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민페짓 이후
내 삶의 시계는 다시 멈춘 듯했다. 아니, 정확히는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지독한 우울의 늪이 다시 발목을 잡아끌었고, 그 안에서 허우적거릴수록 불안이라는 괴물은 몸집을 불려 나갔다.
증세가 심해질 때만 비상용으로 먹으라며 의사 선생님이 챙겨주던 약은, 어느새 비상용이 아닌 일상식이 되어 있었다. 매일 아침 약봉지를 뜯으며 생각했다.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결국 청과점 일도 내려놓아야 했다. 다른 일을 구한다는 핑계로 집에 머물렀지만,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낮에는 방 안의 공기조차 무거워 하루 종일 누워만 있었다. 그러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한낮의 무기력했던 내 모습이 칼날이 되어 가슴을 후벼 팠다.
한심함, 자책, 원망. 그 감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잠은 이미 사치가 된 지 오래였다.
누군가는 내게 독설을 내뱉기도 했다. "그건 네 정신력이 약해서 그래. 정신머리가 썩어서 그래.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면 그런 잡생각 안 들어. 다 괜찮아져." 하지만 나는 안다.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 그 말은 가혹한 오답이었다.
나는 집-직장-집을 반복하며 밥 먹을 시간조차 아껴 잠을 청할 만큼 치열하고 바쁘게 살았었다. 약 기운에 취해 몽롱한 정신으로도 점심을 거르고 쪽잠을 자며 버텼던 날들이 있었다.
내가 게을러서, 혹은 여유로워서 우울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 몸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백화점 의류 매장에서 단기 알바를 할 기회가 생겼다. 그곳은 유독 손님이 없어 고요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서서 보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 의지도, 필요도 없는 시간. 나는 그저 내 곁에 선 마네킹과 다를 바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 생기 없는 눈빛.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너무 차가워 보여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보려 했지만, 얼굴 근육은 마치 남의 것인 양 어색하게 떨리기만 했다.
웃는 법조차 잊어버린 것 같아 서글퍼졌다.
며칠째 되던 날, 대충 끼니를 때우고 매장으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가슴 언저리에서 다시 스멀스멀 불안이 올라왔다. 이유도 없었다. 그냥 이대로 내가 사라질 것 같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유튜브에 '불안 해소하는 법'을 검색했다. 화면 속에는 뻔한 호흡법이나, 병원에 와서 상담받으라는 식의 영상들만 가득했다. 그러다 어느 영상 하나를 무심코 멈췄다.
영상 속 진행자는 불안장애의 정의를 설명하더니,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없어요."
그 짧은 세 글자가 내 귓가를 때리는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이어 말했다. 당신이 걱정하는 그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고, 실체가 없는 허상일 뿐이라고. 그러니 괜찮다고.
그 순간, 억눌러왔던 무언가가 툭 하고 끊어졌다. 백화점이라는 탁 트인 공공장소였지만,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화장실로 달려갈 여유도 없이, 나는 그 넓은 백화점 한복판에서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짓씹었다.
사실 나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아직 벌어지지 않은 허구라는 걸. 하지만 불안이 덮쳐오면 이성은 마비되고 패닉에 빠져버리고 만다.
그런 내게 "없다"라는 그 확신에 찬 말은, 그 어떤 전문적인 치료법보다 강력한 구원이었다.
마네킹처럼 굳어있던 내 마음의 틈새로 아주 작은 온기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아직 나는 여전히 불안하고, 내일이 무섭지만, 적어도 오늘 내가 흘린 눈물만큼은 가짜가 아니었다.
그 세 글자의 위로를 붙잡고, 나는 다시 매장 앞 마네킹 옆에 섰다. 아까보다는 조금 덜 딱딱해진 표정으로.