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13)

by 김흑곰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사실이 무색하게도, 내 기억 속엔 남산타워나 63빌딩 같은 상징적인 장소들이 비어 있었다.


남들에겐 여행지이고 데이트 코스인 그곳들이 나에게는 그저 tv나 영상속 에서 본게 전부였다.

당시의 내 삶은 일 과 집이라는 두 점 사이를 무한히 반복하는 단조로운 선에 불과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여름날,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남산타워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화면 속 풍경이 문득 낯설게 다가왔고, "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이내 실행으로 옮겨졌다. 다음 날, 나는 무작정 카메라를 챙겨 들고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 문이 열리자마자 한여름의 맹렬한 태양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정수리가 뜨겁게 달궈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지만, 처음 가보는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더위를 앞섰다. 케이블카 승강장 앞에서 잠시 고민했지만, 나는 오르막길을 선택했다.


기계에 몸을 싣고 빠르게 올라가는 것보다, 내 발로 직접 그 풍경의 질감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스팔트 위로는 아지랑이가 일렁이며 세상의 형태를 흐릿하게 흔들어 놓았고, 길가 풀숲에서는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계절의 절정을 노래하고 있었다.


땀방울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면 '그냥 케이블카 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나무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서울의 조각들이 너무나 아름다워, 나는 숨을 고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남산 1.jpg

숨을 헐떡이며 마침내 도착한 정상. 난생처음 마주한 남산타워는 생각보다 훨씬 웅장했다.

벤치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전망대에 올랐다.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세상은 생경했다. 나를 짓누르던 거대한 빌딩들이 발밑에서 장난감 블록처럼 작게 엎드려 있었고, 그 위로는 끝없이 투명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전망대를 내려와 난간을 가득 메운 '사랑의 자물쇠'들을 구경했다.

수많은 사람의 이름과 고백이 빽빽하게 묶인 모습은 기묘하면서도 다정했다. 혹시나 아는 이름이 있을까 찾아보기도 하고, 귀여운 메시지들을 읽으며 혼자 웃음을 짓기도 했다.


시원한 음료 한 잔을 사 들고 나무 그늘 아래 자리를 잡았다. 누가 내 고개를 짓누르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동안 하늘 한 번 보지 못하고 살았을까. 그날 나는 그동안 못 본 하늘을 한꺼번에 보상받기라도 하려는 듯, 눈이 시리도록 파란 허공을 실컷 눈에 담았다.

어쩌면 남산타워가 가고 싶었던건 하늘을 보다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던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남산 2.jpg


내려오는 길, 길목마다 마주친 고양이들은 마치 길을 안내하듯 앞장서다 멈추기를 반복했다.

일할 때는 늘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내가 좋아하는 것은 천천히 걷는 일임을 그제야 깨달았다.


만약 내가 편안한 케이블카에 몸을 맡겼다면, 길가에서 졸고 있던 고양이도,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던 햇살도 모두 놓쳤을 것이다.


가끔 삶이 나를 서두르게 할 때, 나는 그날의 남산을 떠올린다. 목적지에 일찍 도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가는 길에 놓인 작은 풍경들을 놓치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날의 무모했던 산책은 나에게 '멈춰 서서 바라보는 법'을 가르쳐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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