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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싱범죄(3)]몸캠 피싱 피해자가 가해자로

by 평범한지혜

일명 '몸캠 피싱'이라는 범죄 들어보셨나요?


2020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널리 알려진 범죄 수법입니다.

성범죄 + 사기 또는 공갈죄가 결합된 악랄한 형태의 범죄라고 볼 수 있습니다.


피싱 일당들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인간의 단순하고도 보편적인 욕구를 이용합니다.


SNS, 오픈채팅, 데이팅 앱, 각종 커뮤니티에는 비대면 & 익명의 만남을 원하는 사람들이 널려 있지요. 피싱 일당은 남자 또는 여자, 외국인으로 신분을 위장해서 이들을 유인합니다. 이것이 피싱의 시작입니다.


누군가 낚이면 카카오톡처럼 화상채팅이 가능한 앱으로 넘어갑니다. 피싱범들은 모르는 사이 당신의 휴대전화에 알 수 없는 앱을 설치하게 해서 악성코드를 깔고 협박의 수단이 될 연락처 목록을 빼내어 갑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시작해서 성적인 대화로 이어가다 자신이 음란행위를 하기도 하고 상대방에게 음란행위를 하도록 유도합니다. 음란행위를 할 때 얼굴을 함께 보여 달라고 할 겁니다. 확실한 협박을 위해서는 얼굴까지 촬영돼야 하니까요. 이때 이미 당신이 음란행위를 하는 모습은 모두 촬영되었을 겁니다.



대화 상대방은 갑자기 돌변합니다.
(음란영상 촬영과 연락처 빼내는 작업이 끝났다는 뜻이지요.)


존대하던 사람이 반말을 하고, 다정하고 친밀했던 사람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당신의 음란행위 하는 영상이 촬영되었고,
삭제할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퍽이나 친절합니다.)


당신의 휴대전화에 있던 당신 가족, 친한 친구, 직장 동료들의 연락처 목록이 카카오톡 화면에 주르륵 게시됩니다. 이들에게 음란 영상이 유포되기를 원하지 않으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 이때부터 무시무시한 먹이사슬이 만들어집니다.



계좌를 주고, 돈을 요구합니다.
돈 요구는 한 번에 끝나지 않지만,
그 정도에서 그치면 천만다행입니다.
돈을 보내도 이들은 영상을 삭제해 주지 않습니다.



계좌를 달라고도 합니다. 신분증을 달라고도 합니다. 그 계좌로, 그 신분증으로 이들은 뭘 하려는 걸까요? (이미 피해를 당해본 입장에서 전혀 모르겠다고 하시지는 않겠지요?)


더 심하면, 또 다른 피해자를 피싱 하기 위해 당신이 당했던 그 커뮤니티에 자기 계정을 홍보하라고 말합니다. 당신은 여자 또는 남자로 가장해서 당신과 똑같은 피해자를 물색합니다.


당신은 당신 계좌로 피싱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습니다. 당신은 그 돈을 제2, 제3의 불상의 누군가의 계좌로 이체합니다. 또는 당신의 계좌를 이용해 가상화폐로 환전하게 합니다. 불법자금을 세탁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기는 겁니다. 이제 당신은 피싱 범죄에 가담하게 된 겁니다. 이런 식으로 피해자들은 가해자로 블록체인처럼 무한한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피해자는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되는 구조입니다.



수사기관에는 당신만 잡힐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당신의 계좌, 신분증, 연락처만이 노출되었으니까요. 피싱범들은 대부분 해외 어딘가에서 당신들이 벌어다 준 돈으로 희희낙락 살고 있습니다. 정작 피해자인 당신은 피해 사실은 보상받거나 가해자를 잡아 처벌할 수도 없습니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겁니다.

"모두 그놈이 시키는 대로 했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내 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해서 나는 어쩔 수 없었다."



"시키는 대로 했다, 거절할 수 없었다"라고 주장하면
처벌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형법에는 범죄를 구성하는 행위가 모두 인정되더라도 법적인 책임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이론이 있습니다. 흔히 알고 계시는 정당방위와 유사한 것들입니다. 정당방위는 위법성 조각사유의 하나이고, 이와 비교되는 책임 조각사유라는 개념도 있습니다. 약간 다르지만 비슷하다고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조각 = 阻 막을 조 + 却 물리칠 각

법률에서는 무언가를 없앤다고 이해하면 됩니다.(일본식 한자어... 빨리 고쳐야 할 텐데 법학에는 이런 한자어가 많습니다.)

이 경우에 책임조각사유 중 "기대가능성"이론을 고려해 볼 만합니다. (고려해 볼 만하다고 했지, 받아들여질 거라고는 안 했습니다. 괜히 기대하실까 봐...)


기대가능성 = 행위 시의 구체적 사정으로 보아 행위자가 범죄행위를 하지 않고 적법행위를 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법을 지킬 수 없을 만한 사정이 있으면 비난할 수 없고, 책임을 면제해 줄 수 있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책임조각사유에는 대표적으로 "강요된 행위"가 있습니다.



형법
제12조(강요된 행위)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이나 자기 또는 친족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해를 방어할 방법이 없는 협박에 의하여 강요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형법 조문만 쓱 보았을 때는 몸캠 피싱 피해자들이 가해자로 몸캠 피싱을 저질렀던 위와 같은 경우에도 적용될 수도 있겠다, 생각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강요된 행위는 법원이 쉽게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아주 어렵게 인정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폭력"을 감금, 마취제 사용, 강제로 손가락을 들어서 지장을 찍게 하는 경우 정도여야 합니다. 어느 정도를 말하는지 감이 오시나요?




실제로 판례는 강요된 행위를 인정한 예가 별로 없습니다.
최근에는 더 없고, 60, 70년대의 판례 중 일부 있을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강요받아서 그랬어요." 또는 "어쩔 수 없이 그랬어요."의 경우에는 법률적으로 말하는 "강요된 행위"에 해당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법원의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 법을 어긴 사람에게 쉽게 "그래도 돼.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똑같은 몸캠 피싱 피해를 당하고도 계좌와 신분증만 주고 피싱은 거절한 사람, 피싱 홍보까지 한 사람, 실제 피싱까지 나아간 사람, 피싱 후 대가까지 받은 사람, 자금 세탁까지 한 사람. 각각 다양합니다.


모두가 두려웠겠지요. 모두가 두려웠지만, 어떤 사람은 똑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은 똑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다르게 행동했기 때문에 다르게 처우할 수밖에 없고, 기본적으로 법체계에서는 어떤 이유로든 법을 어긴 사람에게 관대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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