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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May 09. 2023

"On the basis of Sex"


화려한 액세서리로 치장한 법복 입은 이 할머니를 아시나요? 뉴스에서 보던 우리나라 대법관을 떠올려 보면, 이 할머니는 어딘가 힙하지요. 


실제로 영화나 방송 출연도 꽤 했고, 미국 한복판에 초상화가 걸리기도 했고, 토크쇼에 출연해 위트있는 멘트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 때 인기에 저도 자서전도 읽어보았었습니다. 


저 포함 우리나라 법률가들이 지나치게 조심성 많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어떤 때는 좀 아쉽습니다. (저도 노잼 탈출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오랫 동안 몸에 밴 것이 쉽지 않아요)






남녀 평등과 차별에 관해서는 많은 분들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계시지요. 일상에서 많이들 겪어보아서 생각하고 생각을 나눌 기회가 많았던 주제라서 일겁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이 주제에 관해 특히 할 말이 많은 분입니다. 


이 영화는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젊은 시절의 남녀 평등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입니다. 영화는 2019년에 개봉했고, 긴즈버그 대법관은 2020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직접 출연도 했지요. 


평등과 차별 이슈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던 좋은 영화라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젠더 이슈에서도 시사되는 점이 있었고요.


우리나라 제목은 “세상을 바꾼 변호인”이지만, 원제는 영화포스터 아래에 작게 적힌 “On the basis of Sex”입니다. "성별에 근거한"이라는 의미로 법률적으로도 쓰이는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원제가 영화 내용에 더 충실한 제목인 것 같지요?



긴즈버그 대법관은 1950년대 하버드 로스쿨에 다녔고, 전체 학생의 2%인 9명에 불과한 여학생 중 한 명이었어요. 졸업을 해도 아이까지 둘 딸린 그녀를 원하는 로펌은 없었습니다. 직접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지요. 할 수 없이 그나마 그녀를 받아준다는 법대 교수로 취직합니다. 


법대 교수로 일하면서도 자신이 직접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건을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렸지요. 그러다 세무전문변호사였던 남편의 세무사건 중 눈이 번쩍 뜨이는 사건을 발견합니다.  


어머니의 간병인 보수에 대한 세금 공제신청이 거부된 남성인 가족보육자를 대리하는 사건입니나. 이 사건이 왜 확 들어왔을까요?


당시의 미국 조세법 제214조는 가족보육자의 자격을 여성이라 규정해 두었거든요. 가족보육자로서 간병비 세금 공제 혜택을 청구할 수 있는 사람의 자격을 성별로 정하다니? 더구나 여성만 청구할 수 있다니? 1970년대였던 당시의 시대상을 아주 잘 보여주는 법규정입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연방대법원에서 변론합니다.


가족 보육자의 자격을 여성이라고 규정한
조세법 214조는 남성을 역차별했고,
그래서 성차별적인 규정이라 주장합니다.


영화 속 연방대법관 할아버지 중 한 사람은 여성이 가정에 머물며 보육자 역할을 맡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고까지 말합니다. 상대방 변호사는 간병비 세금공제 제도는 여성을 위해 혜택을 주는 제도라 변론합니다. 그러니 그런 혜택을 받으려는 것은 무능한 남성이라며 모욕하기까지 합니다. 


긴즈버그는 성별에 따라 차이를 두어야 하는 법과
차이를 두지 말아야 하는 법을 구분해야 하며,
해당 법의 목적과 그 차이가 합리적으로 연관되어 있을 때에는
합리적 차별이라 변론합니다.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중 한 장면

이 영화에 대한 어떤 리뷰에서는 변론 장면이 뭔가 극적인 연출이 부족하다고 했지만, 저는 평등과 차별에 대한 생각을 잘 정리한 좋은 장면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리뷰는 대부분의 법정영화에 비추어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면이 부족했다는 뜻이었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법정변론은 영화적이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드라마틱한 반전은 일어나지 않아요. 예상했던 대로 흘러갑니다. 게다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이 정도 변론만으로도 충분히 드라마틱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더군요. 긴즈버그의 변론에 가슴이 뜨거워지더라고요. 



긴즈버그는 조세법 214조의 목적은 여성 보호나 남성 차별이 아니라 보육자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것이므로, 입법취지에 부합하도록 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변론합니다. 미혼 남성에게도 간병비 세금 공제를 확대해서 모든 보육자를 동등하게 취급해 달라고 주장합니다.


모든 보육자를 동등하게 취급해 달라는 긴즈버그의 주장은 사실상 여성을 과거의 고정된 성역할 속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지만, 겉으로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법리적으로도 흠결이 없고, 변호사로서도 사건에서 이길 수 있는 훨씬 효과적인 변론이었다고 봅니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이것이 상대적 평등입니다. 상대적 평등에 대비되는 절대적 평등이라는 말이 있어요. 말 그대로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1조 (1)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ㆍ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평등 원칙에 관한 우리 헌법 규정은 마치 절대적 평등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별ㆍ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자의적으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상대적 평등을 말합니다.


차별과 평등에 대한 중요한 생각은
차별할 수도 있지만
그 차별이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것을 다르게 혹은 다른 것을 같게 취급하면 합리적이지 않은 차별입니다. 누구나 가족을 간병할 수 있지요. 간병비 세금 공제는 “가족을 간병하는 모든 국민“을 자격으로 해야 합니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의 성별에 따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같은 것을 다르게” 취급하는 것이어서 합리적이지 않은 차별이지요?


긴즈버그가 마지막 변론을 할 때, 여성이라는 단어는 미합중국 헌법에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어느 연방대법관의 말에, 긴즈버그는 자유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라고 응수합니다. 여성이라는 단어가 헌법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여성을 특별히 보호할 근거가 없다는 대법관의 말에, 미국이 지상최대의 가치로 여기는 자유 역시 헌법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보호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냐는 논리적 반격이지요. 


저라면 국민이라는 단어는 미합중국 헌법에 숱하게 등장하고 있다고 대답했을 것 같습니다. 여성도 국민이라는 의미로 말이지요. (별로 드라마틱하지 않나요?) 


우리나라 젠더 이슈에서도 저는 그렇습니다. 남녀를 차별한다, 문제가 많다, 개선해야 한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국민으로서 권리를 성별이라는 불균등하게 보장하지 말라는 시각을 가지면 어떨까 합니다. 이 시각은 별 다를 것 없어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출발점이 다르면 종착점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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