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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mian Jun 21. 2021

엄마

꽃을 닮은 엄마

나이가 들어가니 꽃이 좋아진다. 꽃밭에 들어가 턱받침을 하고 사진을 찍지는 않으나, 예전에 비하면 길을 걷다, 무심코 지나던 꽃잎에 코를 대고 향기를 맡거나, 마음에 드는 꽃은 인터넷을 뒤져 이름을 외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알게 된 꽃이 명자꽃이다. 내친김에 꽃 말을 찾으니 평범, 겸손, 열정이란다. 겨울을 막 지나고 얼마지 않아 평범하게, 겸손하게, 열정적으로 태어난 명자 꽃을 산책길에 만나게 됐다. 붉지만 붉은 기를 밖으로 내비치기보다는 꽃잎 안으로 숨겨, 그 색은  완전히 붉지 않다. 울타리로 세운 초록의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명자꽃의 정열에 흠뻑 빠져 들었다. 나는 이 꽃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

부전자전, 모전여전이라는데 나는 아마도 꽃을 좋아하는 엄마를 닮은 듯하다. 모전자전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유독 꽃 속에 파묻힌 엄마가 눈에 띈다. 어떤 날은 개나리, 어떤 날은 진달래, 또 다른 날은 동백이다. 그러고 보니 집의 벽지도 은은한 꽃잎 장식이고, 커튼도 꽃무늬가 들어가 있다.

봄 볕이 들기 시작하면, 엄마는 바빠졌다. 베란다에 놓인 화분을 정성을 다해 돌봤고, 그런 뒤면 꽃잎이 하나 둘 만개해갔다. 어느 날은 철쭉이 꽃잎을 보이고, 어떤 날은 제라늄이 그리고 드물게는 선인장이, 노랗고 붉은

꽃을 피워냈다.


가을 볕을 담은 울안의 동백 

엄마가 떠나도 꽃은 남았다. 햇빛이 잘 드는 봄날의 베란다는 엄마가 떠나기 전의 그 모습으로 꽃을 피우고 낙엽을 떨군다. 변한 건 없다. 엄마만 없다.

소중했던 누군가 곁을 떠나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는 걸 알게 된 그날 , 난 심한 상실감에 빠졌다. 소중한 이를 잃은 모든 사람들은 그런 순간을 겪게 될는지도 모른다. 모든게 함께 멈춰야만 할 것 같은 억울한 심정.

돌아오지 못할 걸 알지만 왠지 그런 종류의 이별은 현실감이 없어,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와 줄 것만 같은 막막한 기대감. 수십년, 한평생을 함께 한 그런 사람이 어느날 홀연히 -연기처럼 사라진다는 말을 체험하게 하는-그렇게 사라져감을 인정해야 하는 날, 그런 날에 꽃을 본다. 

난 어느 날부터 세월이 감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어쩌면 이 세상 이후의 그 너머에는 누군가를 생생하게 만날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생겼다. 겨울을 견딘 연하디 연한 꽃나무가 잎을 피우고, 꽃을 피우며 세월에 순명하는 그 모습에서, 꽃을 닮은 엄마가 다시 꽃으로 피어날지도 모른다는 그리움을 갖는다. 가슴뛰는 봄날, 엄마의 체취가 묻은 베란다에 앉아 그렇게 얘기한다." 엄마, 엄마는 좋겠다, 늙지 않을테니, 내가 알아 볼 수 있게 그 모습 그대로 있어줘. 거기도 꽃은 피나, 엄마가 좋아하는 동백이나 그런 꽃들이 거기도 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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