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을 알아야 하는 이유
어떤 분이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던 아들이 보이스피싱 전달책으로 일하다 사기죄로 현행범 체포되었다고 상담을 요청하십니다. 아들은 정말 아르바이트인 줄 알았지, 사기죄라니 말도 안 되는데 경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고 한다고 펄펄 뛰십니다.
음, 경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는 것으로 보아 정말 아르바이트인 줄 알고 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수사 중에는 수사기관이 알고 있는 정보를 피의자 쪽에서는 알 수가 없으니, 아버지로서는 아들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겠지만, 아들 자신만은 자기 행동을 알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편이라 생각되는 변호인에게조차 모든 사실을 다 털어놓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타인에게 고변한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습니다. 가족에게 실망을 안기기는 더욱 어렵지요.
이 경우 어떤 범죄로 처벌되고 어느 정도의 처벌을 받게 될까요?
예상되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야 합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요?
사기죄의 방조범 또는 사기죄의 공동정범 입니다.
보이스피싱 전달책은 형법상 사기죄로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됩니다. 형량은 사기 피해 액수에 따라 정해집니다. 사기로 얻은 이익액을 기준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실제 전달책으로 얻은 이익이 피해 액수에 훨씬 못 미쳐도 형량은 피해 액수를 기준으로 정해집니다. 다만 방조범인지 공동정범인지에 따라 형량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형법 제347조(사기) ①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전항의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한때에도 전항의 형과 같다.
현재의 판례는 전달책을 1회만 했다면 사기죄의 방조범, 1회 이상 여러 번 했다면 사기죄의 공동정범이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방조과 공동정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형법
제30조(공동정범) 2인 이상이 공동하여 죄를 범한 때에는 각자를 그 죄의 정범으로 처벌한다.
제32조(종범) ① 타인의 범죄를 방조한 자는 종범으로 처벌한다.
② 종범의 형은 정범의 형보다 감경한다.
공동정범은 가담한 여러 사람에 대해 비슷한 정도의 책임을 인정합니다. 방조범(종범)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따로 있고, 그 사람의 범죄가 용이하게 "도운" 정도의 책임만 인정합니다. 범죄라는 점을 얼마나 인식하고 얼마나 적극적으로 범죄를 했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거칠지만 쉽게 설명드리면, 공동정범은 '꼭 있어야 범죄가 완성되는 역할'이고, 방조범은 '없어도 범죄는 완성될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별 차이가 있나 싶으시지요. 실제로도 방조범과 공동정범의 경계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공동정범의 경우에도 가담한 여러 사람에게 동일한 형을 선고하지는 않고, 가담의 정도에 따라 형량은 차이를 둡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별 차이가 없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공동정범은 판사의 재량으로 2분의 1로 감경할 수도 있지만, 방조범으로 인정되면 판사는 법률에 따라 2분의 1로 감경해야 하고, 판사의 재량에 따른 감경을 추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방조범의 형량은 공동정범으로서 가담 정도가 낮은 사람의 형량보다 낮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여도가 적으면 적게 처벌하는 게 당연하겠죠?
형법 제55조(법률상의 감경)
①법률상의 감경은 다음과 같다.
1. 사형을 감경할 때에는 무기 또는 20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한다.
2. 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를 감경할 때에는 10년 이상 50년 이하의 징역 또는 금고로 한다.
3. 유기징역 또는 유기금고를 감경할 때에는 그 형기의 2분의 1로 한다.
4. 자격상실을 감경할 때에는 7년 이상의 자격정지로 한다.
5. 자격정지를 감경할 때에는 그 형기의 2분의 1로 한다.
6. 벌금을 감경할 때에는 그 다액의 2분의 1로 한다.
7. 구류를 감경할 때에는 그 장기의 2분의 1로 한다.
8. 과료를 감경할 때에는 그 다액의 2분의 1로 한다.
②법률상 감경할 사유가 수개 있는 때에는 거듭 감경할 수 있다.
보이스피싱은 피싱범들이 따로 있고,
전달만 한 전달책은 피싱범들을 "도운" 정도로 방조의 책임만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전달책을 보이스피싱의 공동정범으로 처벌할 수도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고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피싱범들은 자신들이 노출되지 않기 위해 전달책을 이용합니다. 피싱을 완성하기 위해 전달책의 역할은 필수적입니다. 본질적으로 전달책을 방조범이라 보기는 어렵지요.

하지만 1회만 저지르고 그만둔 사람과 여러 번 저지른 사람을 구분하는 데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습니다. 구인광고에 속아 한 번 전달을 했는데,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택시 타고 돈을 받아서 말하는 지점에 입금만 하면 되는 쉬운 일인데, 택시비도 지원해 주고 현금 30만 원을 제외하고 입금하라고 합니다. 이상하지요. 이런 꿀알바가 어디 있나요?
그때 '이건 불법일 것 같다. 혹은 피싱일 것 같다.'라고 인식했거나 인식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런 꿀알바를 멈춘 사람과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여러 번 저지른 사람은 차이를 두어야지요. 사기임을 인식하고도 적극적으로 범죄를 했기 때문에 피싱범과 동일한 사기의 고의가 있었다고 보고, 공동정범으로 처벌합니다.
의뢰인 아들은 2달이 채 못 되는 기간 고작 14일 정도 전달책 일을 하고 230만 원을 벌었습니다. 피해자는 8명, 피해 액수는 1억 3천만 원이었습니다. 첫 번째 전달을 한 뒤 알았을 것입니다. 이렇게 쉬운 일에 몇 만 원의 택시비까지 대주고 30만 원을 아르바이트비로 주는 알바가 있었나요? 두 번째부터는 알바인 줄 알았다는 말이 절대 통하지 않습니다.
구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1회 이상 전달했다는 것은, 피해자가 다수라는 의미이고,
피해자가 다수라는 의미는 피해 액수가 크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보이스피싱 전달책의 70% 정도가 구직 사이트를 통해 처음 피싱을 접합니다.
보이스피싱 전달책의 70% 정도가 20대 청년들입니다.
직업이 없는 사람이 86%에 이르고, 남성과 여성의 비율이 8:2 정도로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통계자료는 경찰학연구 제20권 제1호 중 "보이스피싱 전달책의 가담 경로에 관한 연구" 참조함)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구직 사이트에서 정부기관 또는 대출해 주는 금융기관을 사칭하면서 잠깐 동안 돈을 받아서 전달만 하면 30~40만 원을 준다는 알바광고는 다 보이스피싱 전달책 광고입니다. 수사기관의 무능과 범죄자들의 유능을 탓해야겠지만, 대부분은 전달책만 현행범 체포되고 맙니다. 진짜 보이스피싱범들은 국내에 없거나 꽁꽁 숨어 검거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사기 친 돈으로 호의호식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피해자 모두와 "형사적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라는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면 집행 유예가 선고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벌금형이 선고될 가능성은 크지 않고, 사기 전과를 달고 다니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겁니다. 합의를 하지 못하면 피해액이 1억 원 이상이니 1년~1년 6월의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구속은 피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도주 우려가 높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실형의 형량을 줄이는 노력이 최선이라 생각됩니다. 피해자들을 찾아가 합의금을 들고 찾아가 눈물로 호소하는 방법뿐입니다. 합의가 쉽지는 않을 겁니다. 평생 모은 몇천만 원을 사기당하고, 생활의 기반을 잃어버린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청년들이 정상적인 일자리를 쉽게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지만, 그렇다고 불법을 저질러서도 세상을 탓하기만 해서도 안 됩니다. 쉽게 돈 벌 수 없어요. 세상에 공짜 없다는 걸 미리 몰랐던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