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불안함은 7살 무렵이었다. 깊은 밤이었고 나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아빠가, 왼쪽에는 엄마, 그리고 엄마의 옆에는 여동생이 자고 있었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여동생과 다르게 나는 좀처럼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였다. 엄마한테 혼날까 봐 자는 척하고 있다가 모두 다 잠들어 숨소리가 안정되면 슬그머니 이불 밖으로 얼굴을 꺼냈다. 계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있을 수 있었던 것을 떠올려보면 여름은 아니었을 것이다.
눈이 어두운 방에 적응을 하고 나면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큰 자개장의 자개들이 푸르스름한 달빛을 받아 번쩍이는 것이 보였고 이제는 사라져 버린, 한 가지 모양이 반복적으로 인쇄되어 있는 문양의 벽지가 점점 선명해졌다. 반듯하게 누워서 바라본 천장 벽지에는 아메바 형상 같기도 지렁이 같기도 한 것들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그것들을 계속 보고 있다 보면 몸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그 무늬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빨려 들어간 내 영혼이 마치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 난 분명히 아빠와 엄마 사이에 누워 따뜻한 바닥에 등을 대고 있는데, 누워있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종종 무서운 생각이 들면 팔로 눈을 가리고 잠에 들곤 했는데 엄마가 그렇게 얼굴을 가리고 자면 밤에 잠시 놀러 나간 영혼이 얼굴을 못 봐서 다시 몸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말은 한 적이 있었다. 손을 얹고 자는 습관을 고쳐주려고 그랬던 것인지 엄마도 어릴 적부터 들었던 말을 그냥 생각 없이 나에게 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후자였을 수도 있겠다. 엄마는 지금까지도 종종 팔을 얼굴에 얹고 눈을 가리고 잠드니 말이다. 어리던 나는 무서웠지만 유랑하던 영혼이 멀리 떠나가서 다시 나를 찾아오지 못할까 봐 이불속으로 숨을 수도 없었다. 내 영혼이니 나를 공격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마주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자체가 무서운 일이었다.
영혼은 나에게로 돌아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누워있는 내가 볼 수 없는 장면들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낮에 일어났던 일의 어떤 장면이기도 했고 우리 집 마당의 모습이기도 했다. 분명 나는 볼 수 없는데. 저 영혼은 나가서 돌아다니고 싶은 건가. 이런 생각도 했다. 저것이 나를 떠나가버리면 나는 죽는 건가. 그럼 내 몸이 죽어서 저것이 다시 나에게 못 돌아오면 쟤는 어디로 가지? 사람이 죽는다는 건 이런 건가? 몸에서 나온 영혼들이 내 눈에 안 보이지만 여기를 마구 떠다니고 있다는 건가. 내가 죽고 나면 남은 우리 가족들은 나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여기서 똑같이 살아가는 건가. 내가 하나 없어도 이 공간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겠구나. 어렴풋하게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나는 거의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그 생각에 사로잡혀 골똘히 생각하고 불안해했다.
답이 없는 질문을 혼자 며칠을 품고 있다가 결국 나는 매일 밤 숨죽여 울었다. 마음이 말할 수 없이 외로웠고 힘들었고, 누군가한테 다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왜 그랬는지 나는 이 얘기를 마흔이 넘은 지금에서야 털어놓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 무렵 막냇동생이 엄마 뱃속에 있었거나, 아니면 태어났을 때가 아닌가 싶다. 여동생이 있었지만 연년생이니 내 여동생은 이미 내가 나 자신과 세상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함께한 존재였다. 껄끄럽거나 질투를 느끼거나 무언가를 뺏으려고 나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칠 남매의 막내딸인 엄마가 낳은 첫 딸이었고 네 형제 중 가장 먼저 결혼을 해서 친할머니에게 첫 손녀딸이었으니 정말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 자랐을 것이었다. 낯가리는 여동생에 비하면 수월하고 주는 대로 잘 먹고 잘 노는 아이였을 것이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여섯 살 어린 남동생이 태어난다는 사실에 나의 존재가 위협받는다고 느꼈던 것을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을 해 볼 뿐이다.
그 뒤에 어떻게 그 두려움을 이겨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불안은 사소하게 나와 함께했다. 이걸 먹기 싫은데 안 먹어서 혼나면 집안 분위기가 이상해지겠지, 아빠가 오늘도 술을 드시고 와서 엄마가 화내면 어쩌지, 약속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버스가 제시간에 도착을 하지 않으면? 친구가 이 선물을 좋아하지 않으면? 나를 끼워주지 않으면?… 하는 부류의, 사소하고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는 불안들. 하지만 이런 정도의 불안은 일상적이었고, 이 불안함으로 인해 오히려 신중하고 미리 대비하는 성격이 되었으니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친구들과 조금만 대화를 해봐도, 텔레비전을 틀어 멋지고 아름다운 연예인들을 봐도, 그들에게도 불안은 늘 따라다니는 것이었으니 오히려 이것이 정상이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 나를 불안의 소용돌이에 깊게 처박은 것은 임신과 출산이었다.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