많아요. 그래서 배고프다고 하나 봐요. 집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도록 할게요"
지환이의 엄마는 긍정적으로 유치원 우유 간식을 받아들였고, 지환이는 아침식사를 먹고 등원하기 시작했다. 이후로 지환이는 오전 간식 시간에 제공되는 우유에 실망의 눈빛 대신 인정의 눈빛을 보였고, 우유를 만족해하며 먹기 시작했다. 가끔 아침 식사를 거르고 올 때 "배고파서 빨리 우유 마시고 싶어요"라는 속내를 말로 표현하긴 하지만 우유가 매일의 아침 대용이 되지 않아 다행이다. 500ml 우유 한 개 만으로 한창 커가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영양보충을 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 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