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16)

by 김흑곰

첫 번째 전시회가 막을 내렸을 때, 내 마음속엔 뿌듯함보다 아쉬움이 더 짙게 고여 있었다.


마지막 날 겨우 전시장 구석을 서성였던 그 짧은 발걸음이, 어쩌면 내 생애 다시없을 유일한 경험일지도 모른다는 미련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삼키며 일상으로 돌아온 지 불과 몇 달 뒤, 기적처럼 두 번째 기회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전시뿐만 아니라 내 이름이 박힌 ‘책’을 낼 수 있다는 믿기지 않는 소식과 함께였다.

브런치 4.jpg


비록 개인 저서는 아니었지만, 내 이름 석 자가 들어간 책을 갖는 것은 내 몇 안 되는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그 기회가 예고도 없이 덜컥 찾아오니 기쁨보다 어안이 벙벙한 기분이 앞섰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그때부터 지독하게 예민한 창작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전시용 글과 책 원고를 따로 준비하며 나는 마침표 하나, 줄 간격 하나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짧은 글 세 편을 보내는 데 무려 세 시간이 꼬박 걸렸던 기억이 난다.

좀 심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다른 분들은 이미 제출을 마쳤는데, 나만 마감 당일까지 ‘이게 좋을까, 저게 나을까’ 망설이며 담당자님께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냈다. 수정본을 보내놓고도 아까 그 버전이 더 나았던 것 같다며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은 스스로 보기에도 참 애처로웠다.


책이 나온다는 사실은 설렘을 넘어, 내 머릿속을 심장 박동만큼이나 거센 울림으로 가득 채웠다.


전시가 시작되고 지인과 함께 전시장을 찾았을 때는 정말 부끄러워서 미칠 것만 같았다.


전시장 입구에서부터 “내 글은 별로 안 좋을 수도 있어, 그냥 다른 분들 글 보러 왔다고 생각해”라며 끊임없이 방어막을 쳤다.

브런치 3.jpg

막상 들어가서도 내 글을 찾기보다는 타인의 유려한 문장들을 훔쳐보며 짐짓 모르는 척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결국, 피할 수 없이 마주하게 된 나의 글.


너무나 익숙해서 반갑지만, 동시에 온몸이 배배 꼬일 만큼 낯부끄러운 문장들이 거기 있었다.



지인은 좋다고 격려해 주었지만, 정작 나는 그 자리에서 내 글의 ‘한계’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나도 이제는 우울한 그림자에서 벗어나, 조금 더 밝고 다채로운 색채를 써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깊게 자리 잡은 우울 때문이었을까. 밝은 문장을 쓰려고 하면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브런치 1.jpg


분명 내가 살아오며 느껴본 감정들인데, 왜 글로 옮기려 하면 이토록 이질적인지 의문이 남았다.


결국 펜 끝에서 흘러나오는 건 다시 내 마음을 대변하는 어둡고 조용한 문장뿐이었다. 이번 전시는 그런 나의 약점과 진솔하게 대면할 수 있었던, 조금은 쓰린 거울 같은 자리였다.


전시가 끝나고 책이 나왔을 때, 기쁨보다 어색함이 먼저 찾아왔다.


먼 훗날에나 가능할 일이라 생각했던 풍경이 지금 내 눈앞에 실재한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지인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하다 보니, 정작 내가 간직할 책은 가장 나중에야 구매하게 되었다.


브런치 5.jpg

지금도 내 책장 한쪽에는 그 책이 고이 모셔져 있다.

삶이 고단하거나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나는 그 책을 꺼내 본다. 그 안에는 서툴지만 치열했던 나의 계절이, 그리고 내 이름 석 자가 선명하게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완벽하지 않은 문장들이지만, 그 어설픔조차 오롯이 나였음을 이제는 조금씩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요일 연재
이전 29화모래성(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