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의 길 위에서, 다시 꺼내보는 선택과 존경의 조각들
스무 살이 훌쩍 지나고, 그 시절 함께했던 대학 동기들과 선배들을 다시 만났다. 같은 꿈이었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문화예술이라는 단어 앞에서 제각기 다른 열망을 품고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었던 사람들. 나는 이 모임을 언젠가 한번쯤 다시 보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이 만남을 한번쯤 꺼내야 할 것 같았고, 우리가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메신저를 통해 몇몇에게 연락했고, 그렇게 토요일 오후 4시에 우리는 다시 마주 앉게 되었다. 처음엔 어색하게 다시 자기소개를 하고,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짧게나마 요약해 이야기해야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삶은 여전히 정신없고 바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우리는 서로를 향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 업계에서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먹고 살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서로를 칭찬하게 된다.
문화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비주류의 삶을 택한 우리는, 어쩌면 버티는 것 자체가 일종의 자격 같은 것이다. 나 역시 여전히 이 선택 안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선하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믿는다.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며, 내가 먹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요즘 더 자주 생각한다.
최근 들어 자주 20살의 나와 마주한다. 서른을 넘고 마흔에 가까워진 지금, 그때의 내가 했던 결심들, 혹은 하지 못했던 결심들을 곱씹는다. 그 시절의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뭘 하고 싶은지도 잘 모른 채 학교를 정하고, 학과를 택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내가 선택한 인생이었을까, 아니면 주어진 인생을 살아낸 것일까. 봄이 되어서일까. 요즘 부쩍 흔들린다.
하지만 이제야 조금씩, 그런 나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무모했고, 서툴렀고, 때론 외면했던 나를. 그래도 그 시절의 내가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애틋하게 인정할 수 있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