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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범한지혜 May 28. 2023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그럼 뭐다?

국회가 여야 없이 “동물은 물건이 아니”라는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데에 합의하였다고 합니다.

여야가 나뉘어 매번 다른 곳을 바라보던 대한민국 국회가 어쩐 일일까요?


최근 보도된 관련 기사에선 총선을 앞두고 반려인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것이라 분석하고 있네요.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입법기관을 그렇게만 바라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민법개정안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요?

현재의 법령부터 한 번 살펴볼게요.

현행 민법은 ‘동물은 물건이다.’라고 직접 정의하지는 않았지만, 동물이 물건인 것을 전제로 한 규정은 두고 있습니다. 민법은 인간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존재와 그들 간의 관계에 관해 필요한 규정을 하고 있어요. 민법은 인간과 인간 외의 존재만 인정하고 있고(외계인은 인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인간 외의 존재는  모두 “물건”이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물에 관한 법으로 동물보호법이 있지만, 동물에 관한 최상위의 법은 민법이라고 할 수 있어요.


민법
제98조(물건의 정의) 본법에서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

252조(무주물의 귀속) ① 무주의 동산을 소유의 의사로 점유한 자는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② 무주의 부동산은 국유로 한다.
③ 야생하는 동물은 무주물로 하고 사양하는 야생동물도 다시 야생 상태로 돌아가면 무주물로 한다.

제759조(동물의 점유자의 책임) ① 동물의 점유자는 그 동물이 타인에게 가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동물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그 보관에 상당한 주의를 해태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② 점유자에 갈음하여 동물을 보관한 자도 전항의 책임이 있다.



야생 동물을 무주물, 즉 주인 없는 물건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동물을 사람이 점유할 수 있는 객체로 보고 규정하고 있지요? 현행법은 동물을 물건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럼 개정될 민법은 어떤 모습일까요?


민법
제98조(물건의 정의) ① 본법에서 물건이라 함은 유체물 및 전기 기타 관리할 수 있는 자연력을 말한다.
②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


2항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없던 규정을 두는 것인데요. 민법은 법무부의 소관 법령이어서, 이 개정안은 법무부가 발의했습니다. 법무부는 개정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이나 동물 피해 배상이 충분치 않은 근본적인 이유로 동물이 법체계상 물건으로 취급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라며 “동물에 대한 비인도적 처우의 개선 등 생명존중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반려동물 유기 행위나 잔인한 학대 행위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네. 법무부는 국민들의 동물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 많이 달라졌으니 법도 그에 맞춰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개정취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바람직한 방향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물이 물건이 아니면 그럼 동물은 뭔데?”라고
따지고 싶어집니다.

하지만 참겠습니다. 따질만한 가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건 제가 동물을 사랑하지 않아서 따지고 싶은 게 아닙니다. 저는 강아지 정말 예뻐합니다.)

왜 안 따지냐구요?


일종의 선언적 규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규정만으로는 동물 피해에 대한 보상 액수를 올릴 수도, 동물 학대를 재물손괴가 아닌 동물살해 또는 동물상해로 처벌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규정만으로 동물이 주체가 되는 동물의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동물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분들도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동물은 본질적으로 권리를 가질 수 없기도 하고, 이 규정만으로 그렇게 해석할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적혀 있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민법은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법입니다. 그래서 민법에 무엇을 선언한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민법은 인간과 인간 외의 존재만을 존재로서 인정하고 있고, 인간 외의 존재의 전부는 물건입니다. 민법이 동물에 관해, “물건이 아니라.”라는 정도의 선언적 규정을 두는 것도 민법으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일이기 때문에 이 정도로도 따질 필요가 없을만큼 의미 있는 일입니다. 민법 개정은 동물을 바라보는 인식을 “물건”에서 “물건을 넘어서는 그 무엇”으로 옮겨보자는 캐치프레이즈 역할이랄까요? 현실적으로는 다른 관련 법들의 연쇄적인 개정을 이끌어 낼 수도 있고요. (민법에 이렇게 규정되어 있으니까... 이 법도 이렇게 개정하고, 새로 제정도 하자. 이렇게요...)


과학에서는 인간도 동물의 하나라고 하고, 동물도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도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동물이 자식과 다를 바 없고, 혹은 자식보다도 더 내 피붙이 같이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물이 가진 감응력, 인간과의 교감능력을 생각하면, 동물을 텔레비전 리모컨이나 바나나우유와 똑같이 판단하기에는 어딘가 죄책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요.


그렇지만 여전히 동물은 동물이고, 인간처럼 권리를 갖거나
동물 학대를 아동학대와 똑같이 처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본래 존엄하지 않은 이유를 다른 글에서 말씀드린 적 있습니다. 인간도 본래 존엄하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는 것만으로 존엄하고 인간으로서 기본적 권리를 누려야 하는 이유가 본질적으로는 없습니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매우 이기적인 입장에서 인간을 존엄한 것으로 보기로 하였고,
우리가 이 지구를 지배하기 때문에 인간이 존엄하다는 생각을 권력적으로 관철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동물권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동물권은 없습니다. 오히려 “동물을 사랑하는 인간의 권리”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동물을 사랑하는 인간의 마음과 인간의 권리가 과거보다 훨씬 존중받아야 한다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권력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인간은 동물을 인간의 친구로 선택했고, 지구를 지배하는 인간들이 동물을 다른 어떤 물건들 보다 더 존중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리고 우리 인간은 ‘할 수 있으니까’ 그 생각을 법으로 관철시킨 것뿐입니다.


저요. 송충이.  송충이도 물건 아닌 거 맞죠?!? 송충이도 강아지랑 똑같이 귀엽게 봐주시는 거죠? 송충이의 권리를 보장하라! 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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