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위한 사랑 한 입 01
잃어버린 엄마의 자존감을 되찾아줄 비밀 레시피
엄마를 위한 마법 카페에서 준비한 쿠키 한 입을 선물합니다 :-)
나를 위한 사랑 한 입
남편이 마냥 귀찮고 성가실 때
잊지 못 할 서운함, 그 애절한 기억
여자들은 임신 중에 서운했던 일을 평생 잊지 못 한다지요? 서운의 ‘서’자만 들어도 튀어나오는 애증의 사건! 그 애절한 기억이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두고두고 되뇌일 만큼의 특별한 사건 없이 무던한 임신 기간을 보냈는데요, 저를 대신해 잊을 수 없는 서운함의 대명사를 간직한 이는 바로 우리 집 남자랍니다.
격앙된 목소리와 벌게진 얼굴로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강조하는 그날의 사건은 아이가 태어난 지 두 달이 되었을 때 벌어졌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저는 눈곱만큼의 기억도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그의 기억으로 재현됩니다), 그날은 평소와 달리 일찍 퇴근을 했다고 해요. 그는 샤워를 하고 나와 수유를 하고 있는 제 곁으로 걸어왔는데, 제가 그랬다는 거예요. “왜 거기다 대고 재채기를 해?!!! 아기 손수건 위에 다 튀기잖아!”
아기 빨래를 널어놓은 건조대를 지나면서 크게 재채기를 한 남자. 아기 빨래에 감히 침을 튀긴 그를 노려보며 구박한 여자. 저는 기억이 전혀 없지만… (정말로요!) 제가 어찌나 눈을 부릅뜨며 발끈하던지 너무 서운해서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아니 내가 아기 빨래만도 못 한 존잰가?! 그까짓 손수건에 침 좀 튀긴 게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 아이에게 밀려 뒷방 신세가 된 건 어쩔 수 없다지만 아기 손수건만도 못 한 취급은 참을 수 없는 서러움이었다고...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이야기하고,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합니다. 그가 절대 잊지 못 할, 잊을 수 없는 궁극의 레퍼토리인 셈이죠.
출산 그다음, 진짜 리얼한 러브 스토리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종착역을 결혼이라 말하지만, 저는 낭만적인 연애와 사랑 그 후! 진짜 리얼한 러브스토리는 출산 후에 펼쳐진다고 생각해요.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연애 끝에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연애할 때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 했거든요. 하지만 아이가 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결혼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겨 가는 지역 이사 수준이라면, 출산은 지구에서 화성으로 옮겨가는 행성 이동 차원이랄까요?
출산 다음 날 아침, 간호사들은 배앓이에 관한 안내장과 예방 주사에 관한 안내장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지침이나 조언 없이 새 가족을 퇴원시킨다. 아기보다는 일반 가전제품이 더 상세한 취급 설명서와 함께 온다.
이 문장을 읽고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요. 정말 그렇지 않나요? 가전제품의 설명서가 더 자세할 지경!! 저는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 한채 집으로 돌아왔어요. 하루아침에 180도로 달라진 일상을 그저 간신히 버텨냈습니다.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육아의 세계는 극한을 넘어서는 차원이었어요. 먹고, 자고, 싸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조차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이라니! 남편은 바쁜 회사 일로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야 들어왔고, 거대한 아기 욕조에 물을 받아 나르는 일로 시작되는 아기 목욕도, 하루에 두 번씩 해야 하는 아기 빨래도, 단 5분도 누워서 자지 않는 아이를 안고 업고 달래서 재워야 하는 모든 일도 고스란히 나만의 몫이었습니다.
그는 가능한 많은 도움을 주려 노력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움일 뿐이었어요. 육아의 주체는 '우리'가 아닌 ‘나’ 한 사람이었고, 그의 참여는 조건이 허락하는 선에서만 발현되는 한정적인 손길이었습니다. 끝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고단함은 참을 수 없는 억울함으로 터져 나왔어요.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야 하지? 왜 나만 이렇게 망가져야 해?’
그를 향한 시기와 질투, 사라진 성욕
매일 아침 출근하는 그를 시기하고 질투했어요. 도저히 삼켜지지 않는 마음이 치밀어 오르는 날에는 그에게 울부짖었습니다.
“당신은 좋겠다. 그러고 나가면 사람들도 만나고, 차도 마시고, 밥도 먹고, 화장실도 갈 수 있지? 내가 하는 일은 말 한 마디 나눌 사람도 없는 골방에 처박혀서 화장실 한 번 마음대로 못 가는 일이야. 하루 24시간 퇴근도 없고, 끝도 없고, 단 2시간도 편하게 잘 수 없는 일. 내가 했던 모든 일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일. 내가 갖고 있던 모든 걸 잃어버려야만 하는 일. 하루아침에 내 모든 게 뒤집혀 버리는 일… 왜 나만 이런 일을 해야 해? 왜 나만 이렇게 달라져야 해? 나 혼자 만들어서 낳은 아이가 아니잖아. 우리 아이잖아. 당신 아이이기도 하잖아. 그런데 왜 나만 이렇게 추락해야 해?”
물론 그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 누구보다 열심히 애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건 그의 잘못이나 부족함이 아니라는 것, 이건 우리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치고 고단한 나에겐 화풀이의 대상이 필요했어요. 체력의 한계에 부딪힌 나에겐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이 발현될 여유가 없었습니다.
‘왜 그에겐 밤새도록 멈추지 않고 계속되는 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잠들 수 없는 고문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울컥울컥 분노의 감정이 치솟았어요.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며 자고 있는 그 모습이 어찌나 얄미운지!! “너는 참 잘 잔다! 너는 잘 자!! 코까지 골면서 아주 신나게 잔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그의 다리를 퍽퍽 걷어차며 한껏 비아냥거리곤 했습니다.(본인은 절대 몰랐겠지만요.)
상황이 이러한데 친밀한 스킨십이나 은밀한 접촉이 가당키나 하겠어요? 관계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커녕 찰나의 손길도 성가시기만 했지요. 나의 성욕은 상당히 오랜 기간 완벽하게 제로 상태였는데, 그런 시간이 지속될수록 죄책감이 쌓여 갔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잠자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건가? 이렇게 일방적인 관계 거부가 정당한 건가?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는 걸까? 아내로서의 직무 유기인가? 이것도 하나의 폭력일 수 있을까?’
출산 후, 오래도록 성욕이 생기지 않았던 이유
하루가 끝나면 대개 커스틴은 라비가 만지는 것조차 꺼려한다. 더 이상 그를 소중히 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또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더 내어주는 모험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다. 다른 사람이 옷을 벗겨주는 것이 특별한 기쁨으로 느껴지려면 먼저 어느 정도는 자발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많은 질문에 대답을 했고, 작은 발을 너무 여러 번 신발에 욱여넣었으며, 너무 많이 달래고 간청했다. 라비의 손길은 방치했던 내면과의 오래 미뤄둔 교감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이 더 많은 요구로 더 흩어지게 놔두기보다는 그녀 자신을 단단하고 조용히 붙들고 있고 싶다. 뭐라도 더 추가된다면 거미집처럼 얇은 사적 존재의 껍질이 부서질 기미다. 자기 자신의 생각을 다시 알 기회를 충분히 얻기 전까지는 그녀 자신을 타인에게 주는 것이 전혀 기쁘지 않다.
별별 생각을 다하며 괴로워하던 즈음, 소설인지 르포인지 모를 알랭 드 보통의 문장을 읽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앓던 이가 빠진 것 마냥 속이 시원해지는 감정이랄까요. 뿌옇게 시야를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걷히는 기분. 나보다 내 마음을 더 잘 알아주고 보여주는 작가에게 엎드려 절이라고 하고 싶은, 그런 심정이요!
“맞아 맞아! 그래그래! 이게 내 마음이었어! 내가 그랬던 거였어! 내 마음이 그랬던 거야!!!”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소리치며 마구 흥분했어요.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설명할 수 없는 순간, 막연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한 순간. 바로 이런 순간들을 부숴주는 한 권의 책을 만날 때면 참을 수 없는 짜릿함에 전율을 느낍니다.
알랭 드 보통이 제게 이야기했어요. 성욕이 생기지 않는 이유, 남편의 작은 손길마저도 반갑지 않은 이유에는 ‘잃어버린 나’가 존재한다고요. 체력 저하와 호르몬의 영향은 출산 후 1년여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었어요. 2년 후에도, 3년 후에도 지속되던 나의 상태를 설명할 길이 없어 막막하던 저에게 알랭은 말했습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라진 나를 되찾는 시간이라고, 한없이 부족하기만 한 나 자신과의 교감을 충전하는 일이라고요.
“당신은 내가 재밌는 줄 알지, 이 모든 게. 그렇지?”
그녀가 마침내 입을 여는데, 여전히 그를 보지 않는다.
“끊임없이 날 지치게 하고, 화나게 하는 어여쁜 두 아이와 신경쇠약 문턱까지 간 아주 흥미로운 남편을 건사하기 위해 내 경력의 황금기를 날려버리고 있는 게? 당신은 내가 열다섯 살에 저메인 그리어의 망할 <거세된 여성>을 읽을 때 이런 삶을 꿈꿨다고 생각해? 일주일 내내 이 집이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고 내 머리가 하잘것없는 생각들로 얼마나 복잡해지는지 알아?
- <낭만적 연애와 결혼,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은행나무
"그래도 지영아,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얻게 되는 걸 생각해 봐. 부모가 된다는 게 얼마나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이야. 그리고 정말 애 맡길 데가 없어서, 최악의 경우에, 네가 회사 그만두게 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책임질게. 너보고 돈 벌어 오라고 안 해."
"그래서 오빠가 잃는 건 뭔대?"
"응?"
"잃는 것만 생각하지 말라며. 나는 지금의 젊음도, 건강도, 직장, 동료, 친구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도, 계획도, 미래도 다 잃을지 몰라. 그래서 자꾸 잃는 걸 생각하게 돼. 근데 오빠는 잃는 게 뭐야?"
-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민음사
서양이나 동양이나, 이 집이나 저 집이나 아이를 낳아 키우는 여자들의 일상은 왜 이렇게 닮아 있는 걸까요? 먹이고, 씻기고, 치우고, 달래고, 어르고, 닦아대며 끊임없이 나를 지치게 하고 화나게 하는 어여쁜 아이들과 남편을 건사하기 위해 경력의 황금기를 날려버린 엄마들. 젊음도, 건강도, 직장도, 동료도, 친구도, 계획도, 미래도 잃어버린 엄마들의 마음속에는 성욕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거예요.
너무 크게 뚫려버린 내 가슴의 구멍은 섹스가 선사하는 강렬한 쾌감마저 지워버렸어요. 여자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너무도 많은 것을 잃어야 했던 내 가슴속에는 남자라는 이유로, 아빠라는 이유로, 나와는 너무도 다른 일상을 유지하는 그를 껴안고 어루만질 자리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연히, 그는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했다. 그와 커스틴은 결혼을 하고, 난관을 겪고, 돈 때문에 자주 걱정하고, 딸과 아들을 차례로 낳고, 한 사람이 바람을 피우고, 권태로운 시간을 보내고, 가끔은 서로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고, 몇 번은 자기 자신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짜 러브스토리다.
결혼과 출산, 그 후에 시작되는 진짜 러브스토리. 우리 부부의 진짜 러브스토리는 매년 스펙터클하게 펼쳐졌어요. 결혼을 한 그 해에 이뤄진 임신과 출산, 극심한 우울증. 보다 안정적인 환경을 위해 첫 번째 직장을 떠나 이사를 했지만 이내 주말부부와 권태기가 이어졌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선택한 결과는 또 한 번의 퇴사와 편의점, 평일 중 이틀은 아빠가 아이를 돌보는 일상, 평일 중 이틀은 엄마가 자유로운 우리만의 일과였습니다.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 아이가 아빠와 둘만의 데이트를 즐기며 추억을 쌓는 동안 저는 내 꿈을 위한 실천을 시작했어요. 혼자만의 시간이 더해질수록, 내가 읽은 책이 많아질수록, 내가 쓴 글이 풍성해질수록 내 마음의 구멍이 작아졌어요. 뻥 뚫린 마음이 채워지는 만큼 그를 향한 관심과 애정이 커져갔고,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다시 가까워졌습니다.
완벽한 행복은 아마 한 번에 5분이 채 넘지 않을, 작고 점진적인 단위들로만 찾아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이 순간은 두 손으로 붙잡아 소중히 간직해야 할 행복이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되자 그동안 바라봐 주지 못 했던 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내 옆에서 곤히 잠든 그의 얼굴, 아이를 바라보며 활짝 웃는 그의 표정, 내 눈을 응시하는 그의 눈빛...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찰나의 반짝임이 아스라이 떠오르자 암흑 속에 숨어있던 그의 아픔과 고뇌가 드러났습니다.
‘이 사람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사람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나도 지친다, 나도 피곤하다, 한마디 말도 못 한 채 얼마나 외로웠을까.’ 분주하게 일터로 향하는 그의 뒷모습을 볼 때마다 아린 가슴을 부여잡고 고민했어요. 그를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