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대한 불만이 일상에 독가스처럼 곳곳에 자욱하게 가라앉아 있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이렇진 않았는데. 나는 내게 주어진 것에 굉장히 만족하며, 감사하며 행복해하며 살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 예기치 못한 변화가 찾아왔고, 나는 내게 주어진 스트레스와 고난에 허덕이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치니 평소라면 그냥 넘어갈 일도 짜증이 났다. 모든 것이 아니꼽게 보였다. 사람들이 싫어졌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 힘든 건 난데,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고 행동하지? 모든 사람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신물이 났다. 나는 나 스스로가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는 것에 일말의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지만 배려심은 스스로가 힘든 상황일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배려하는, 착한, 선한 사람'이라는 캐릭터로 자리 잡아 버린 것에 큰 후회가 밀려왔다. 사람들은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어쩌다가 한 번 배려심 있는 행동을 하면 감동받지만, 언제나 배려심 많게 행동하는 내가 어쩌다가 한 번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을 하면 실망한다. 심지어 화내기까지 한다. 이런 이중적인 잣대를 들이대는 인간들이 너무 싫어졌다.
나는 내가 싫어하는 인간들에게 어떤 말과 행동으로 벌을 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또 너무 나쁜 말은 하기 싫어서, 어떤 말로 나의 기분 나쁨을 나름 착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고르고 골랐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골치 아팠지만 나는 인간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복수심에 불타올라 씩씩거리며 이런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가 실제가 아닌 상상 속에서 끊임없이 이런저런 말로 화를 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사람은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줄 전혀 모를 텐데, 내 마음속에서는 온갖 종류의 욕과 비난이 떠다니고 있었다. 결국 나는 지금껏 내 마음만 더럽히는 방법으로 내가 받는 스트레스에 장작불을 활활 지펴왔던 왔던 것이다.
얼마 전 봤던 글을 통해 알게 된, 화나는 상황에 대한 현명한 대처법이 있다. '화가 날 때 하는 말은 스스로가 두고두고 후회할 말들일뿐'이라는 것이다. 화가 날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단 기다려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성적인 사고가 돌아온다. 감정으로부터 떨어져서 다시 생각하고 대화하면 절대 수용할 수 없었던 사안도 어떤 기발한 방식으로 해결점을 찾게 된다.
이에 따르면 화가 날 때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그리고 나서가 잘못됐다. 나는 이 상황에 대한 이성적인 사고로 생각의 흐름을 바꿨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엉뚱하게도 일을 더 감정적으로 끌고 나갔다. 내가 상대방에게 내 화난 감정을 전달하고 싶어서 어떤 말을 할까 고르고 골랐던 말들은 결국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런 식으로는 나의 화난 감정도, 힘든 이 상황도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지금껏 내가 힘든 이유를 외부에서 찾고 있었다. 나는 아무 잘못 없이 착하게 열심히 살아왔으니 모든 것은 상황 탓, 남 탓인 게 당연했다. 힘들 때 내 탓이 아닌 남 탓을 해야 편하다는 말에 속아 나는 나 자신을 스스로 더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은 고통 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 그러려면 내 생각을 바꿔야 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내 마음만 안 좋아지는 법이다. 타인을 미워하는 마음보다 자신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더 크게 가져가야 한다. 꿋꿋이 나 자신을 지켜나가려면 나는 화나는 감정에서 벗어나야 나 자신이 더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물론 화난 당시에는 이게 어렵다. 하지만 화내서 나에게 득 될 것이 무엇인가? 이미 그 사람은 나를 화나게 하는 말을 했고, 일은 이미 벌어졌고, 나는 최대한 나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나 자신을, 이 상황을 이끌어나가야 한다.
그리고 내가 인간관계에서 항상 생각하던 건데 잠시 잊고 있던 말이 있다. '그 사람이 그게 잘못인 걸 아는 사람이면 애초에 그렇게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거다. 누군가 기분 나쁜 말을 했을 때, 그 사람에게 그건 상대에게 잘못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그 사람은 그저 원래부터 그런 것도 모르는 한심한 인간이다. 그러니 그 사람에게 뭘 일깨워 줄 필요도 없고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된다.
내 인생을 관통하는 가치관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삶이 힘들고 우울의 끝이 보이지 않을수록 나는 남보다, 상황보다 나 자신을 파고들어야 한다. "Love yourself"는 결코 나 자신의 모든 것을 좋아하라는 뜻이 아니다. 자신을 소중히 하라는 거다. 내가 처한 상황, 나 자신의 모습,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이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내가 싫어하는 나의 운명들은 결코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더 싫어지니까. 살다 보면 나의 모든 게 싫어지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 억지로 나 자신을 좋아하는 척하지 말고 그냥 아껴주라는 거다. 나는 소중하니까. 그래도 끝까지 나 자신을 돌볼 사람은 나뿐이니까. 남이 아니라 내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