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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소로 Dec 23. 2018

미역국 졸업식

빈자리에 돋아날 봄을 기다려요.  


미역국을 좋아합니다.


누군가의 생일도 아니고

이유 없이 허전한 날이라도   

건미역 한 줌을 물에 불려두면

적당한 온도의 물속에 잠겨   

목욕하는 기분도 나고요.


천천히 끓도록 기다리면     

한 줌 미역이

냄비에 한가득 차오르는      

기적이 일어나지요.    


우주가 세상에 나오고

삼십일, 하루 세 번

깊고 깊은 미역국에

나를 푹 담갔습니다.  


한 그릇 미역국은

열 달의 두근거림이

빠져나간 배를
가만히 다스려주었어요.   


어제는

미역국을 졸업했습니다.  

   

이젠 먹지 않아도 괜찮다니

개운하고도

서운한 마음이 밀려왔어요.


천천히 시작해야겠지요.   

멈춰둔 집안일

혼자서 하는 외출

우주와 함께 하는 일상

받아들여 가는 시간     


그러고 보니

태어나고 1, 2주 안에

덜컹덜컹 떨어진다는 배꼽이요.


우주의 배꼽은

여전히 남아있어요.

우리를 이어준 고마운 자국과  

아직 헤어지기 싫은 걸까요?  


미역국도 배꼽도

졸업한 빈자리에  

곧 봄이 돋아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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