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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erulean blue Jan 29. 2022

불안함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2)

절정은 출산 후에 왔다. 열두 시간을 진통하고 낳은 아이는 정말 작고 작고 작았다. 젖을 물리려고 품에 안았는데 과연 내 가슴에 이 아이가 짓눌리지 않고 무사히 젖을 빨 수는 있는 것인지, 저 작은 콧구멍으로 과연 숨은 쉬는 것인지, 버둥대고 있는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 같은 다리를 잡고 기저귀를 갈 때 다리뼈가 부러지지는 않을지… 아마 거의 모든 산모들이 겪었을 불안이었을 테다.


옆에 두고 재우다가 내가 아이를 눌러서 질식하게 할 수 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분리 수면을 시도했지만 나는 결국 아이의 발치를 서성이다가 피곤이 극에 달했고 차라리 아이 옆에서 긴장한 채로 쪼그리고 잠을 자는 것을 선택했다. 그 불안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기질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소리에 예민하고 잠이 얕은 아이를 키우며 담대하고 느긋한 엄마가 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하는데 정신이 이상한 자가 갑자기 다가와 나와 아이를 해칠 것 같은 공포,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에도 유모차가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아 발 한쪽이라도 바퀴 옆에 바짝 대고 있었고 더 나아가는 내가 이 아이를 성인이 될 때까지 책임지고 먹이고 키워야 하는 압박감도 느껴졌다. 나도 아직 미숙하기 짝이 없고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애어른인데 내가 누군가를 바르게 자라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사실은 숨이 막혔다. 그때 나는 매일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 한없이 소중하고 작은 아가한테 사랑한다고 말했고, 설명할 수 없는 슬픔에 빠져 굵은 눈물방울을 쉴 새 없이 아이의 얼굴에 떨어뜨렸다.


내가 겪은 증상이 산후 우울증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시간이 한참 지나서였지만 그걸 안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형체모를 감정에 이름을 붙였을 뿐, 양가의 도움을 요청할 수 없고 남편은 자정이 될 무렵 퇴근하고 낡고 좁은 집에서 아이를 혼자 키워야 하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 말고는 기억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간들을 지나 어느덧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게 되며 여유 시간이 생겼을 때도 우울감에 깊이 잠식되어있던 나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집안일을 해놓고선 죽은 듯이 누워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외출을 해봤자 커피 한 잔 하러 나가는 것이 전부였고 그것도 사치스러워 고민하다 나가야 했다. 더 넓고 깨끗한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고 아이가 더 많이 자라고 남편도 저녁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날들이 늘어났다. 이사하고 옮긴 어린이집에 적응을 하지 못한 아이를 일 년 반 동안 집에 데리고 있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모든 게 천천히 자리를 잡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달 뒤 나는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을 먹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흔히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한다. 우울증을 감추어야 하는 질병으로 여기지 말고 감기처럼 드러내고 치료받아도 된다는 의도에서 사용한 표현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울증을 감기라고 표현하는 방법은 많은 경우에 틀렸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우울증은 감기보다는 만성 비염 같은 존재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했다. 적절한 대비와 규칙적인 생활로 예방할  있는 감기 같은 것이 아니라, 계절이 바뀌고 환절기가 되면 찾아오거나 특정한 환경이 조성되면 여지없이  안에 숨어있다가  모습을 드러내는 비염.  시기만 지나가고 다시 계절이 바뀌면 사라질 테니 약을 먹지 않아도 될 거야 라며  밑이 헐도록 휴지로 콧물을 닦아내며 기다리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되면 그제야 병원을 찾아보는 비염. 그렇지만 항히스민제를 받아도 비염은 치료되지 않고 약을 먹는 동안은 미친 듯이 졸려서 일상생활에도 지장을 주는 그런 비염 말이다.


남편은 나의 우울증을 산후우울증에서부터 시작되어 오랜 시간 독박 육아를 하고 쪼들리는 살림살이에 치여 생긴 그런 것으로 이해를 했으니 절반은 맞고 절반을 틀린 것이었다. 애초 나의 우울증은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불안에서 태어난 것들이고  불안들을 한 번도 제대로 다스려 본 적 없으니 우울증 역시 다스릴 방법을 몰랐다. 남편이 아이를 돌볼 테니 밖에 나가서 놀다 오라고 나를 문 밖으로 떠밀어도 가까이 사는 친구 한 명 없고 마침 전 세계를 뒤덮은 코로나 때문에 혼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 것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여행은 당연히 상상도 해 본 적 없으며, 혼자서 영화를 보려고 영화표를 예매했다가 갑자기 아이가 아프거나, 유치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해서 예매를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나 혼자만 시간을 낸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기껏해야 집에서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었고 남편이 더 놀다 오라고 메시지를 보내면 전혀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현실이 저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깨닫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돌아가면 왜 이렇게 일찍 왔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남편은 안도하는 듯 보였다.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들어와서 옷을 벗고 가방을 정리하는 사이, 아이가 나에게 달려들어 엄마 보고 싶었어 안아줘~ 하는 사이, 남편은 몸을 뉘었다. 그도 역시 무의식적으로 내가 집으로 돌아왔으니 자신의 역할이나 자신의 의무가 끝났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것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표현되는 그런 사소한 부분들은 나만 아는 것이었고 입 밖으로 내기에는 구차하고 치사했다.


어떤 특정한 큰 사건이 계기가 되어 마음이 부서지고 자신을 방어하는 방법을 도저히 모르겠어서 무너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일상에서 사소하게 조금씩 파괴되었던 나의 존재감을 찾는 것은 약이 아니었어야 했다.


가령 이런 것이다. 식당에 가서 메뉴를 고를 때 아이와 함께 먹어야 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어서 우선적으로 메뉴를 고르며 “나는 짬뽕!”이라고 외칠 수 있는 그 위치를 나도 회복하고 싶은 것이었다. 어느 식당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와 함께 먹어야 하니까 고른 메뉴는 대체로 나의 입맛에 맞지 않았고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먹고 나서도 공허했다. 오히려 나 혼자 끓여먹는 컵라면이 더 온전하게 맛있었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사주는 좋은 음식은 맛있게 먹지 않고 집에서 반찬도 꺼내지 않고 컵라면 하나만 후루룩 먹는 내가 이해가 안 가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당연한 남편의 감정 역시, 네가 내 입장이 결코 될 수 없음에서 나오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내 공간에서 오롯이 나로 있을 수 없음이 내가 사라져 가는 느낌을 들게 한 것이었기 때문에 밖에 나가서 쇼핑을 하고 친구를 만나면서 나를 되찾는 게 아니라 내가 가장 좋아하고 편하게 느끼는 나의 공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하는 것, 그래서 비로소 이 공간에 나도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는 것이 필요한 것이었다.


남편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다정하고 나를 위하는 마음이 가득하지만,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나를 들여다보려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어쩌면 그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 아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떠오르지 않거나, 해봤는데 모르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그에게도 그렇게 회복해야만 하는 어떠한 공간이나 부서짐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내가 나를 잃어가고 있고 희미해져가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우울함이 조금 옅어지는 것을 느낀다. 이것이 일상이구나. 이런 것들을 다 끌어안고 살아야 아니, 어느 정도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렇다면, 아마 내가 느끼는 우울함은 나의 변화된 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전히 예전의 삶을 그리워하는 그 괴리에서 발현된 것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도달하게 된다. 나는 왜 이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이렇게 스스로 괴로워하는 것일까, 라며 또다시 괴로워하다 보면 그야말로 다람쥐가 쳇바퀴 도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마치 우울하기 위한 구실을 찾는 것처럼,  강아지가 제 꼬리를 물기 위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그래서 나는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 우울감을. 나의 불안들을. 나의 성격을.

고민이 많고 걱정이 많고 불안해하지만 그에 비해 그렇게 큰 사건 사고가 없었던 지난 40년을 되돌아보며, 지난 40년이 앞으로 내가 조금 더 안심을 해도 되는 이유이자 근거라고 생각해보며, 우울함과 함께 사는 방법을 택했다. ‘나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고 우울한 생각들만 하지?’ 하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을 ‘그렇게 걱정하고 우울해했어도 여태 잘 해왔어.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라고 바꾸는 연습을 해보며.


우울함에 잠식되어 있는 자신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다가 그 무게에 짓눌리는 사람들이 조금 더 마음을 가볍게 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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